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근 칼럼니스트의 기사

총 9건

시흥갯골생태공원, 소래생산지 & 최고의 생태공원

여행·레저

[시사매거진 오경근 칼럼니스트] 일반적으로 갯골은 개펄이라고 불리는 간석지 사이에 물길을 일컫는다. 그로 인해 넓은 바닷가에 흑회색으로 평평하게 자리하는 습지 형태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시흥시 장곡동에 있는 갯골은 여느 곳과 달리 내륙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하천에 발달해 있어 좁고 가파르다. 서해안 지역인 인천의 바닷물이 시흥시 하천으로 흘러들기도 하고, 또 시흥시 하천이 바다로 흘러가 밀물과 썰물 형태로 맞닿아 있다. 바로 내만(內灣) 갯골의 전형이다.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2012년 2월, 시흥시는 이곳 갯골을 국가 습지 보호구역으

오경근 칼럼니스트

시흥시 관곡지, ‘연꽃 재배의 시원’

뉴스

[시사매거진315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꽃 중의 하나인 ‘연꽃’은 흐리고 탁한 저수지(貯水池)나 진흙탕 속에 피어나면서도 매우 청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로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희거나 연분홍의 수줍음과 청초함을 그대로 간직한 꽃잎과 더불어 넓고 평평한 잎새는 물빛 청량감을 더한다.이러한 연꽃을 들판 가득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조선 세조 때 명나라 사신으로 남경을 다녀온 강희맹이 ‘전당홍’이라는 연꽃을 가장 처음 심은 시흥시 하중동 소재의 가 바로 그곳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경근 칼럼니스트

윤선도의 생가터 있는 동숭동의 ‘대학로’

생활/문화

[시사매거진301호] 마로니에 꽃이 피는 초여름이다. 한두 달 더 지나면 열매가 맺은 계절이다. 희고 분홍빛 나는 꽃잎의 거리는 역시 서울시 중구 명동1가 소재인 동숭동 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정이었던 ‘마로니에 공원’이 으뜸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최고의 시인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선생의 집터가 있어 오래된 시간의 향기가 난다.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가 문학의 2대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선생은 본래 ‘연화방(蓮花坊)’이라 불리던 현재의 ‘연지동(蓮池洞)’이라 에서 태어났

오경근 칼럼니스트

남양주 광릉, 허례허식 격파한 세조와 정희왕후의 정신세계

뉴스

[시사매거진300호] 조선시대 정궁이며 법궁인 경복궁(景福宮)을 중심으로 한양 사대문(四大門) 밖은 조선 왕들이 죽어서 묻힐 ‘신(神)들의 정원(庭園)’으로 역사학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서울 강남구 선릉과 정릉 외 헌릉과 인릉을 비롯해 총 40기의 왕릉은 물론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의 사친 무덤을 뜻하는 원(園) 13기, 왕족의 묘(墓) 52기가 그것이다. 추가로 북한에 왕릉 10기가 남겨져 있다.그중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광릉(光陵, 사적 제197호)’은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와 정비인 정희왕후의

오경근 칼럼니스트

북궐도에 나타난 조선정치 1번지 표상한 법궁 ‘경복궁’

생활/문화

[시사매거진274호] 조선왕조 정치의 1번지로 손꼽히는 경복궁은 유교적 사상과 이념에 기반해 건축된 법궁(法宮)이며 정궁(正宮)이다. 큰 대문이며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을 중심으로 남쪽에 관청가인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를 조성하고, 그 연장선 위에 중문인 흥례문 안쪽으로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등 주요 궁궐 건물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각 전각마다 유교적 이상주의를 담은 이름을 부여해 조선왕조의 건국 통치 이념을 담았다. 매우 상징적이면서 정치적인 명명이다. 정도전은 ‘경복(景福)’이란 이름을 통해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

오경근 칼럼니스트

사직단, 유교문화의 경제적 기반인 농사신에게 제사하다

뉴스

[시사매거진273호] 새 나라를 개창하며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은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이다.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며 유교문화의 경제적 기반인 농업 신들을 숭상하는 가시적 공간이다. 종묘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들의 혼을 담은 궁궐이었다면 사직은 토지신과 농사신의 혼을 담은 제궁이다. 통치자와 함께 흥망성쇠를 같이 한 이곳은 그래서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다. 또한 대한제국 시대에는 황제국 칭호에 따라 사직이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격상되어 제사가 행해졌으나 일제

오경근 칼럼니스트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 생거진천에 묻히다

생활/문화

[시사매거진259호=오경근 칼럼니스트]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를 논하자면 당연히 송강 정철을 으뜸으로 손꼽는다. 그를 빼놓고서는 당대 국문학과 한문학을 아울러 평론하기 어렵다. 그는 조선중기 인조와 명조, 선조에 이르기까지 3대 임금이 치리하는 동안 왕실의 외척으로서, 정치가로서, 문필가로서 당당히 제 위치를 점유한 인물이다. 또한 국문학사에 빛나는 큰 업적과 더불어 숱한 파란을 남긴 그는 그 시대 자연적, 사회적 환경과 더불어 임억령, 김인후, 송순, 기대승과 같은 호남 사림의 여러 학자 사우(師友)들의 문학적 영향을 답습한 외

오경근 칼럼니스트

대왕 코끼리상의 가야산, 독립운동가 윤봉길 낳다

스페셜 · 오피니언

(시사매거진248호=오경근 칼럼니스트) 작지만 나름 단단하고 우람한 코끼리 형상으로 인해, 백제시대 ‘상왕산(象王山)’이라 불리던 충남 예산의 ‘가야산(伽倻山)’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국가의 중대한 제사(중사)를 지내기 위해 산 아래 ‘가야사’란 사찰을 세운 뒤 가야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특히 이곳은 ‘왕재(王才)가 태어날 곳’이라는 풍수지리설을 타고,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가 묻힌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곳에 1932년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의 수뇌부에 폭탄을 투척한 독립운동가 윤봉길

오경근 칼럼니스트

수도 서울을 지키는 4대 요새 중 동쪽의 남한산성

칼럼 · 오피니언

(시사매거진247호=오경근 칼럼니스트) 조선시대 새로 건립된, 신 수도 서울을 구획하는 4개의 큰 성문이 있다. 바로 속칭 동대문이라 불리던 정동의 흥인문과 서대문이라 불린 정서의 돈의문, 그리고 남대문이라 불린 정남의 숭례문과 정북의 숙정문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이들을 지키는 외곽의 4대 요새가 있으니 바로 동쪽의 광주, 서쪽의 강화, 남쪽의 수원과 북쪽의 개성이다. 이들 요새는 각각 산새와 지형 혹은 물길과 지리, 지세에 따라 축성된 것으로 나름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 그중 동쪽의 광주는 오늘날 ‘남한

오경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