순위와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때 본질에 더욱 가까워진다

소치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메달 농사는 그럭저럭 흉작을 면했다고는 하지만,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의 활약이 고질적인 비리와 병폐가 제기되던 ‘빙상연맹’의 개혁폭풍을 촉발시켰다. 이는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 귀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짚어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추상같은 지시가 떨어지기도 했다. 올림픽 폐막 이후 빙상연맹이, 나아가 우리 스포츠계 전반이 어떤 성장통을 겪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안팎으로 여러 가지 화제거리가 많았던 올림픽이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선수로서는 은퇴를 선언한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경기도 연일 화제였다. 김연아는 4년 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피겨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거머쥐며 온 나라 안을 열풍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바 있다.
김연아의 마지막 경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그녀가 다시 한 번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화려하게 은퇴하게 될 것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4년 전에 비해 김연아의 외모는 더욱 성숙해졌고, 선수로서의 기량 또한 몰라보게 성장했다. 그녀가 펼쳐 보인 장면들은 ‘경기’가 아니라 ‘공연’에 가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은메달이었다. 금메달은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로 돌아갔다. 경기 직후부터 판정 시비가 들불처럼 일었다.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국내 팬들 뿐만이 아니었다. USA투데이를 비롯한 외신들도 그날의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그러나 우리의 피겨여신 김연아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어이없는 점수가 전광판에 발표되는 순간에도 미소와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다. 이후 그녀가 보인 행보는 그야말로 피겨의 여신다웠다. 판정에 깔끔하게 승복했고, 갈라쇼에서도 우아하고 예술성 높은 연기를 펼쳐 세계의 팬들을 매료시켰다.
이에 비해 금메달리스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는 본 경기에서는 물론 갈라쇼에서도 석연치 않은 실수들을 보여 비난을 면치 못했다. 급기야 일부 외신을 비롯한 다수의 팬들은 “이번 동계올림픽 피겨부문 금메달은 김연아”라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비록 김연아가 목에 건 메달은 은색이었지만, 세계인들이 인식하는 색깔은 금색이 된 셈이다. 김연아의 마음을 헤아릴 길은 없으나, 그녀 또한 그리 낙담하지 않았으리라 예상한다. 충분히 완벽한 경기를 펼쳤고, 경기를 관람했던 수많은 팬들도 그녀의 경기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올림픽은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다. 순위와 결과에 집착하는 대한민국의 고질병이 차도를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기 다음날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로 떠오른 ‘고마워 연아야’를 보며 그렇게 느꼈다. 순위와 결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본질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음을 김연아가 보여준 셈이다.
어느덧 다시 선거가 다가온다. 좀 생뚱 맞은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장엄하게 펼쳐지는 올림픽 폐막식을 바라보며 6·4지방선거를 떠올렸던 것이다. 선거는 가히 말과 약속의 올림픽이라 할 만하다. 다만 올림픽과는 달리 은메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보다 더욱 치열한 경기장이다. 순위가 오직 하나밖에 없는 탓에 정치인들은 더욱 승부와 결과에 집착하게 되는 모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거와 정치의 본질은 늘 뒷전이다. 달콤하고 화려한 공약을 앞세워 지켜지지 못할 환상을 펼쳐보이곤 한다.
이번 선거라고 특출나고 위대한 정치인이 탄생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최선을 다하고 아름답게 은퇴한 김연아처럼 멋지고 우아한 정치인 한 사람쯤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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