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야구인'이 되고 싶은 이만수 이사장

[시사매거진=박희윤 기자] ‘라오스의 아짠’이라는 애칭으로 라오스에서 야구전도사가 되어 있는 ‘헐크’ 이만수 헐크 파운데이션 이사장과 인터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행되었다. 이만수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운동선수의 순수함을 보이는가 하면 목표에 대한 열정을 보이며 라오스의 상황과 헐크 파운데이션을 알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헐크 파운데이션에서는 한 구좌당 월 1만 원의 기부금을 받아 국내 유소년을 지원하고 라오스의 현 선수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필립 질레트가 우리나라에 야구를 보급해 지금에 이른 것처럼, 야구 불모지인 라오스에 한국처럼 야구를 통해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키워 나가는 것을 후원하고 있다. 재능 기부와 기부 활동으로 전국을 다니며 동분서주 품을 팔고 있는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요즘 근황은

라오스와 한국을 오가며 라오스의 야구를 알리고 도움을 얻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경기 이천에서 열린 제6회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서울 나인빅스와 양구 블랙펄스의 결승전에 참석했다. 블랙펄스 팀은 재능 기부로 몇 번 방문한 인연이 있는 팀이다. 라오스에도 여자 야구대표팀이 있다. 결승전에 참석한 주된 이유는 여자 야구연맹 회장, 부회장님들과 실무자를 만나 어떻게 하면 라오스 여자팀을 LG배에 참가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침 LG 대표이사도 같이 만나서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일단 초청을 받아 내년부터 참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문제는 경비다. 숙소와 식사 등의 경비는 문제가 없지만, 특히 비행기 비용이 문제다. 현재 구단주이기도 하면서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데,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고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상의했다. 이런 일들이 요즘 하고 있는 일이다.

 

라오스에서 어려웠던 점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작은 면적의 나라이며 인구는 7백만도 되지 않는다. 라오스는 모계사회다. 여자가 생활력이 강하고 여자가 남자를 먹여 살린다. 40도가 넘는 날씨에도 여자들은 밭에 나가 일을 하는데 남자들은 그늘에서 담배를 태우며 누워있다. 그런 모습은 야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작년 11월에 태국과 라오스 국가대항전이 있었다. 남녀 모두 2패씩을 기록했다. 경기가 끝나고 여자 선수들은 마음 아파하고 모두 울기까지 했다. 반면 남자 선수들은 아무렇지 않고 웃기만 했다. 라오스 말 중에 ‘보뺀냥’이란 말이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괜찮아’라는 뜻인데 약속에 늦어도, 일에 차질이 생겨도 ‘보뺀냥, 보뺀냥’하고 넘어가는 나쁜 말이다. 그런 습관이 몸에 배어 아이들도 시합에 져도 ‘보뺀냥’ 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호의를 베풀어도 감사하는 말이 없다. 불교국가이기 때문에 호의를 베푸는 것에 대해 ‘너희들이 복을 받기 위해 도와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런 문화를 바꾸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헐크 파운데이션은 지난 5월 9일 (주)데이비드토이(대표 신상훈)의 후원으로 라오스 야구단에 박상수 감독이 파견되는 협약식(사진_헐크 파운데이션 홈페이지)

현재 라오스 야구 지원 상황은

원래 감독이 3분 계셨다. 코이카에서 파견을 나오신 박종철 감독님, 문체부에서 파견 나오신 권영진 감독님, 지난 6월에 ‘데이비드 토이’라는 회사의 대표님이 개인적으로 지원해주신 박상수 감독님, 이렇게 3분이셨는데, 지난 8월 박종철 감독님이 파견 기간을 채우고 귀국하셨다.

지금 라오스의 가장 큰 문제는 100명이 넘는 선수들에 비해 지도자 수가 너무나도 적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좋은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여자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라오스는 모계사회다. 그리고 남자 야구는 세계적으로 벽이 무척 높다. 그렇다고 남자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말이 아니다. 남자 야구에 비해 여자 야구는 상대적으로 벽이 낮다. 여자 야구는 조금만 노력하면 아시아 야구뿐만이 아니라 세계대회에서도 10위 안에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자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여자 야구 감독은 청각장애우들과 함께 14년 동안 충주 성심고등학교에서 야구를 지도해 오신 박상수 감독님이다. 지난 6월 1일에 파견되어 여자 야구만 전문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지난 8월 아시안 게임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이만수 이사장(사진_헐크 파운데이션 홈페이지)

‘라오스의 아짠(선생님)’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라오스의 변화는

처음 라오스에 와서 아이들을 만나고 꿈이 무어냐고 물어봤는데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이 꿈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하루 세끼도 제대로 못 먹는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꿈이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제가 야구인이다 보니 야구로 아이들에게 비전을 주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베네주엘라의 엘 시스테마(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받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아이들이 한국에 두 번 나왔다. 2년이 지난 후 아이들에게 다시 꿈이 무언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많이 변화되어 깜짝 놀랐다. 어떤 학생은 정치인이 되겠다, 의사가 되어 죽어가는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치료하겠다, 선생님이 되어 문맹을 없애고 한국처럼 잘 살도록 교육을 하겠다, 사업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벌겠다 등 많은 꿈을 말할 때 ‘아, 야구가 인생을 바꿀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척박한 라오스에 건너가서 무모할 정도로 야구를 시작했지만 아이들의 그런 말을 듣고 많은 힘을 얻었다. 인생관을 바꿀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야구인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지난 8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참석했다. 하나 밖에 없는 방송인 라오방송에서 이틀 동안 야구를 생중계했기 때문에, 온 국민이 보기 싫어도 야구 중계를 봤다. 그 후 라오스에 야구 붐이 일어났다. 선수가 100명이 넘을 정도로 늘어났지만 학생들의 숙식을 해결하려 하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26명 정도 숙식을 해결하지만 나머지는 통학으로 해결하고 있다.

헐크 파운데이션 홈페이지(사진_헐크 파운데이션 홈페이지 캡쳐)

헐크 파운데이션에 대한 소개

사회에 나와서 처음에 1년 동안은 라오스에서 감독으로 있으면서 지도했는데, 감당이 되지 않아 코이카와 문체부의 도움을 얻었다. 저는 뒤에서 아이들이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물질적인 지원을 하려고 전국에 있는 지인들을 모두 찾아다녔다. 사정을 설명하고 라오스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드렸지만 기부받기가 쉽지 않았다. 재능 기부를 하면서 사비도 많이 지출했지만 이렇게 하다가는 제가 가진 재산을 모두 넣어도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국내 유소년 선수들과 라오스 현지 선수들을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했다. 그 재단이 ‘헐크 파운데이션’이다. 라오스에는 야구장이 없다. 축구장을 빌려 야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땅을 받아 야구장 4면을 짓고자 하는데 쉽지가 않다. 우리나라에 있는 야구장처럼 큰 야구장이 아닌 야구장으로 예산은 약 15억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야구장 만드는 것을 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다. 재단에 기부하면 연말 소득공제도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

지난 9월 서울 동도중 야구부에 피칭머신을 후원하는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이만수 이사장(사진_헐크 파운데이션 홈페이지)

헐크 파운데이션’에서 기부도 하고 있다는데

지금까지 4억을 기부했다. 개인적으로 대구의 병원과 광고 계약을 체결해 2억을 받아 기부하고, 작년에는 피칭머신을 생산하는 주식회사 팡팡과 계약해 광고료 1억 대신에 피칭머신을 받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두 달 기부를 하는데 두 달이 부족해서 대표에게 기부를 요청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었다. 한 달에 한 학교씩 12대를 작년에 모두 기부했다. 호응이 좋아 올해 재계약을 했다. 작년과 같은 방식으로 피칭머신을 달라고 요청을 했고, 작년에는 고등학교에 기부를 했지만 올해는 리틀 야구와 초등학교에 주기로 해서 지방을 다니며 계속 기부를 하고 있고 이제 두 대 남았다.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선수로서는 아무래도 프로야구가 처음 생겼을 때 개막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MBC 청룡(지금 LG)과 삼성이 개막전을 했는데, 그 경기에서 첫 안타, 첫 타점, 첫 홈런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프로야구의 역사에 영원히 남는 기록이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지도자로서는 미국 시카고 화이트 삭스에서 88년 만에 월드시리즈를 우승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최고의 스타가 왼손 투수인 마크 벌리였다. 비가 와서 경기가 열리지 못하고 경기장에는 방수포가 씌워져 있었다. ESPN에서 직접 중계를 하고 있었는데, 마크 벌리가 저에게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다. 수많은 팬들 앞에서 마크 벌리와 함께 요즘 선수들이 하는 것처럼 방수포 위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자, 팬들이 기립박수를 치고 모두 즐거워했고 그 장면은 ESPN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문제는 다음 날 캔 윌리엄스 단장의 호출이었다. 단장이 “왜 슬라이딩을 했냐”고 물어보자 “마크 벌리와 팬서비스 차원에서 한 것이다”라는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단장은 “마크 벌리 몸값이 얼마인지 아는가? 마크는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고 있는데 슬라이딩을 하다가 어깨라도 다치면 책임질건가?”라는 말에 무척 당황했다. “내 실수다. 팬들을 위해 한 행동인데 잘못했다”라고 사과를 하자 단장은 “당신의 급여를 모두 합쳐도 그 연봉을 갚을 수 없다”고 말했던 일이 기억난다. 현장과 경영자의 입장 차를 확인했던, 그리고 문화적 차이를 경험했던 일이라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제가 강의를 할 때 많이 사용하는데 ‘10+3=30+20’이라는 넌센스 수학 문제다. 이 의미는 인생 10년을 주기로 3번의 꿈을 키운 것이 30년이다. 처음 10년의 꿈을 키운 때는 야구를 처음 시작할 때인 중학교 1학년인 14살 때 10년을 생각하며 꿈을 키웠다. 그게 첫 번째. 두 번째 10년은 미국에서 10년을 바라보고 꿈을 키웠다. 세 번째 10년은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국내로 들어오면서 10년의 꿈을 키웠다. 그게 30년이고, 인생의 마지막 20년 프로젝트가 있다. 라오스에 야구장 4면을 지어서 인도차이나반도 국가 대항시합을 먼저하고, 아시아 대회를 열고, 세계 대회를 여는 것이 마지막 20년 프로젝트다. 사실 주춧돌만 놔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04년에 필립 질레트 선교사가 YMCA를 통해 보급했던, 그 야구가 지금은 세계적인 야구가 되었듯이 지금 라오스의 주춧돌만 놔 주면 언젠가는 우리나라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야구인으로서 영광보다는 개척자로서 역할을 하고 내 뒤에 오는 후배가 반드시 이루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20년 프로젝트다.

2018년 1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개최된 제4회 한국-라오스 국제 야구대회 기념사진(사진_헐크 파운데이션 홈페이지)

어떤 ‘이만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늘 생각하는 것이 야구인으로서 ‘이만수가 정말 좋은 야구인이었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팬들에게 또는 언론에서 제일 받는 질문이 언제 다시 현장에 복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현장에 되돌아가기 위해 그 주위를 맴돌다 보면 제 인생은 없다. 제가 하는 모든 재능 기부나 봉사를 하면서 현장 복귀를 말하면 이 일은 가식적인 일이 되고,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만수 헐크 파운데이션 이사장(사진_신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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