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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반역 제 4장 어느 봄날의 저주 / 제 5장 역사의 갈림길
  • 유광남 작가
  • 승인 2018.07.0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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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43호=유광남 작가) 한음 이덕형(李德馨)이었다. 병조판서(兵曹判書)로 조선의 병부를 책임지고 있는 남인이었으나 그는 당파를 떠나 유성룡과는 서로의 학식과 인품을 존중하는 상호 신뢰의 관계였다. 일행 중 지중추부사 정탁(鄭琢)이 입을 열었다.

“영상이 천거한 이순신이니 그 마음 오죽하겠소. 하지만, 가토가 바다를 넘나들도록 방어하지 않은 것은 확실히 불찰이외다. 어명을 거역한 것은 잘못된 것이요.”

유성룡은 입을 다물었다.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이순신의 죄는 ‘적들의 함정에 왜 빠지지 않은 것이냐’는 것이다.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유성룡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 짐작이 사실로 입증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이순신에게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유성룡은 한 차례 진저리를 쳤다.

“영상대감, 괜찮습니까?”

유성룡은 손을 흔들어 저어기 걱정스런 눈빛을 던지는 병조판서 이덕형을 안심 시키면서 앞서 걸어 나갔다. 그 뒤를 재빠르게 내관 고명수가 따라나섰다.

“이상의 말씀들은 어전에서 논하시도록 하십시오.”

이들을 바라보는 좌의정 육두성의 눈매가 가늘게 좁아졌다. 고내관과 유성룡의 대화중에 상감과 궁녀가 등장 했으며 춘몽이라고도 했다? 그리고는 거북이를 등장 시켰다. 이순신의 귀선을 가르치는 말이었다.

‘뭔가 냄새가 나는데......’

육두성은 그들의 대화에서 심상치 않은 의혹을 느꼈지만 지금은 왕의 부름에 먼저 응할 때라는 걸 잊지는 않았다. 막 걸음을 재촉하는 순간에 이조판서가 바싹 다가들어서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영상대감이 이번에는 절대 무사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역심을 품고 있는 신하를 천거한 죄를 어찌 피해 나갈 수 있단 말입니까?”

나지막한 목소리였으나 지중추부사 정탁의 이목에는 딱 걸리고 말았다.

“역심은 아니지요. 그건 아닐 겁니다.”

좌의정 육두성이 발끈하여 소리쳤다.

“주상전하의 어명을 받들지 않은 것이 바로 역심이 아니고 무엇이요? 창칼을 앞세워서 궁으로 난입해야만 역적이 되는 게 아니오. 불손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도 그건 대역죄인 것이요.”

“좌상의 말씀이 백번 지당하옵니다.”

유성룡은 뒤돌아보지 않아도 아부를 떨고 있는 이조판서 이우찬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보나마나 코를 벌렁 거리면서 두 손을 새색시 마냥 맞잡고 눈웃음을 치고 있으리라. 유성룡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저주로군. 거북이의 저주!”

병조판서 이덕형이 걸음을 멈추었다.

“저...주라 하시면?”

“모두가 거북이를 저주하고 있는 듯하오. 그로 인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기억은 까마득히 잊고 있소.”

내관 고명수가 놀란 토끼눈을 하였다. 그 날 왕 선조는 거북이 꿈을 꾸고 반 미쳐서 날뛰었다. 저주를 퍼부어 댔다. 유성룡은 그 사단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듯 했지 않았던가? 새삼 거북이의 저주라 한탄하는 영상을 훔쳐보면서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 좋은 날 거북의 저주가 행궁을 송두리 채 덮고 있어.’

정오의 봄 햇살은 여전히 눈부셨다. 유성룡은 그 아름다운 봄날의 저주를 증오하며 지나간 날을 더듬었다. 이순신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날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자신의 판단을 수정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되면 오늘의 저주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봄날 왕의 뜰에는 거북의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제 5장 역사의 갈림길

 

오호! 통제라.
잠결에도 꿈결에도 안타깝도다.
덜렁거리며 이동하는 함거는 날 지옥으로 인도하니
그 날의 결단이 새삼 애달프다.
내 일본을 정벌하고 오늘을 맞이했다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고
땅을 딛는 힘이 서럽지 않을 것을.
죄인(罪人)으로 끌려가는 처량한 몰골.
혼(魂)으로 남더라도 남해바다 수호하리다.

(이순신의 심중일기(心中日記) 1597년 정유년 3월 1일 신묘)
 

“일본을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요.”

유성룡은 나직한 목소리로 설득 하였다.

“장군이 수립한 병법(兵法)은 탁월하기 그지없소. 실로 감탄할 만하오이다. 상대의 허(虛)를 찌르는 전략이오. 그러나 명국의 심유경이 황제의 사신으로 일본 측과 강화 협상을 추진하고 있음을 감안해야 하지 않겠소?”

이순신이 탄식한다.

“명나라가 원하고 있는 것은 대감도 파악하고 있음이 아닙니까. 그들의 관심은 그저 자국의 이익이오이다.”

“내 어찌 모르겠소. 하지만 우리 조선이 명국을 대함에 있어서......”

“대감! 이 자리는 오로지 대감과 둘만의 자리외다. 4도의 도체찰사와 3도 수군통제사가 아닌, 오랜 지우(知友)로 허물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이다.”

서애 유성룡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번져갔다.

“사전에 예고 없이 장군을 방문한 뜻도 거기 있으니 과연 우리는 평생지기일세.”

그랬다. 유성룡의 한산도 통제영(統制營) 방문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본래는 충청도 관찰사 권율에게 임금의 의중을 전하기 위해 한양을 떠나왔었다. 권율은 전란중의 도망병들을 즉결에 처한 후 잠시 관직에서 해임 되었다가 복직된 직후였다. 유성룡은 관찰사 권율을 위로하고 바로 한산도로 이순신을 찾아 온 것이다. 그리고 충격적인 일본 본토의 기습 공격을 보고받았다.

“명나라에게 언제까지 조선의 국운을 맡길 수는 없지 않소이까?”

“일본을 공격한다고 우리와 명국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건 아니오.”

“적어도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은 입증할 수 있을 겁니다.”

“조정의 친명세력은 어찌하오? 임금의 명나라에 대한 의존은 사실상 도가 지나칠 지경이요. 장군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임진 원년에는 몽진(蒙塵)을 단행하고 급기야 명나라 망명을 도모하시지 않았소? 물론 신하들의 적극적 만류로 그런 불상사는 모면하게 되었지요.”

“그 때문에 조정에 보고를 올리지 않고 결행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순신은 간소하게 차려내 온 소반(小盤)의 빈 술잔을 채워 유성룡에게 건네면서 지나가는 말투처럼 내뱉었다. 하지만 유성룡은 그 말과 술잔에 담겨진 무서움을 전신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가 어떠한 사람이던가? 만사에 빈틈없는 철두철미한 분석가요, 치밀하기 짝이 없는 행동가였다. 그런 이순신이기에 전시에 대한 방비가 완벽하게 이루어 졌고 그로 인하여 조선 수군은 패배를 모르는 승전의 군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아줘야겠소. 작전을 보류해 주시오.”

이순신은 대답 없이 술잔을 비웠다.

“명나라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간의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때 실행합시다!”

유성룡은 차마 술을 마시지 못하고 간절한 시선을 던졌다. 일단 결심하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이순신의 성품을 정확히 알고 있는 그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항왜 한 명을 이미 일본으로 잠입 시켰소이다.”

“누구요? 어떤 임무요?

“사야가 김충선 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양자(養子)외다. 교토의 뱃길을 정탐하고, 가능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탐문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전쟁을 지휘하는 관백 히데요시의 정적(政敵)을 말함이요?”

“그렇습니다.”

유성룡은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김충선은 항왜자로...일본인 아니요? 그는 얼마나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요?”

“내 아들과 같이 신뢰합니다. 조선인 어머니를 두고 있는 우리 백성입니다.”

“그 명성은 이미 알고 있소. 조선을 위해 화승총의 제조법을 고스란히 전파하고, 장군과 의병들을 도와서 전장에 참여하여 많은 공로를 세웠지요? 자헌대부(資憲大夫)에 가자(加資)되었고.”

이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충선의 용병 보고서를 참고하여 이번 전략을 수립하였소이다. 그는 일본인 무장 출신으로 철포(鐵砲) 즉 화승총을 귀신처럼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본래 간자(間者) 훈련을 조직적으로 받은 일본의 최고급 인재(人材)외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항복한 왜인 중에서도 매우 출중한 장수가 있다는 것은 소문으로만 듣고 있었다. 김충선에 대한 유성룡의 평가는 그저 그 정도였다. 하지만 이순신이 찬사를 늘어놓자 그 젊은 항왜자에 대한 궁금증이 치솟았다.

“조직적인 간자 훈련을 받았다는 것은......?”

“그는 침투(浸透), 공작(工作), 요인암살(要人暗殺), 정보(情報), 교란(攪亂) 등 다양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미 전쟁 전에 명나라와 우리 조선 등 각지를 돌면서 간자로서의 임무도 수행한 것으로 확인 되었지요.”

유성룡은 호기심이 부쩍 생겼다. 실로 이러한 경력의 인물은 쉽사리 만나기 어려웠다.

“그를 한 번 만나보고 싶구려.”

“기꺼이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서 돌아오면 대감을 뵙도록 조치하지요.”

“나이가 어찌 된다고요?”

“둘째 아들 울과 동갑입니다. 스물 넷... 신미생(辛未生)입니다”

“앞으로 큰일을 해 낼 수 있는 동량(棟梁)이 장군의 휘하에는 즐비하니 참으로 감축(感祝)드리오.”

유성룡은 매우 유쾌하게 웃으며 술잔을 이순신에게 권했다. 그러고 보니 김충선을 얻게 된 것은 실로 행운이었다. 그는 둘째 울과의 친분으로 인해서 인사차 이순신의 전라좌수영을 방문 했었다. 당시는 전란의 첫 해인 임진 원년이었고 매일 전쟁 준비로 혼란스러웠다. 그때 김충선은 의병장 곽재우와 활동하면서 조총의 제조와 사격술 등을 의병에게 전파하고 있었다. 평소에 일본인에게는 적지 않은 경계심을 지니고 있었던 터라 마음을 열어 받아주지는 못했다.

 

유광남 작가  sisamagazine1@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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