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갯골생태공원, 소래생산지 & 최고의 생태공원
새로운 관광 명소로 급부상
[시사매거진 오경근 칼럼니스트] 일반적으로 갯골은 개펄이라고 불리는 간석지 사이에 물길을 일컫는다. 그로 인해 넓은 바닷가에 흑회색으로 평평하게 자리하는 습지 형태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시흥시 장곡동에 있는 갯골은 여느 곳과 달리 내륙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하천에 발달해 있어 좁고 가파르다. 서해안 지역인 인천의 바닷물이 시흥시 하천으로 흘러들기도 하고, 또 시흥시 하천이 바다로 흘러가 밀물과 썰물 형태로 맞닿아 있다. 바로 내만(內灣) 갯골의 전형이다.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2012년 2월, 시흥시는 이곳 갯골을 국가 습지 보호구역으
[시사매거진 오경근 칼럼니스트] 일반적으로 갯골은 개펄이라고 불리는 간석지 사이에 물길을 일컫는다. 그로 인해 넓은 바닷가에 흑회색으로 평평하게 자리하는 습지 형태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시흥시 장곡동에 있는 갯골은 여느 곳과 달리 내륙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하천에 발달해 있어 좁고 가파르다. 서해안 지역인 인천의 바닷물이 시흥시 하천으로 흘러들기도 하고, 또 시흥시 하천이 바다로 흘러가 밀물과 썰물 형태로 맞닿아 있다. 바로 내만(內灣) 갯골의 전형이다.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2012년 2월, 시흥시는 이곳 갯골을 국가 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귀중한 친환경적 갯벌의 생태 자원 보고(寶庫)로 보호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천일염을 일구던 소래염전 지역의 정중앙을 관통하고 있어 예스러운 정취와 함께 역사적 흔적도 남아 있다. 한때 갯골의 물길을 이용해 내륙까지 어부들의 배가 드나들기도 했고,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통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과거 시흥시 정왕동 일원에 있던 ‘군자염전’과 더불어 남한 최대의 천일염 생산기지였던 인천시 남동구 ‘소래염전’은 약 544만㎡의 규모로 일제강점기인 1934년 조성되어 광복 이후 국영(전매청)과 민영(대한염업)의 시기를 거치며 1996년까지 운영되었다. 현재는 시흥갯골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폐염전 지역의 광활한 풍광과 연안 생태계가 어우러진 자연의 보고이자 뛰어난 경관을 지닌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염전(鹽田), 일제강점기 최대의 소래염전 지역
시흥갯골생태공원은 1935년경 일제강점기에 준공된 제4기 염전 중 하나인 소래염전(蘇萊鹽田)이 있던 곳이다.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 속한 소래포구 일대와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 포동, 월곶동, 장곡동 등 폭넓은 지역이 모두 이곳에 속한다.
조선시대 염업은 주로 서해안과 남해안, 동해안 등지에서 성행했는데 전국 생산의 50%를 전라남도에서 공수했다. 또한 경기도와 수도 한양(서울) 일대에서는 가장 가깝게 남양을 비롯해 안산, 수원, 통진, 부평, 인천 등지에서 소금을 소규모 생산해 유통했다.
그러다가 개항 후 조선의 국외 무역이 증가하고 김치나 해산물을 소금에 절이는 염장법이 발달함에 따라 소금의 소비도 크게 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자 청나라 수출은 물론 일본 본토 공수로 인해 소금이 필요해지자 일본은 천일염을 얻으려 수도권 일대에 염전을 준공하게 된다.
1909년에서 5년간 제1기 염전이 경기 부천군 주안과 평남 용강군 광량만에 2곳 준공되었다. 이후 1918년부터 2년간 경기 부천군 주안과 평남 용강군 덕동에 2곳 증설되었고, 제3기 염전이 1920년부터 1926년까지 6년간 부천군 남동, 시흥군 군자, 평남 용강군 귀성, 평북 용천군 남시에 4곳 준공되었다. 이후 1933년부터 1940년까지 6년간 제4기 부천·시흥군 소래, 평남 용강군 귀성, 평북 용천군 남시에 3곳이 준공되었다. 그중 시흥갯골공원이 있는 소래염전은 제4기에 속한다.
소래염전은 염전을 짓기에 적합한 입지를 갖추고 있다. 우선 이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전통적인 자염법으로 제염을 하였던 곳이다. 조간대가 광활하고 평탄하며 갯벌의 토질은 점토와 모래가 절반씩 구성하고 있어 염전 바닥을 다지고 물을 증발시키기에 유리하다.
무엇보다 조석의 차가 10.86m로 매우 커 수분을 증발시킬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며, 유입되는 하천도 소하천뿐이라 바닷물의 염도도 낮지 않다. 또한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을 수인선 철도를 이용해 인천항으로 옮긴 뒤 국내에서는 수도권으로, 국외에서는 일본과 만주로 운송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염전은 신문물의 수입과 유입으로 급격한 사양 산업의 길로 들어선다. 값싼 중국산 천일염 수입과 인건비 저하, 낮은 채산성과 고된 노역으로 인력이 대도시로 이동하자 1996년 7월 31일 소래염전은 폐염(廢鹽)이 된다.
갯골, 민물과 바닷물 교차하는 호조벌 개천
시흥갯골생태공원은 강희맹이 연꽃을 가져다 심은 관곡지 소재의 시흥시 연성동과 신현동 그리고 장곡동 사이에 위치한다. 이곳 갯골은 보통천을 따라 서쪽으로 흘러 소래포구에서 장수천과 합류한다. 장수천 후미의 염전 갯골은 소래습지생태공원으로 조성되고, 보통천 후미의 염전 갯골은 시흥갯골생태공원으로 부활했다.
그동안 호조벌이라 불리는 관곡지 일대 경지 정리가 이뤄지며 염전을 일구던 갯골이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호조벌 경지 정리 작업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시행되었는데, 이에 따라 호조벌은 반듯한 사각형 모양으로 경지가 구획되고, 그 과정에서 호조벌 사이를 구불구불 흐르던 일부 갯골은 형태를 완전히 감추었다. 과거에는 호조벌을 감아 도는 갯골을 따라 내륙의 마을 입구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어부들이 배를 타고 출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농경지를 벗어나 호조벌(관곡지)와 월곶을 잇는 가운데 지점인 장곡동 일대에 ‘시흥갯골생태공원’을 조성하고 갯골 생태를 보존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염전 외에 바닷물과 민물에서 교차해 서식하는 각종 물고기와 게를 잡을 수 있었다. 낚시도 하고 헤엄도 치고, 가을이면 물을 막고 수차로 물을 퍼낸 후 가물치, 붕어, 미꾸라지, 뱀장어 등을 잡을 수 있었다.
시흥 갯골에는 다양한 식생이 자생하고 있다. 갯골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는 염생식물(鹽生植物)로는 법정 보호종인 모새달을 비롯하여 퉁퉁마디, 나문재, 칠면초, 갈대 등이 자란다. 갯골에 서식하는 동물로는 농게, 칠게, 말뚝망둥어 등이 있고, 주변의 습지에는 갈게, 참방게, 붉은발사각게, 기수우렁이 등이 서식한다.
또한 갈대숲 사이의 염생 습지는 멸종 위기 2급 동물인 맹꽁이의 국내 최대 서식지가 되고 있다. 그 외 시흥 갯골 주변에서는 60여 종의 철새와 텃새가 관찰되며 멸종 위기 1급인 저어새, 멸종 위기 2급인 검은머리물떼새와 새홀리기,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된 황조롱이 등 산새와 물새 등이 관찰되고 있다.
시흥갯골생태공원, 염전+갯골의 환경 조우
시흥갯골생태공원은 과거 소래염전이 있던 자리로 장곡동 일대 150만여㎡의 부지에 조성된 갯골 생태 보존 지역이다. 이곳에는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발달한 내만 갯골과 옛 소래염전의 흔적이 남아 있어 찾는 이의 발걸음이 늘고 있다.
소금 생산 중단 이후 소래염전 부지와 저습지(低濕地, 진펄)가 어우러진 자연생태 환경으로 인해 여러 생물 종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어 생태의 보고(寶庫)로 자리매김된다. 특히 이곳에서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 등 염생식물과 붉은 발 농게, 방게 등 다양한 생물도 관찰할 수 있다.
그러한 이곳 시흥갯골생태공원에는 ‘삶의 체험 현장’인 소금창고가 2두 동이나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1934년에서 1937년 사이에 준공된 소래염전 시흥시 쪽 소금창고는 2006년 5월 당시, 심하게 훼손된 26동, 일부 훼손된 12동, 양호한 2동 등 총 40동이 갯골 양옆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골프장 개발에 나선 민간 사업체가 38동을 철거하고 현재 2동만 남겨두었다. 소래염전 이전의 남동염전과 군자염전을 대신해 해방 이전의 염전을 대표할 수 있는 모습이다.
또한 이곳에는 소금을 실어 나르던 ‘가시렁차(가솔린차)’가 전시돼 있다. 과거 협궤철도 수인선 소래역에는 염업선(鹽業線)이라는 전용선로가 있었는데 이전의 명칭은 전매선(專賣線)으로 1964년 8월 20일에 염업선으로 개칭되었다. 이 선로에 한 번에 스무 량 정도 ‘소금 실은 회차’를 끄는 ‘가시렁차(가솔린 기관차)’가 운행됐다. 그중 소래염전 폐염 이후 시흥시 포동 67-5 차고지에 보관되어 있던 ‘최후의 마지막 가시렁차’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솔트베이골프클럽에 전시되어 있다가 2019년 9월 19일 시흥갯골생태공원으로 이전되어 역사를 고증하고 있다.
그 외 염전 수차는 바닷물을 염전에 끌어들이는데 사용했던 도구로 전시돼 있다. 수차를 작동하는 사람은 수차에 대각성으로 질러진 나무를 붙잡고 수차의 날개 하나 하나를 두 발로 계단 올라가듯 순서대로 밟아 수차가 돌아가게 해 물을 퍼 올린다. 수차의 날개 판을 두 발로 번갈아 밟으며 바퀴가 돌아가고 퍼 올려진 물이 봇도랑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곳 서해안 염전에 주로 설치해 사용하였다.
또한 옛날 소금 결정을 얻기 위한 토판, 옹패판, 타일판 등을 볼 수 있다. 먼저 토판(土版)은 1955년 이전 염전에서 사용하던 갯벌흙(개흙)을 단단하게 다져서 만든 결정지역이다. 이곳에서 채취된 소금을 토판염이라고 하며, 현재 소금에 비해 청결성은 떨어지지만, 각종 미네랄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고 하여 고가에 매매되었다.
옹패판은 항아리 등 옹기 깨진 것으로 만든 결정지역으로 1955년부터 1980년 초까지 사용되었다. 타일이 대중화가 안 된 시기에 소금의 청결성과 채취작업의 편리를 위해 항아리 등 옹기조각을 결정지역에 깔아 사용했다.
타일판은 정사각형 타일을 정교하게 붙인 결정지역으로 1980년대 초 이후에서 현재까지 사용되었다. 갯벌의 흡착력을 이용하여 정사각형의 타일을 염판(개흙) 위에 올려놓은 상태로 물기만 있으면 타일이 고정된다. 옹패판에 비해 표면이 매끄러워 소금 채취작업이 더 용이하며 검은색으로 되어 있어 태양열 흡수량이 빠르고 많아 염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그 외에 높이 22m 6층 목조 구조의 갯골전망대를 통해 생태공원 주변 전역을 볼 수 있다. 전체적인 모양은 갯골의 바람이 휘몰아 오르는 느낌으로 갯골의 변화무쌍한 역동성을 대변하며 경사로는 늠내길을 산책하듯 시흥시의 호조벌, 포동, 갯골, 월곶동, 장곡동 등을 보면서 천천히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또한 총면적 4,640㎡(약 1,400평)의 논을 이용해 16개의 크고 작은 지역을 다도해 같은 섬으로 만들어 창포, 붓꽃, 금불초롱 등을 식재한 수생식물원을 관망할 수 있다. 물속에는 바다 해초를 연상케 하는 소령을 심어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2006년 9월부터 매해 갯골의 생태 자원을 활용하여 시흥시만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시흥 갯골 축제를 개최한다. 이보다 과거에는 매년 10월경 소금 생산이 마무리될 즈음을 기반해 전매국 염전제(鹽田祭)와 염부위안회(鹽夫慰安會)를 개최했다. 염부들을 위로하는 잔치로 주안출장소 주최로 염전 신사에 제례를 올린 뒤 운동회와 연회를 종일 거행했다.
이어 소래염전의 염전제는 주안염전의 염전제가 마무리된 뒤 열렸다. 이 행사는 ‘소금제’라는 이름으로 1997년까지 매년 개최되었고, 시흥시는 이를 복원하여 2019년 5월 12일에 시흥갯골생태공원에서 ‘2019 시흥염전 소금제’를 열었다.
이와 별도로 개최한 ‘시흥 갯골 축제’는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만(灣) 내부에 형성된 갯골을 배경으로 ‘신나고 유익한 생태 예술 놀이터’라는 슬로건 아래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생태 문화 예술 축제다.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적 우수성으로 시흥시의 생태환경 1등급 지역인 시흥갯골생태공원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인 셈이다. 이를 통해 2012년 2월 국가 해양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이곳만의 강점을 여과 없이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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