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파병 문제등 청와대,내각,신당 치고받기...國政난기류
여권(與圈)이 심상찮은 난기류에 휘말리고 있다. 청와대와 내각, 여당인 통합신당이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 이라크전 파병 등 민감한 현안을 눈앞에 두고 마치 3인4각 게임하듯 손발이 맞지 않아 뒤뚱거리고 있다. 내각은 주요 현안에 상의조차 않는 청와대의 독주(獨走)에 노골적 불만을 표시하고 있고, 청와대와 내각을 뒷받침해야 할 신당은 오히려 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와대 내부도 일사불란함은 찾아볼 수 없는 불협화가 이어지고 있다.



내각은 노 대통령이 사전 통보 없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신임과 12월 개각을 발표한 사실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고건 총리가 국회에서 ‘내각 조기개편과 책임총리제를 노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현 국정혼란의 책임이)노 대통령과 측근과 정부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등 되새김질해야 할 답변을 내놓은 것부터가 여기서 비롯됐다는 관측이 있다.
반면 청와대는 내각에 대해 “이라크 파병 문제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다. 청와대는 또 노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문제와 관련, 나중일 외교안보보좌관을 통해 미국에 보낸 친서 내용이 야당에 흘러 들어간 데 대해 민정수석실을 통해 ‘정보유출’ 경위조사에 착수하는 등 못마땅해하는 반응이다.
청와대로부터 대통령 재신임에 대한 귀띔을 받지 못한 신당도 처음 반대 당론을 내세웠다 하루만에 철회했고, 노 대통령이 ‘국민투표의 정치적 타결 가능성’을 거론했을 때도 영문을 몰라 우왕좌왕했다. 이라크 파병 방침까지 일방적으로 발표되자 김성호 의원은“이럴 바엔 여당을 왜 하느냐”고 청와대를 공격했고, 임정석 의원은19일부터 이라크 전투병 파병반대 단식에 돌입했다.
신당의원들은 또 청와대의 이라크 파병 방침에 대해 전투병 파병을 거론하거나 기정 사실화하는 국무위원, 수석들을 문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회에서도 내각을 호되게 질책하고 나서 국무위원들로부터 신당이 여당이냐 야당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게 하고 있다.
신당은 21일 “전투병 위주의 파병은 곤란하다”는 결론을 내려 정부에 오히려 부담을 주고있고, 김근태 원내대표는 “신당과 사전 의논 없이 결정한 것은 유감”이라며 언짢은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신당은 또 청정배 의원이 청와대 이광재 국정 상황실장의 경질은 요구한데 이어 청와대 비서실의 전면 쇄신을 주장하며 핵심 수석들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청와대와 부딪치고 있는 양상이다. 유인태 정무수석이 최근 신당 지도부와 접촉하며 의견수렴에 나섰으나 긴장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강봉균 의원은 국회에서 고 총리에게 “대통령과 손발이 안 맞는 각료는 해임을 건의하라”며 장관들의 경질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내 386세력들은 사석에서 신당 내의 비 개혁적 성향의 의원들의 물갈이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내부도 파병문제로 삐걱거리고 있다. 박주현 국민참여수석이 청와대 외교?국방팀을 지목해 ‘관성적’이라며 비판했고, 소수의 목소리만 전투병을 파병하면 그만 두겠다는 ‘강경파’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문희상 비서실장은22일“파병문제와 관련해 개인의 거취까지 얘기가 나오는데, 바람직하지 않다”며 입조심을 당부했다.
그러나 파병에 비판적인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파병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백지상태 아니냐. 이견 표출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수선한 청와대
청와대가 출범 8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임기 말 증후군’에 시달리는 양상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이후 현안들이 정리되기는커녕 오히려 청와대 안팎에서 마찰음이 더 커지고 있다.
당장 ‘사실상 여당’인 통합신당의 인적쇄신 공세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속수무책이다. 이광재(李光宰) 대통령국정상황 실장을 겨냥해 시작된 인적쇄신 요구는 이제 청와대 핵심인 M, Y, P씨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 사실상 ‘전면 교체하라’는 압박이지만 청와대는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다”며 함구하고 있다. 특히 국정상황실은 이 실장이 사표 제출 직후 아예 연락을 끊고 출근하지 않고 있어 어수선한 상태이다.
청와대가 노 대통령의 대미 친서 및 재독 학자 송두율(宋斗律)씨와 관련한 국가정보원 보고서가 야당의원에게 흘러나간 데 대해 출처를 발본색원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선 것도 이런 위기감의 발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 고위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흘리지 않고서는 이런 국가기밀이 새나갈 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청와대 핵심부는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정권 말기에나 있음직한 ‘권력누수’와 ‘줄 대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파병 문제도 난마처럼 얽혀 쉽사리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고건(高建) 총리의 국회 ‘소신발언’까지 잇따르자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 총리가 이례적으로 국회에서 대통령 친서 존재를 확인해 준 데 이어 “국정혼선의 책임이 대통령과 측근, 정부에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청와대는 대놓고 비판할 수도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을 아끼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 안에서는 “대통령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귀국 직후 국정쇄신을 위한 모종의 결단을 내리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돌고 있다.



신당과 코드 안맞아
게다가 신당에 ‘개성이 강한 의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도 청와대로서는 부담이다. 대통령이 일단 결단을 내리면 논란이 있다가도 따라줘야 하는데 이들은 ’토를 다는‘습성이 배여 있어 제대로 된 여당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져 있는 청와대를 구석으로 몰아세우는데 대한 서운함도 묻어 있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공천권도 없는 마당에 신당이 설령 총선에서 이긴다고 해도 대통령의 말이 먹혀들 리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과 신당이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 때문에 청와대 안에서는 신당에 연연하지 말자는 주장이 차츰 세를 얻고 있다. 대통령이 정당과 정파를 초월하면서 국회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총선 이후 다수당에 내각을 내주고 대통령은 국정과제라는 큰 구림만 그리겠다는 방침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신당 쪽에서도 청와대와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한 상황에서 ‘노무현당’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는 계산에서다. 또 노 대통령의 386참모들을 정면 공격해야 내년 총선에서 유리하다는 속셈도 깔려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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