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변화로 3500년 관습 무너져, 핑크갱부터 유혈사태까지… 저항 시위 확산

인도는 독립 때 법적으로 카스트 제도를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인의 70% 이상이 살고 있는 농촌에서는 카스트 제도와 달리트 차별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특히 인도 북부는 지금도 카스트의 악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 중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 주(州) 반다(Banda) 지역은 인도에서도 빈곤층이 많은 지역 중 하나로 인구의 절반 정도가 하위 카스트인 수드라와 카스트 안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여성들은 봉건적·가부장적 위계질서와 문화로 인해 더욱 심각한 빈곤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최하층민인 불가촉천민은 가장 더럽고 힘든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특히 여성들은 상위 카스트 남자들에게 폭행당하는 일도 적지 않다.

3,500년 동안 이어진 ‘카스트 제도’
힌두교 교리에 기반 한 인도의 3,500년 넘게 이어진 관습, 카스트 제도는 바라문 또는 브라만(Brahman:사제자)·크샤트리아(Kshatrya:무사)·바이샤(Vaisya:농민·상인 등의 서민), 피정복민으로 이루어진 수드라(Sudra:노예)의 네 바르나 즉, 카스트로 나뉜다. 수드라를 제외한 세 카스트는 종교적으로 재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드비자라고도 한다. 네 카스트는 존귀한 자와 비천한 자라는 고저(高低)의 서열을 나타내고 있어, 보다 높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은 보다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의 곁에만 가도 더럽혀진다고 여겼다.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은 부정시 되었고 따라서 각 카스트는 직업을 세습하였으며, 카스트 상호간의 통혼(通婚)은 금지되었다. 또한 이 네 카스트 밑의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불가촉천민(언터처블·하리잔)과 부족민을 아웃 카스트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카스트제라고 할 때는 불가촉천민도 포함된다. 이것이 다시 2,000여 개의 복잡한 하위 카스트로 나뉘어져 있으며 천민 차별을 금지한 헌법에 따라 천민과 부족민들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민으로 부른다. 상위 카스트는 전 인구의 12% 밖에 되지 않으며, 76%는 기타소외카스트(52%)와 지정카스트(16%), 지정부족민(8%) 등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계층이다. 1억 7,000만 천민들은 자신들을 ‘억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리트로 부른다.

인도의 경제성장 속에 급격히 무너지는 카스트 제도
그동안 카스트 제도는 인도 사회를 고착화, 무기력화, 비능률화 시켰으며 경제발전을 지연시켰다고 비난받아 왔다. 또한 카스트 간의 배타적 단결심이 독선주의와 외부인에 대한 불신감 및 차별의식을 기르고 애국심과 민족적 자각의식을 막아 왔다고 비난 받았다. 더욱이 카스트 사회에서는 상위자의 교만성과 하위자의 비굴성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인본적인 차원에서 심각하게 지적받아 왔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카스트 제도는 인도의 독립과 함께 법적으로 폐지되었다. 인도공화국 헌법 제17을 보면 ‘불가촉천민제는 폐지하고 어떤 식으로든 그 관행을 금지시킨다. 불가촉천민이라 하여 그들에게서 어떤 자격을 박탈시키려는 것은 법률에 따라 처벌되는 범죄에 해당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카스트 제도의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계급간의 차별이 뿌리 깊게 남아 있지만, 최근 인도에서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카스트 제도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급격한 경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해 경제적으로 성공한 달릿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침이 땅을 오염시킬까 목에 단지를 걸고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허리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했던 인도에 불가촉천민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불가촉천민들을 억압해 온 카스트 제도가 변화하는 인도의 경제성장 속에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천민의 여왕이라 불리는 마야와 티 주지사는 인도 최초 불가촉천민 출신 여성 주지사로 이제 당당히 인도 대권에 도전할 예정이다. 역시 불가촉천민 신분으로 인도 최고의 경제학자이자 차기 대통령으로 거론되고 있는 라렌드라 자다브 푸네대학 총장, 이들의 성공은 1억 7,000명이 되는 불가촉천민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다.
방갈로르대학 수르니바사 무르티는 “주로 도시에서 카스트 제도가 깨지고 있다”면서 “시골은 아직 힘들지만 요즘은 다른 카스트와 결혼해도 집안에서 배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도의 이러한 변화의 주축에는 인도 정부의 대학입시나 공무원 채용에 하위계급을 우선시 하는 할당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1억 6,500만 명에 이르는 불가촉천민은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 카스트 제도의 네 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최하층계급인데 인도 정부는 이들에게 공직과 대학 입학 정원의 25%를 할당하고 있다. 달리트 출신의 초대 법무장관이자 인도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는 대학 입학과 공무원 임용에 지정카스트와 부족민에 할당하도록 헌법에 명시했다. 또한 선거에서도 일정비율 의석을 할당토록 했으며, 카스트 제도의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인 불가촉천민에 대한 천시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불가촉천민은 상위 카스트 브라만이 식사하는 모습조차 보면 안 되고, 상위 카스트의 사람이 불가촉천민에게 음식을 받아먹으면 속죄의 의식을 치러야 하는 관습이 있는 지방에서는 상류 카스트와 불가촉천민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보호를 위한 차별정책도 제시했다.

카스트 저항 시위 확산, 유혈 사태까지 이어져
그런데 최근 이 할당정책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할당정책으로 진학과 취업이 막힌 귀족계급의 브라만들이 새로운 빈민층으로 전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달리트들만이 하는 일로 여겨지던 화장실 청소나 릭샤(인도와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주로 인력을 이용하는 교통수단)를 끄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가장 천한 일로 여겨져 불가촉천민이 담당해오던 화장실 청소를 사재계급인 브라만이 한다는 것은 인도인들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브라만인 딜립초드리는 “요새 취직을 할 수가 없다. 일자리가 없는데 어떻게 하겠나? 그래서 일을 찾는 대로 바로 취직을 해야 한다”며 “화장실에서 일하는 브라만들이 많이 있다”라고 말했다.
아리나브 델리대학교 사회학 교수는 “지금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루에 밥 두 끼를 먹는 것이다. 돈도 없고 끼니를 거르면서 카스트 제도만을 따를 수 있는 힘이 있겠는가? 경제적인 문제로 카스트 제도가 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도정부는 최근에 대학진학과 공무원채용에만 적용되던 하위 카스트 우대 제도를 민간 기업으로까지 확대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 지방에서는 상위 카스트들이 자신들을 불가촉천민으로 편입시켜달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역차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8년 5월23일에는 인도정부의 이러한 정책으로 인도 카스트 제도 하에서 하층계급 바이샤에 속하는 구자르 부족이 자신들을 가장 낮은 계급인 불가촉천민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구자르 부족은 계급을 낮춰달라고 요구한 이들은 라자스탄주에서 시위를 하며 이를 제지하는 군경과 충돌,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정부는 구자르 부족이 요구한 7,000만 달러의 지원금에 대해서는 검토할 수 있지만 최하층계급 편입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카타리아 라자스타주 내무장관은 지난 2008년 5월24일 “인도 라자스탄 주에서 구자르(양치기) 부족들과 경찰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 했다”면서 “구자르 부족들이 경찰들에게 자신의 계급을 바꿔 달라며 시위하자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유혈 사태로 번졌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의 총기 난사로 최소 15명의 부족이 목숨을 잃었다”면서 “경찰은 또 같은 날 사칸드라에서 항의를 하던 수천 명의 시위대들을 향해 무작위 사격을 가해 최소 1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최근 이처럼 정부가 제공하는 특혜 때문에 불가촉천민으로 편입되기를 바라는 상위 계급들이 늘고 있다.
구자르 부족 대표는 이와 관련 “우리는 돈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정부는 카스트를 다시 분류하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카스트는 인도 사회에 너무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 헌법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사람들의 삶을 제한하고 있다.
전국달리트인권캠페인의 빈센트 마노하란 사무총장은 “독립 이후 일부 달리트들은 수천년 만에 처음으로 교육을 받았고, 극소수는 교수, 의사, 관리, IT 전문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인도인의 16%인 달리트 중 전문직에 진출한 이들은 1%도 안된다”고 말했다.
지금도 하위 카스트에 있는 인도인들은 신분을 뛰어넘기 위해 교육을 받으려고 애쓴다.
민즈 네루대학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내가 낮은 카스트라서 사람들이 내 실력을 믿지 않아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공부했고 오히려 이런 어려운 상황 때문에 내가 더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학대·부패에 맞선 인도 女자경단 ‘핑크갱’
정의를 위한 갱단임을 자부하는 인도 ‘핑크갱(Pink Gang)’은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 주(州) 반다(Banda) 지역의 수백 명의 여성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들은 여성폭력과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직접 파헤치고 응징하는 등 여성 및 하층민 보호에 나서고 있다. 인도 전통의상인 분홍색 사리를 입었다 하여 스스로를 핑크갱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3년 전부터 여성과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핑크갱’의 창설자인 삼파트 팔 데비 대표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관료들과 경찰도 이미 부패했고 반 빈곤층 세력일 뿐”이라며 “ 때문에 우리 손으로 법을 지키고 수호해야 한다”면서 자신들은 ‘정의를 위한 갱’이라고 강조했다. 또 “인도의 지역사회에서 여성은 교육도 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돈에 팔려 결혼해야 한다”면서 “여성들은 공부를 통해 이 같은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독립적인 존재로 변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파트 팔 데비 대표 역시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했다. 때문에 이들의 자발적인 변화가 인도사회에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주 선거에 출마하기도 한 삼파트 데비는 “인도의 지역사회는 여전히 빈민 여성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너무 일찍 결혼시키거나 돈을 주고 팔아버린다”고 지적하며, 교육을 통한 여성의 독립이 단체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핑크갱들은 부인을 때리는 남편들을 찾아가 사과를 받아내고 말을 듣지 않으면 라티(대나무 막대기를 쓰는 전통 무술)로 때려주기도 한다.
삼파트 팔 데비는 “모든 여자들이 찾아온다. 특히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들이 많이 찾아온다”라고 말한다. 때문에 삼파트 팔 데비는 직접 마을 여성들에게 간단한 호신술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핑크갱이 페미니스트 단체는 아니다. 이들은 ‘여성에게는 함께 살 남성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 가령 처가에 돈을 요구하며 아내를 쫓아낸 남편이 있다면 이들은 우선 그 남편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다. 무력을 동원하는 것은 말이 통하지 않았을 때에만 한해서이다. 이렇게 해서 집으로 돌려보낸 여성만도 11명이라는 것이 핑크갱 측의 설명이다. 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남성 단원들도 꽤 많다.
또한 핑크갱들은 빈민들이 당한 범죄에 대한 조사를 거부하는 경찰은 주민운동을 펴 파면 당하게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빈민들의 먹거리를 빼돌린 곡물 배급소의 곡물 수레를 훔쳐와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줬으며 정부가 구멍투성이인 도로 보수 예산을 집행하지 않자, 몇 시간 동안 도로 한가운데에 서 차량의 통행을 막아 승인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들은 여성단원들과 함께 조혼 풍습과 지참금 제도, 정부 관료들의 공금 횡령 등 다양한 문제점 해결에 나서고 있다. 불가촉천민이라는 이유로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핑크갱.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축에 드는 이 지역에서 여성들이 조혼과 다우리(혼인지참금), 가정폭력, 부패 등으로 고동 받고 있는데도 아무도 돕지 않는 현실에 분노해 모임 결성을 주도했다고 한다.
삼바트데비 핑크갱 리더는 “여자들이 노예처럼 살았지만 지금은 우리에게도 힘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지금 인도는 케케묵은 카스트 제도로 인한 오랜 관습들을 버리기 위해 정책에서부터 여성과 빈곤층에 서서 정의를 외치는 핑크갱까지 스스로의 인권을 찾고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1세기 평등을 외치고 있는 인도의 처절한 몸부림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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