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 강제 북송…정부 뒷북 대응논란 속 탈북자 20명 입국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의 모습이 지난 6월21일 북한 TV에서 공개됐다. 북한 조선중앙TV는 평양 고려동포회관에서 전날 진행된 탈북 청소년들의 좌담회를 오전 11시20분부터 약 26분 간 녹화 중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 괴뢰패당의 유인납치 행위로 남조선으로 끌려가다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온 청소년들의 좌담회가 20일 평양 고려동포회관에서 열렸다”고 전했다. 북한이 이번에 탈북 청소년들의 모습을 공개한 데에는 주 라오스 한국 대사관에 머물고 있던 탈북자 20명이 한국에 무사히 입국한 것을 의식한 것과 최근 한국과 미국 등의 인권단체에서 신변을 우려한 데 대한 해명과 함께 강제로 납치됐다고 왜곡 선전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9명 탈북청소년 강제 북송 후 모습 공개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의 모습이 공개된 건 지난 5월28일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서 추방돼 북송된 이후 23일 만이다. 

당시 좌담회에 참석한 문철, 백영원(19살), 류광혁(18살), 박광혁(17살), 정광영(16살), 류철룡, 장국화, 리광혁(15살), 로정영(14살)은 여성 사회자의 요청으로 북한에서 중국 단둥으로 가게 된 과정과 라오스 생활 등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들은 “중국 단둥의 한 아파트에 머물며 한국 목사로부터 고통을 당했다”라며 “라오스 정부가 한국으로 유괴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내 북한으로 돌아오는 것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항공기까지 동원된 이번 북송 작전은 김정은 제1비서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들 9명은 북송 후 수용소가 아닌 평양 근처 순안초대소에 격리 되었었는데 이는 북한이 처벌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보다 체제 선전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북한은 이들을 방송매체에 공개하며 체제 선전이라는 의도를 여실히 보여줬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들어 재입북한 탈북자를 체제선전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이들 9명의 청소년도 주민의 사상교육에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북한 적십자 중앙위원회 대변인은 “지금 안정을 되찾고 있으며 이제 국가적 보살핌 속에 자기의 희망과 미래를 마음껏 꽃피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6월5일 유럽연합(EU)은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서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송환된 것은 국제법상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사회 탈북자 강제북송 비판

라오스는 탈북 청소년 북송 이후 국제사회의 나빠진 여론을 의식해 한국행을 도운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달 초까지만 하더라도 꼭 거쳐야 할 라오스 공안 당국과의 인터뷰 일정조차 잡지 못했었다. 

미국의 인권단체 북한자유연합의 수젼 숄티 회장은 “라오스 당국이 청소년들의 나이까지 속이며 강제추방을 정당화하고 있다”며 “강제송송된 9명 가운데는 23살 청년도 있었는데 라오스 당국이 의도적으로 이를 숨기고 14살에서 18살이라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라오스 정부는 탈북 청소년들을 추방한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이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라오스 당국이 탈북 청소년 강제북송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라오스 정부는 “송환된 청소년들이 미성년자라며, 10대의 정치적 망명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었다. 

한편,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미국과 중국은 국제사회에 대한 북한의 심각한 도전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면서 “중국 정부가 미국 등과 긴밀히 협조해 강제 송환에 대한 대안을 찾아나가길 강력히 촉구한다”며 탈북 청소년 9명의 강제 북송 사태와 관련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에게 공개 항의 서한을 보냈다고 5월31일 보도했다.
 

정부 대응, 논란 피하기 어려워

이번 탈북 청소년 9명의 북송 사태와 관련해서 외교부의 안이한 대처를 놓고 뒷북 대응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가 탈북 청소년이 라오스에서 강제 추방된 이후에야 이들의 신원 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2일 “탈북 청소년들이 추방된 뒤 명단을 확보하고 정보망을 동원해 이들 9명의 신원 파악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9명에 대한 신원 파악에 좀더 일찍 나섰다면 그런 첩보들의 진위 확인을 위해서라도 이들의 신병 인도를 라오스 정부에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했을 것”이라면서 “송환 전에 알았다면 정부의 대응 자체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측은 “라오스 당국이 우리의 영사면담 요청을 거부한 상황에서 탈북 청소년들을 만나기 위해 접근했다가 상황이 악화될 것을 우려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라오스 한국 대사관 측에서 보냈다 묵살된 절박한 문자 메시지들이 공개되면서 정부의 대응방법에 대한 논란이 더욱 불거졌다.

주 목사의 어머니는 지난 5월15일부터 담당 영사에게 “아이들도 연락이 안 되고 영사님도 아무 소리가 없어서 걱정이 된다” “귀찮으시더라도 소식 좀 주세요”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또 북송 당일인 27일 오후 5시56분(한국 시각) 주 목사의 부인은 다시 시어머니에게 “대사관 직원들이 오는 걸 봤는데 면회 안 하고 그냥 가는 것을 봤다”고 연락했다. 또 “오후에 애들을 딴 곳으로 보내 버렸는데 행방을 알 수 없다. 대사관은 전화도 안 받는다”며 “오늘부터 더 심하다. 문을 잠가 놓고 복도에도 못 나가게 한다”고 알렸으나 한국 대사관 측이 이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 탈북 청소년들은 북한 대사관에 끌려갔다. 

외교부는 뒤늦게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중국과의 외교채널을 가동했으나 북송을 막지 못했고 북송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해 외교력이나 정보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이들이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강제 북송되는 과정에서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과 우리 외교부가 부실하게 대처하고 무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5월30일 정례브리핑에서 “탈북민 관련사항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건에 대해 외교부로서는 개선점을 도출해 보완책을 취해나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전에도 주 라오스 한국대사관 등이 탈북자 문제를 무성의하게 다뤄왔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외교관계 등을 고려해 평소 노출을 꺼리는 탈북자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면서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는 2006년 11월 탈북청소년 3명이 라오스 이민국 수용소에 5개월간 수감됐으나 현지 우리 대사관이 언론 보도 후에야 움직였다는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며 “언론에 보도되기 5개월 전부터 한국대사관은 수감 사실을 인지, 관련국 정부 당국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현지 국제기구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관련국 협조로 이들을 한국에 이송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2006년 12월 탈북자들이 대사관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다 심지어 총을 들고 공관으로 온 라오스 군인에게 잡혀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공관 경비원들이 경비 차원에서 신분증이 없는 외부인사 진입을 제지하려다 탈북자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관련국 경찰 협조를 얻어 강제 퇴거시킨 것”이라면서 “공관이 이후 이들의 신분을 파악해 안전하게 국내로 이송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탈북자 20명 국내 입국

북한이 9명의 청소년들을 공개한 데 앞서 라오스에 머물러 있던 탈북자 20명이 국내 입국했다. 6월17일 한 외교 소식통은 “라오스에 있던 탈북자 20명이 최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으며 전원 무사히 입국했다. 당국의 조사를 거쳐 한국에 정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6월4일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지시로 주 라오스 대사관 안가(安家, 한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보호하는 은신처)에서 지내던 탈북자들을 안전 문제를 고려해 대사관으로 긴급 이송했다. 

외교 및 대북 소식통은 6일 “박 대통령이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있는 안가에 머물던 탈북자 18명을 모두 대사관저로 이동시키도록 지시했다”고 전하며 “박 대통령이 청와대 내 지하 벙커인 국가안보실 예하 위기관리상황실에서 자리를 지키며 이송 상황을 지휘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지하 벙커를 떠나지 않고 탈북자들의 이송을 직접 확인하며 지휘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어린이, 장애인, 암 환자, 노인 등이 포함된 탈북자들은 그동안 대사관 내 가건물의 3개 방에서 함께 생활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6월3일 “지난달 말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은 정말 안타깝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었다”며 “탈북민들의 안위에 영향을 주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물론이고 이에 도움을 주는 모든 분이 책임감을 갖고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었다. 

이에 대해 북한 인권단체들은 “탈북민의 안전 보장을 위한 조치는 환영한다”면서도 “사건 발생 뒤 일주일이 지나 대통령이 질책한 뒤에야 대사관으로 이들을 호송한 건 면피성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北, “청와대가 유인납치의 주범” 맹비난

한편, 이번 탈북자 입국에 대해 북한은 “청와대가 유인납치의 주범”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 적십자 중앙위원회 대변인은 6월17일 조선중앙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달 초 라오스 ‘안가’에 머물던 탈북자 18명을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저로 이동시킬 것을 지시했다”는 한국 언론 보도 내용을 언급하며 이같이 비난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와 현지 괴뢰(한국) 대사관까지 가담해 감행된 이번 납치행위는 우리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엄중한 도발”이라며 “범죄행위를 사죄하고 주모자들을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청소년 북송 사건과 관련해서도 남한측을 맹비난 했었다. 적십자회 대변인은 “어린 청소년을 유인 납치해 남조선으로 집단적으로 끌어가려다 발각된 반인륜적 만행 사건”으로 규정한 뒤 남측을 향해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주모자들을 엄중 처벌하라”고 요구했었다. 그러면서 “수십 명의 청소년을 유괴 납치해 비밀 은신처에 가둬놓고 온갖 악행을 감행했으며 성경과 찬송가를 외우지 못하면 몽둥이로 구타해 온몸에 멍이 들고 정신적 압박으로 말투까지 이질화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통일부 김형석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북한이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북한 당국이 강제 송환된 탈북 청소년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것과 부당한 처벌이나 대우를 하지 말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북한이 북한지역에 여러 명의 우리 국민이 있다고 하면서도 이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는 등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를 현혹시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데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화 불발로 얼어붙은 남북 관계는 탈북자 입국으로 당분간 더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맞춤형 협력 시스템 구축에 나서

정부는 이번 탈북 청소년 강제 북송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탈북자 전담 인력과 조직을 강화하고 해당국 정부와 맞춤형 협력 시스템 구축에 나설 예정이다. 외교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탈북자 보호·이송 시스템 개선 방안에 대해 밝히며 탈북 루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고위인사 교류 등을 통해 관련국과의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이를 통해 관련국의 체제와 제도에 맞는 대응 체제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이 외에도 탈북자 업무 매뉴얼을 보완하고 관계 기관과의 협업 체제를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강제 북송 방지 및 북송된 탈북자의 처벌 방지를 위해 국제기구 등 국제무대에서 강제송환 금지 원칙 준수를 촉구하는 등 탈북자 이슈를 여론화할 예정이다. 

김희태 북한인권개선모임 사무국장은 “정부가 대사관 내 임시가옥을 사용조차 하지 않으면서 대사관 밖에 수십 평대 안전가옥을 4곳이나 임대해온 건 예산낭비”라며 “라오스 정부뿐 아니라 교민들도 뻔히 알고 있는 안전가옥이 이제 와서 위험하다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외교부는 “탈북자 문제는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 차원에서 폭넓게 접근하겠다”면서 “탈북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을 최우선시한다는 방침에 따라 탈북자 보호·이송 체계 등 전반적인 시스템을 면밀히 점검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6월8일 라오스 정부에 의해 추방돼 결국 북송된 탈북청소년 사건과 관련, 라오스 정부에 탈북자의 강제 추방 중단을 촉구하는 한편 우리 국회에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새누리당은 19일 6월 임시국회에서의 북한인권법 처리 여부와 관련해 “북한인권법 통과를 위한 민주당의 각성과 협력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은 탈북자 북송과 같은 북한인권에 대한 외교안보 사안을 국가적 중대 사안으로 인식하고 북한인권법 제정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인권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탈북자 지원체제가 제대로 갖춰질 수 있고, 지속적으로 한반도 정세변화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도 북한인권법 제정은 필수적”이라며 “일본과 미국에서조차 이미 발의된 법안임에도 민주당은 여전히 보수단체 지원법일 뿐이라며 협력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북한인권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기 위해 침묵을 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민주당은 6월4일 라오스에서 추방된 탈북 청소년들의 강제 북송 사태와 관련,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추진키로 했다.

홍익표 원내대변인은 “북한인권법은 종합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며 “이번 사태와 북한인권법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국회 외교통일위에 계류돼 있는 북한인권법 논의를 위해 새누리당 간사가 민주당 간사에게 요청한 공청회 개최를 수용키로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가 북한 인권법과 함께 균형 있게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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