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은 왜 뒷전이 되었는가?
기후변화 대응의 비대칭성과 한국의 정책과제
1. 감축 중심주의에 가려진 기후적응의 구조적 소외기후변화 대응은 통상 ‘감축(mitigation)’과 ‘적응(adaptation)’이라는 이중축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감축은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여 기후위기의 속도를 완화하는 전략인 반면, 적응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 변화에 대응해 사회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조정 전략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국내 정책 모두 감축에 과도하게 편중된 양상을 보여왔다. 이는 단순한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 선택과 제도 설계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조적 편향의 결과이다.IPCC 제3차부터 제5차
1. 감축 중심주의에 가려진 기후적응의 구조적 소외
기후변화 대응은 통상 ‘감축(mitigation)’과 ‘적응(adaptation)’이라는 이중축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감축은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여 기후위기의 속도를 완화하는 전략인 반면, 적응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 변화에 대응해 사회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조정 전략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국내 정책 모두 감축에 과도하게 편중된 양상을 보여왔다. 이는 단순한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 선택과 제도 설계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조적 편향의 결과이다.
IPCC 제3차부터 제5차 보고서까지의 문헌 분석을 통해서도 이러한 경향은 명확히 드러난다. ‘감축’은 과학적 정당성과 기술적 해결 가능성을 앞세우며 담론의 중심에 자리 잡았고, 반면 ‘적응’은 비정형적이며 지역 의존적이라는 이유로 부차화되었다. 이와 같은 감축 우선주의는 정책적 정당성 확보가 용이하고, 국제금융 및 기술 협력과도 연계되기 쉽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선호되어 왔다(Meadowcroft & Rosenbloom, 2023).
2. 전환적 시점에서의 적응 재조명
그러나 최근 기후위기의 심화와 기후재난의 일상화 속에서 적응에 대한 관심은 구조적 전환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특히 2023년 발표된 IPCC 제6차 종합보고서에서는 ‘적응’이라는 용어의 등장 빈도가 ‘감축’을 처음으로 초과하였으며, 이는 담론 지형의 변화뿐 아니라 기후정책 패러다임의 이동을 시사한다(IPCC, 2022).
파리협정(2015)은 명시적으로 감축과 적응을 동등한 전략 목표로 설정하고, 국가적응계획(NAP: National Adaptation Plan)의 수립과 실행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다수 국가에서 적응은 여전히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재정 배분과 법제화, 정책 통합 측면에서 감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Newell et al., 2024).
3. 한국의 현주소: 제도적 정비는 있으나 이행은 지체
한국은 2010년부터 ‘국가기후변화적응대책’을 마련하고 5년 주기로 계획을 갱신해 왔으나, 실질적 이행력 확보에는 한계가 지적된다. 환경부 주도의 이 대책은 중앙집중형 구조 속에서 주로 문서 행정에 치우쳐 있으며, 지방정부와의 수평적 협력체계는 미비하다. 특히 예산 배정과 정책 기획에서의 부처 간 연계가 취약하여, 기후적응이 생활정책이나 복지정책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는 구조적 단절이 지속되고 있다(윤순진, 2021).
폭염 대응, 도시 녹지 조성, 해수면 상승에 따른 방재 인프라 구축 등의 사례에서도 정책의 분포는 지역 불균형과 계층 간 격차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고소득층 거주 지역은 기후위기 대응 인프라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반면,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 계층은 여전히 높은 기후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기후정의(climate justice)의 문제로 확장된다.
4. 기후적응과 사회정의의 접점
적응 정책은 사회적 정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구체적으로 다음 네 가지 정의의 차원을 고려할 때, 적응은 단순한 환경행정이 아니라 포괄적 사회정책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 분배적 정의: 기후위기의 피해와 자원의 배분이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불리하게 작동하지 않는가?
◼︎ 절차적 정의: 정책 형성과정에 다양한 사회집단의 참여가 보장되고 있는가?
◼︎ 인정 정의: 다양한 삶의 양식, 문화적 정체성이 기후정책에서 존중되고 있는가?
◼︎ 전환 정의: 에너지 전환과 기후 대응 과정에서 새로운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러한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기후적응은 단순한 대응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통합을 강화하는 핵심 전략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특히 원주민, 여성, 청년, 장애인 등 기존 정책에서 배제되기 쉬운 집단의 경험과 지식은 기후 회복력(climate resilience)을 강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산이다.
5. 한국의 정책적 전환 과제: 적응의 재정의
한국의 기후적응 정책은 환경정책의 부속물이라는 인식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기후적응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주거, 건강, 교육, 노동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며, 이는 복지부, 국토부, 교육부 등과의 다부처 협력체계를 전제로 한다.
또한, 재정 정책 역시 지역의 기후취약성과 사회경제적 조건을 반영하여 차등적이고 타겟화된 적응재원 배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수준의 대응’을 요구하는 현재의 정책 방향은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비효율적 접근에 불과하다. 이는 ‘적응의 형평성’을 중심에 둔 재정정책, 공간정책, 도시계획의 혁신을 요구한다.
6. 결론: 후순위 전략이 아닌 공동 주도 전략으로
기후적응은 더 이상 감축의 보조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 생존의 문제이며, 동시에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다. 기후위기의 불가역성과 국지적 파급력을 고려할 때, 적응은 독자적 전략이자 미래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감축과 적응은 상호보완적 전략으로 병행되어야 하며, 그 균형 있는 구현은 단지 기술적 조합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윤리적 선택의 문제이다.
한국은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적응은 오랜 시간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상태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기후적응은 단지 '대응'이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선언이어야 한다.
[요약] 기후적응은 왜 뒷전이 되었는가 – 감축 편중 담론의 재검토와 한국의 전략 과제
기후변화 대응은 감축(mitigation)과 적응(adaptation)의 이중 축으로 구성되지만,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감축에 편중된 정책과 담론을 전개해왔다. IPCC 보고서와 국제 기후거버넌스는 측정 가능성과 기술적 접근이 용이한 감축을 우선시해왔으며, 적응은 비정형적이고 분산적이라는 이유로 주변화되었다. 그러나 최근 기후재난의 상시화로 인해 적응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IPCC 제6차 보고서에서는 처음으로 ‘적응’의 언급 빈도가 ‘감축’을 넘어섰다.
한국의 경우, 제도적 틀은 마련되었으나 실제 정책 이행과 예산 배분은 매우 제한적이며, 사회적 취약계층과 지역 간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적응은 단순한 환경기술의 문제가 아닌 사회정의의 문제이며, 분배적·절차적·인정적·전환적 정의의 실현과 긴밀히 연결된다.
이제 한국은 적응을 ‘부가적 환경정책’이 아닌,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전략’으로 재정의하고, 복지·보건·도시계획 등과 통합된 다부처 연계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후적응은 감축의 하위 전략이 아니라,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필수 축이다.
[Summary] Why Has Adaptation Been Sidelined? — Reassessing Mitigation Dominance and the Strategic Task for Korea
Climate change response has long been defined by two pillars: mitigation and adaptation. However, global discourse and policy have heavily prioritized mitigation due to its quantifiability, market compatibility, and technological appeal. Adaptation, by contrast, has been marginalized for its complexity and contextual nature. This imbalance is increasingly problematic, as the intensification and normalization of climate-induced disasters reveal the limits of mitigation alone. In 2023, the IPCC’s Sixth Assessment Report marked a turning point, with references to ‘adaptation’ surpassing ‘mitigation’ for the first time.
In South Korea, institutional frameworks for adaptation exist, but implementation remains weak. Budget allocations are limited, and spatial and socio-economic inequalities persist in adaptive infrastructure and support. Adaptation is not merely a technical fix—it is fundamentally a justice issue, tied to distributive, procedural, recognitional, and transitional equity.
Korea must redefine climate adaptation not as an auxiliary environmental policy but as a core component of its social safety net. This requires integrated, multi-ministerial collaboration across welfare, urban planning, and public health sectors. Adaptation must be co-equal with mitigation, forming a twin strategy toward climate justice and systemic resilience.
참고문헌
IPCC. (2018). Global Warming of 1.5°C – Summary for Policymakers. IPCC. (2022). Climate Change 2022: Mitigation – Summary for Policymakers. Meadowcroft, J., & Rosenbloom, D. (2023). Governing the net-zero transition: Strategy, policy, and politics. PNAS, 120(47), 1–11. Newell, P. et al. (2024). Toward transformative climate justice: An emerging research agenda. Institute of Development Studies. UNEP. (2024). Emissions Gap Report 2024: No more hot air … please! 윤순진. (2021). “한국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내용과 과제.” 『에너지 포커스』, 18–32. 윤순진. (2023). “기후위기시대, 탄소중립정책과 기후적응정책.” 『탄소중립시대의 환경정책』, 박영사: 181–231. 윤순진·김선회. (2024). “단어 빈도의 통시적 분석을 통해 본 IPCC 기후변화 담론 변화.” 『Studies in Linguistics』, 73, 274–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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