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가는 걱정, 가계부채 탈출구 없나

2013년을 맞은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네 살림살이는 여전히 안개 속 제자리걸음이다. 가계부채를 그대로 안고 새해를 맞이한 서민들에게 있어 하루하루는 고되고 힘든 날일뿐이다. 여전히 서민들은 가계부채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고 오늘도 대출을 막기 위해 또 대출을 받으러 간다. 지금 대한민국의 서민들에게 있어 밝은 미래는 먼 나라 얘기다. 많은 경제전문가가 2013년 한국 경제에서 풀어야 할 우선 과제로 가계부채를 꼽았고, 박근혜 당선인도 국민행복기금 18조 원을 조성해 서민들 가계부채를 덜어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2013년 새정부가 출범하는 해다. 과연 서민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생겨날까.

올해도 가계부채가 민간소비 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말 가계부채가 900조 원대를 훌쩍 넘어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2년 9월말 현재 가계신용 잔액은 937조 5,000억 원으로 1,000조 원에 육박했다.

우리나라 가구 중 64.6%는 부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평균 부채보유액은 8,187만 원에 달한다. 2006년 599조 원에서 2007년 657조 원, 2008년 717조 원, 2009년 779조 원, 2010년 846조 원, 2011년 892조 원을 넘어 계속 증가 추세다. 이대로라면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가 머지않아 보인다. 한국은 가계부채가 GDP의 85.9%(2009년)로 금융 위기 직격탄을 맞은 미국(100.2%)이나 영국(11.0%)보다 낮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평균(77.0%)과 일본(80.4%)보다 높은 수준이다. 반면 우리나라 저축성향은 2007년 2.6%까지 내려갔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10가구 중 1가구 ‘과대채무가구’
과도한 가계부채는 한국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자를 내는 만큼 생활비가 줄어든 만큼의 소비 여력이 사라진다. 서민들의 소비는 기업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정부의 거시경제 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가가 오르면 기준금리를 올려 화폐 유동성을 억제해야 하는데 가계부채가 많다보니 기준금리를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계대출의 질 악화가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실물 부문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가장 큰 원인은 2006년 이후 주택가격이 급등하면서 주택가격 추가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와 금융 회사의 경쟁적인 대출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원리금 상환 능력이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보다 비은행 금융회사의 부채가 더 많이 늘어나고 있고 신용불량이 최근 1년 사이 24%나 급증, 가계부채가 심각한 사항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4월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금융부채를 지고 있는 가구는 전체 가구 중 56.2%이고 절반 이상(50.9%)이 다름 아닌 부동산 구입용으로 대출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우스 푸어가 150만 가구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0가구 중 1가구는 ‘과다채무가구’로 나타났고 이들 가구는 소득의 40% 이상을 부채 상환에 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50대의 가계부채 문제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22일 금융감독원의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작년 50대 가구 중 가계의 평균 금융부채는 7,634만 원으로 전년대비 3.2% 증가했다.

대출금 갚기 위해 대출받는 악순환 이어져
TV 여기저기를 틀어도 대출 광고는 연일 끊이지 않는다. ‘빠른 대출’, ‘무담보’, ‘무보증’, ‘클릭 한번에 OK’… 쉽게 현혹시킬만한 문구들을 내세워 너도 나도 대출 받기를 권하고 있다. 대부업에서 무분별하게 시작된 대출광고는 지금 저축은행, 보험사, 카드사, 시중 은행 등까지 동참하며 대출을 받으라고 권한다. 

성수동 전통시장에서 과일노점을 운영하는 정모 씨는 한 달 버는 게 200만 원이 채 안 돼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는데 이자만 연 43%로 이자만 납부하는 데도 벅차다.

서민들의 가계대출이 더욱 심각한 건 이자만 납부하는 부채상환 능력 취약 대출이 전체 주택담보 대출 잔액의 26.6%를 차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 연 소득 수준이 2,000만 원 미만인 비중도 39%에 달한다는 점이다.

특히 부채상환능력 취약 대출의 만기도래가 2012년 21.2% 몰려 있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진단이다. 그러다 보니 대출금을 갚기 위해 또 대출을 받는 악순환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제1금융권에서 시작된 부채는 제2금융권, 제3금융권 등으로 이자가 높은 금융권까지 손을 뻗었다. 실제로 2010년에서 2011년 상반기까지 은행 대출은 8.5% 증가한데 비해 제2금융권은 두 배가 넘는 17.9%나 늘어났다. 똑같은 가계부채규모라고 해도 가계가 짊어질 부담이 커진 것이다. 제2금융권의 평균 대출 금리는 24.4%로 은행 대출금리 9.8%의 평균 2.5배에 이른다.

朴 당선인 “새정부 출범 즉시 가계부채 해결”
박근혜 당선인은 새정부 출범 즉시 가계부채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월25일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가진 경제1분과 인수·전문위원과의 비공개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대통력직 인수위원회가 26일 밝혔다.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박근혜 차기정부의 대표적인 대책은 18조 원의 국민행복기금 조성이다. 국민행복기금이란 민간의 금융회사나 자산관리 회사가 보유 중인 연체 채권을 정부의 보증채권으로 매입하고 과중한 빚에 허덕이는 일부 계층의 원리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을 직접 투입하지 않고 가계부채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새누리당의 얘기다.

신용회복기금 등의 잉여금을 모아 1조 8,000억 원을 만든 뒤, 이를 토대로 18조 원의 기금을 마련해 가계대출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부채를 탕감한다는 것이 골자다. 박 당선인은 자산관리공사(캠코) 차입금 7,000억 원, 캠코가 운용하는 신용회복기금 8,700억 원, 캠코의 부실채권 정리기금 잔액 3,000억 원을 합친 1조 8,600억 원을 재원으로 삼아 10배로 채권을 발행, 18조 원 규모의 기금을 만들어 재정투입 문제를 해결한다고 공약했다.

행복기금 조성은 채무 불이행자가 320만 명을 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경제적 자활을 돕는 것이 국민행복기금의 기본 취지다. 시행 첫해 채무자 120만 명의 연체 채권 12조 원을 매입하고, 향후 5년 동안 총 30만 명을 더 지원해 빚을 진 서민층의 재기를 돕겠다는 것이다. 이미 시행 중인 캠코의 저금리 장기상환 대출전환 프로그램인 바꿔드림론 지원대상과 규모 등을 확대·적용하는 방안이 인수위에서 추진 중이다.

이 기금은 주로 신용 회복이나 채무 조정에 쓰이며 재활 의지가 있는 금융채무 불이행자의 은행 등 민간자산관리회사 연체채무 중 상당 부분을 정부가 떠안고 나머지는 채무자가 장기간에 걸쳐 분할상환으로 전환된다. 일반채무자는 채무의 50%, 기초수급자 등 취약계층은 70%까지 채무를 탕감해줄 예정이다.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에 대해서도 기금을 활용, 1인당 1,000만 원 한도 내에서 저금리 대출로 전환해줄 계획이다. 또 학자금 대출이 연체되면 국민행복기금이 이를 매입한 뒤 취업까지 추심을 중단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불러올 수 있어
빚을 탕감해 준다는 측면에서 금융권에선 대출 원리금을 성실히 갚는 사람과 형평성 문제가 있고 채무자가 빚을 힘들여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려대 오정근 교수는 “채무자에게도 일정부분 손실분담 원칙 적용하는 방법이 있다. 자립적으로 경제활동 하겠다는 자활의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의 한 부행장은 “대출 원금 탕감 방식으로는 상환능력이 있는 데도 의도적으로 원리금을 안 갚거나 미루는 사람들이 많아질 위험이 크다”며 “상환능력이 있는 대출자를 대상으로 20~30년에 걸쳐 낮은 금리로 나눠 갚게 하는 방안이 낫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18조 원의 행복기금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선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방지되고 형평성 문제가 없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빚 때문에 눌려 있기 때문”이라며 “가계부채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해방이 되도록 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핵심”
금융권에선 채무 탕감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채무 불이행자를 대상으로 시행 중인 신용회복지원 제도의 채무 탕감비율은 30~40% 수준이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국민행복기금은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채무 탕감비율이 50~70%인데, 이 비율을 현실성 있게 낮추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의 한 부행장도 “원금을 절반이나 없애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금리를 깎아주고 원금을 10~20년 사이에 나눠 갚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핵심”이라는데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한 금융연구소 연구원은 “국민행복기금처럼 정부 재정으로 보증하는 지원제도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며 “그럼에도 시행한다면 대상자를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처럼 기존 제도를 이용할 수 없는 채무자를 국민행복기금 지원 대상자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은행의 한 부행장은 “연체 기간이 90일이 넘는 연체자나 은행별 소득 기준에 맞지 않는 채무자 등을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의 한 부행장은 “새희망홀씨 대출이나 미소금융 등 은행권 대출을 받기 어려운 가구를 대상자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정부가 나서서 개인 채무자의 구제책을 마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채무자와 채권자가 일차적 책임을 가져야 가계 부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나서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정부가 나서서 개인 채무자의 구제책을 마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채무자와 채권자가 일차적 책임을 가져야 가계부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나서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고’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며 “금융기관도 어느 정도 손실을 봐야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과의 협의를 해 나가는 부분이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 당선인은 “돈도 없는데 이것저것 한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면서 “(그러나) 설계를 잘하고 정확한 철학을 갖고 복지정책을 해결하면 이는 낭비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재정을 오히려 좀 절약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선 금융기관 주택담보대출 구조조정, 후 부채탕감 지원
한국금융연구원은 ‘선(先) 금융기관 주택담보대출 구조조정, 후(後) 부채탕감 지원’방식을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국민행복기금 18조 원 조성을 통한 일정 비율 부채탕감 등을 내세운 새 정보의 가계부채 해소 방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손상호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월9일 보고서를 통해 가계부채 해소 방안과 관련, “가계부채 문제는 단계적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현재 가계부실을 금융기관이 자체 수익을 통해 해소할 수 있는지와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부산물인 담보물건의 경매가격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금융기관이 부실을 자체 흡수하지 못하거나 담보물건 경락률이 제2금융권의 평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70%를 하회하면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선제적으로 문제 있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사전 구조조정을 정책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손 연구위원은 “사전 구조조정이 여의치 않으면 다음 단계로 정부 개입 아래 선별적인 부채탕감 방식을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계부채의 직접적인 탕감은 차주의 도덕적 해이를 광범위하게 유발시킬 수 있어 최종 단계에서 조심스럽게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정책측면에서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의 악순환적 상승관계를 기본적으로 단절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가계 부채 대책을 금리 인상, 총량 규제 등 정책 당국 및 금융회사 쪽에서 거시·규제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가계 쪽에서 높아진 부채를 지탱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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