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목지신(移木之信이)_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남을 속이지 않거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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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각 전 충북병무청장

 [시사매거진/광주전남] 이목지신(移木之信이)란 옛 말이 있다.

 중국의 진나라 효공(孝公) 때 상앙(商鞅, ?∼B.C. 338)이란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의 귀족 출신으로 법률에 밝았는데 위나라에서는 관직에 진출하지 못 하고, 진나라 효공에 발탁되어 관직에 진출하였다. 특히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책을 펴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틀을 마련한 정치가로 유명하다. 상앙은 법을 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이 법을 믿고 따르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문에 길이 3장(三丈, 약 9m)에 이르는 나무 기둥을 세워 놓고 다음과 같이 방을 써서 붙였다.

”누구든지 이 나무 기둥을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십금(十金)을 상으로 주리라!“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십금이라면 큰 돈이었는데 몇몇 사람만 방을 보면서 숙덕거릴 뿐 이 말을 믿는 백성들은 아무도 없었고, 나무를 옮기려 하는 백성 또한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상앙은 상금을 대폭 올려서 방을 붙였다,

”누구든지 이 나무 기둥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는 오십금(五十金)을 상으로 주리라!“

상금이 오십금으로 뛰어 오르니, 백성들이 하나 둘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 우연히 그 길을 지나가던 소문난 바보 하나가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미 소문난 바보인지라 사람들은 시큰둥하게 대답을 했다. 평소에 힘 좀 쓰기로 알려진 이 바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무 기둥을 어깨에 걸쳐 메고는 북문으로 옮기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그 결과가 궁금해서 인산인해를 이루어 바보를 따라 북문까지 이르렀는데 이 말을 전해들은 상앙은 크게 칭찬을 하며 즉시 약속대로 오십 금을 주었다. 이처럼 상앙은 진나라의 법령에 대한 불신을 없애려고 했으며, 그리고 나서 법령을 공포하자 백성들은 조정을 믿고 법을 잘 지켰다고 한다.

어느날 태자가 법을 어기는 일이 발생하자 상앙이 말 했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것은 위에서부터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태자를 법대로 처리하려고 하였지만, 태자를 처벌하지 못한다는 규정 때문에 태자를 처벌할 수는 없었고, 대신에 태자를 보좌하던 사람들에게 형벌을 준 이야기 등의 많은 일화가 전해지나 상앙의 정치적인 관점이나 그 당시의 상황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법이란 지켜지기 위하여 있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법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법에 대한 믿음이 한 번 무너지면 국민들은 법과 정의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혼란이 오게 되는 것이다. 살아가는 도중 우리는 법에 대한 신뢰를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다. 작은 이야기다. 늘 다니는 출퇴근길을 운전하고 지나가는데 어느날 ’과속단속중’이라는 팻말을 새로이 보게 되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과속을 단속하는 곳이 없더란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단속은 언제 이뤄지는지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고, 그곳은 친구가 볼 때는 적어도 단속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친구의 말인 즉, 경찰이 단속을 한다고 공포를 해놓고 운전자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는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때는 사소한 이야기라고 웃어 넘겼는데 곰곰이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작은 약속이나 규칙이나 법은 신뢰가 있어야 한다. 보통 서민들이야 큰 법은 잘 모른다. 나와 밀접한 관계가 없기 때문이고 저 위에 있는 벼슬하는 사람들이나 부자 기업들에게나 관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 법은 작은 법이 되어 생활현장에 불쑥 나타난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무슨 이런 법이 있어!“ 하고 불만을 터트린다. 물론 법은 장려가 아니라 규제일 뿐이다. 누구나 규제에 얽매이는 것은 싫어한다. 그러나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선의 악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자. 법과 법 사이의 빈 곳을 찾아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면서 부끄러움이 없이 법을 어기는 것을 보면 낯이 뜨겁다. 또한 법은 만인에 평등해야만 믿음과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라는 말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법을 잘 지키라고 국민들을 계도하기 전에 지도자들은 물론 우리들 스스로가 돌이켜 이목지신(移木之信이)의 옛 일을 곰곰이 돌이켜 보아야할 때이다.

조대웅 기자 sisa00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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