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현정(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배우 박현정(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시사매거진 강창호 기자] 여어득수(如魚得水), ‘물고기가 물을 만났다’는 말이다. 요즘 이 사자성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다면 박현정 배우가 아닐까 싶다. 물고기가 물을 만났으니 얼마나 기쁠까! 비 오는 날 누군가 나를 위해 우산을 씌워주는 다정함처럼, 암흑 같았던 지난날들이 빛과 생명으로 변했듯, 이제 그는 ‘사랑의 기쁨’이라는 3월의 꽃 진달래처럼 화사하기만 하다.

배우 박현정 (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배우 박현정 (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제1막 겨울 지나고 따스한 봄… 배우의 길

어둠이 빛을 못 이기고 추운 겨울이 봄을 못 이기듯 우리네 인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숨도 못 쉬고 답답했던 저의 삶에도 쉼표가 그어지고 이어 음악이 흐르듯 따스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주변에 저를 위해 애써 주시고 기도해 준 친구들과 교회 공동체 덕분에 이제는 더 이상 카메라 시선에 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독님의 컷 소리가 울려 퍼지는 현장이 그립고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가 더욱 그립습니다. 그래서 배우한테는 무대가 인생을 담은 희로애락이자 생명과 같은 삶의 터전인 것 같습니다. 마치 '백 년을 살 것처럼 일하고 내일 죽을 것처럼 기도하라(벤자민 프랭클린)'는 말처럼 간절함이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단 한 컷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는 <미션임파서블>의 톰 크루즈나 긴 세월 무명의 설움을 이긴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 그리고 엣지있는 변신의 여왕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처럼 변화무쌍하게 어떠한 상황이든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보호색을 바꾸어가며 살아가는 카멜레온처럼요. 그래야 배우죠. 특히 저는 메릴 스트립 같이 다양한 캐릭터와 변신을 주도하는 김희애, 김혜수 배우를 좋아한답니다. 그분들의 부단한 노력과 열정이 너무나 멋있고 존경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도 인생 중후반을 그렇게 불태우며 살고 싶습니다.

배우 박현정 (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배우 박현정 (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제2막 꽃피어라 달순아

KBS2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이 작품은 저의 오랜 정적을 깨운 드라마입니다. 감사하게도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던 오랜만의 복귀작이었습니다. 감독님과 선배 배우님들 그리고 스태프들이 이모저모 세심하게 잘 챙겨주신 덕분에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일일드라마이기에 날마다 소화해야 하는 대사의 분량 또한 엄청났죠. 대사 외우는 방법에는 특별한 게 없습니다. 출연진 전체 대사 리딩 녹음본을 일상 내내 듣고 듣고 또 듣는 거예요. 통으로 모든 상황을 외워야 하죠. 음악 앙상블에서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연주하듯 배우도 상대의 대사를 듣고 상황들을 인지하면서 감독의 사인에 맞춰 앙상블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거 보면 오케스트라처럼 감독은 지휘자이고 배우는 단원이겠죠. 이렇듯 촬영 현장은 총감독의 지휘하에 척척 돌아가는 공장의 기계와도 같습니다. 모든 스태프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수많은 카메라가 배우를 둘러싸며 모든 포지션을 촬영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가편집 후 모니터링하기에 완벽한 화면을 구현해냅니다. 시대가 참 좋아졌지요. (웃음)

배우 박현정 (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배우 박현정 (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제3막 작가와 배우

K드라마는 이미 세계적입니다. 우리의 드라마가 그만큼 수준이 높아진 데에는 스토리를 펼쳐가는 작가들의 뛰어난 재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바탕에 배우들의 열정이 한몫을 했고요. 또한, 작년에 LG아트센터 서울 무대에서 <리어왕>으로 열연을 펼친 이순재 선생님과, 최근 국립극장과 여러 무대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전 회차 매진 열풍으로 센세이션을 이어가는 신구, 박근형, 김학철, 박정자 선생님은 모두들 연세가 지긋하신 명배우들입니다. 그러한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역시 배우는 무대를 떠날 수 없구나"라고 감탄을 하게 됩니다. 저 역시 여력이 다하는 동안 선배님들처럼 오랫동안 무대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어느 배우나 그렇겠지만 저도 다양한 캐릭터를 지닌 배역에 대한 갈망, 갈증이 간절합니다. 기존의 역할보다는 보다 새로운, 내 안의 그 무언가를 발견하여 분출하는 에너지를 저 스스로 확인하고 싶고, 이를 작품과 연결하는 연출자, 작가와의 호흡이 절실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일 존경하며 감탄하는 작가가 바로 김은숙, 서숙향 작가입니다. 그분들의 대사는 단 한 토씨도 버릴 게 없습니다. 주인공은 물론이고 한 마디 툭 던지고 사라지는 단역까지도 그 디테일은 정말로 어록이자 예술이죠. 그래서 오랜 드라마지만 그동안 십수 번을 봤고 지금도 찾아보는 드라마가 바로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와 서숙향 작가의 <질투의 화신>입니다. 아울러 출연한 공유, 조정석 배우는 제가 배우로서 좋아하는 멋진 배우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의 매력은 굳이 제가 말 안 해도 아시겠죠? (웃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함께 작품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저의 바람이자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입니다.

배우 박현정(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배우 박현정(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제4막 연극 무대와 신작 드라마

배우에게 무대는 '심장이자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공간 속에서 객석과 한 호흡으로 서로 마주하는 무대는 그 자체로 전율을 느끼게 합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손가락 마디부터 심장에 이르기까지 전달되는 찌릿찌릿한 신호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시그널이자, 지금 어느 곳에 서 있는지를 가리키는 내비게이션이었습니다. 그렇게 10년 세월 동안 무대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절감했던 연극 <여보, 나도 할 말 있어>가 있었고, 이제 다음 무대를 준비하며 지금은 또다시 드라마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TVING 로맨스 사극 드라마 <춘화연애담>과 JTBC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입니다. 작년 <혼례대첩> 이후 연이어 드라마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단 한 씬을 위해 장시간 오가며 대기하는 모든 시간도 감사했고, 특히 저를 위해 여러모로 애써 주시는 회사(FNC엔터테인먼트)가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배우는 기다림의 미학을 즐기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었죠.

박현정 배우의 수필집_엄마, 배우, 현정(사진_AlexKang)
박현정 배우의 수필집_엄마, 배우, 현정(사진_AlexKang)

제5막 엄마, 배우, 현정

2021년에 발간한 저의 자전적 수필입니다. 지금도 반가운 사람을 만날 때면 제 가방 속에서 책 한 권이 쏙 나온답니다. 싸인과 함께 세상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죠. 책 속에는 저의 모든 삶이 담겨있습니다. 가족사부터 팬덤으로 유명했던 여고 시절, 스튜어디스와 배우의 갈림길 그리고... 저의 감정을 담아 솔직하게 기록하길 원했죠. 또한 책 속의 동백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답니다. 동백은 추운 겨울을 이기고 결국 꽃망울을 드러내는 꽃이에요. 고통, 고난을 극복하고 결국엔 해피엔딩을 피우는 꽃이죠. 그래서 저 또한 지난 과거사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결국 저는 두 딸의 엄마이자 배우이고 현정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엄마로서 딸들을 바라보며 응원하고 기도하는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되겠죠.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책 제목처럼요.

배우 박현정(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배우 박현정(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인터뷰를 마치고...

박현정 배우는 “나는 느린 사람이자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빛처럼 빠른 속도가 생명인 첨단 디지털 문명 속에서 반대 차선에 오르기를 선택한 그였기에 느린 시간 속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와 담담한 삶의 독백은 진정한 안식과 쉼을 제공했다. 그래서 가끔은 누군가의 화폭에 잠겨 깊은 사색과 몇 줄의 시와 문장을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낸다. 그리고 1년 전보다 조금 더 능숙해진 기타 솜씨를 선보이며 작은 성공에 기뻐하곤 한다. 앤서니 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는 것처럼 지금 배우 박현정은 굳굳하고 단단하게 거인으로 자라고 있다. 그의 바람처럼 유명 두 작가와 배우들과의 앙상블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여기에 덧붙여 활짝 피어난 봄날의 꽃 잎새처럼 화사한 미소를 짓는 그를 볼때면 "그래 저 모습이 박현정이지"라고 할 수 있겠다.

배우 박현정(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일러스트_인소정)
배우 박현정(사진_박현정 배우 인스타그램, 일러스트_인소정)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