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과 사귀다』 『나무는 간다』
『끝없는 사람』 『해를 오래 바라보았다』-김영광

저자 이영광 | 출판사 현대문학

[시사매서진=여호수 기자] 신작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해 미당문학상을 수상하며, 유려한 리듬과 명징한 언어로 단단한 시적 사유를 펼쳐온 이영광 시인의 신작 소시집이다.

책은 곤궁한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오는 떨칠 수 없는 존재의 고통과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들에 주목하며 참혹한 현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느끼는 절망과 분노 그리고 희망의 압축된 정조를 보여주는 23편의 시편들을 엮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시와 여기 없는 여자이고, 제일 잘하는 건 그만두는 거다. 그런데도 술은 아직 나를 마셔준다. 나는 술의 기호품이다. - 에세이 「명정酩酊 수첩」 중에서

깨끗한 사람 보면 욕심 난다 달려들고 싶어진다 그 깨끗함을 몽땅 빼앗아 내 몸에 칠하고 싶어진다 깨끗함에 온통 더럽혀지고 싶다 / 더럽게 깨끗해진다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중에서

난 돈이 한 개도 없어 / 술값은 많아 / 돈은 없어 / 술값은 이렇게나 많아 - 「눈사람」 중에서

자신을 향한 자조와 비탄을 특유의 유머와 쓸쓸한 정서로 묘사한 시편들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도무지 맨정신으로 살아지지 않는 세상을 향해 조용하게 읊조리는 그의 반성적 독백은 슬픔이었다가 분노였다가 용서였다가 결국 사랑이 되어, 우리에게 삶의 활로를 모색케 한다.

그의 시는 고통을 감내하며 세상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소중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냈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