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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반역 <제6장 신비한 미소녀>
  • 유광남 작가
  • 승인 2018.11.0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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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47호=유광남 작가) “내가 알고 있는 여진족(女眞族)의 조상이 바로 개가 아니더냐?”

아율미는 갑자기 배를 잡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이상하게도 그 웃음은 봄 날 만큼이나 청량하게 들려왔다.

“호호호, 맞아. 조선 땅이 개 같고, 우리 오랑캐 여진의 조상이 개...라면 당연 조선은 우리 조상이야. 그래...인정해!”

이와 같은 황당한 대답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김충선은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얄미울 정도로 침착했고 전혀 나이답지 않게 노련했다.

“여진의 시조가 개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화가 있지. 한마디로 개 같은 이야기고, 진짜로는 이 조선 땅의 옛날 그 옛날에 권력 투쟁에서 밀린 왕족 한 명이 부상을 당하여 네 발로 우리 부족으로 기어 들어와 족장의 딸과 밤새도록 그 짓거리를 했다는 거야.”

기가 콱 막혔다. 설마 어린 계집아이가 이토록 대담하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 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김충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너... 사내도 아닌 것이 그런 말투를 사용 하다니 쯧쯧!”

“혀를 차네? 왜 내가 어쨌기로서니?”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 짓거리라니? 그게 할 말이냐? 우린 초면이라고!”

아율미가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히려 콧방귀를 뀌었다.

“그 짓거리라는 건 치료를 말함인데...뭐가 잘못 된 건가? 네 발로 기어들어 온 부상자를 성심껏 치료한 것이 잘못인가?”

아뿔싸! 김충선은 농락을 당한 걸 깨달았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애초의 등장부터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또 다시 된통 한방 얻어터지고 말았다.

“밤새도록 치료라......?”

“남녀가 밤을 지새워 가면서 상처를 어루만져 줬다면 당연지사 정이 오고 갔을 것이고, 그리하여 선남선녀가 한 눈에 반하여 사랑을 나누고, 혼인을 하여 우리의 시조가 탄생 하셨으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김충선이 끼어들었다.

“오랑캐 여진의 뿌리가 이 나라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거냐?”

“그대 일본인보다도 우리가 가까워. 적어도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잖아. 북쪽으로. 누구처럼 바다건너 섬은 아니야.”

김충선은 울화가 치솟았으나 간신히 참아내며 스스로를 달랬다. 북방의 여진족 여아에게 더 이상 휘둘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황당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넌 누구에게 오랑캐의 시조가 이 땅의 왕족이라고 들었느냐?”

아율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버지!”

김충선은 야무지게 말하는 그녀에게 내심 탄복하면서 다시 물었다.

“아버지가 누구냐?”

“누구긴 누구야. 아율미의 아버지지.”

“더 이상 말싸움은 싫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알고 싶어서 그런다.”

“우리 아버지는 임진년에 조선을 돕기 위해서 출병항왜(出兵抗倭)를 명나라 조정과 조선 조정에 제의 하셨지. 이 정도 정보라면 이제 내 신분도 알아 모셔야지!”

사야가 김충선은 충격 속에서 신음을 삼켰다. 임진년에 건주여진에서 군사를 파견하겠다고 요구 했다면 바로 그는 건주도독(建州都督) 누르하치(努爾哈赤)를 말함이었다. 여진의 가장 큰 세 부족을 통합하여 통일 시킨 영웅(英雄). 아율미는 바로 그 족장, 칸의 딸이었다.

“그대가 진정 누르하치의 여식인가?”

“흥, 속고만 살았나. 난 가끔 헛소리를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은 안한다!”

김충선은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녀의 신분을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거짓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냥 믿음이 갔다. 그렇다면 이건 대형 사건이었다.

“명령을 받고 조선에 침투한 것인가?”

아율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도 상대의 직설적인 질문에 적이 당혹스러웠으나 이내 정상을 되찾았다.

“내가 왜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주면 알려주지.”

“조선을 경험 했다면... 이제 제대로 된 조선을 건국하는 일에 도움을 줘야 하기 때문이지.”

김충선의 대꾸는 실로 간단했다. 그러나 이 말에 담겨 있는 의미는 너무 깊고 깊었다. 임진년으로 부터 조선에 들어와 있었다면 이제 정유년이니 햇수로 무려 6년이었다. 조선에 대해서 6년간 보고 들었다면 충분히 조선의 문화(文化)와 사상(思想)과 체제를 느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사람의 성정(性情)을 체감 했으리라 생각했다.

“조선의 민초(民草)들을 겪었겠지? 그들의 순박함과 인정은 어떠하든가? 사람다운 냄새가 풍기지 않은가? 진짜 사람답지 않은가!”

“사람다운 냄새가 무엇이야? 나는 조선 조정의 무능력하고 분별없는 치국(治國)만 보이던 걸.”

“그래서 사람다운 사람이 절실히 필요 하다는 거야. 그런 사람들이 새로운 조선을 열어야 하는 거지. 그대도 조선에 관심을 갖고 있음이 분명해. 애정이 있어. 그렇지 않다면 덕령의 죽음을 애석해 할 필요가 없었을 거야.”

“조선의 왕도 멍청하기 짝이 없지만 김덕령도 고집불통이었잖아.”

김충선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율미가 지난 해 발생한 김덕령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모조리 꿰뚫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 것이다. 그녀는 긴장감으로 경직된 김충선을 응시하며 조롱하듯 중얼거렸다.

“그대가 김덕령을 탈옥 시켰었지. 귀신같은 수법이었어. 나는 덕분에 일본의 닌자(忍者)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았어.”

그 예감은 사실로 확인되어 김충선의 가슴을 싸늘하게 식혀왔다. 그 당시의 비밀이 파헤쳐진 충격보다도 더 서글픈 것은 김덕령을 제대로 구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다.

“넌 마치 날 그림자 마냥 미행했던 거로군.”

아율미는 변명하지 않았다.

“맞아. 나는 김충선이란...아주 불가사의한 위인을 지난 3년 간 추적 했지. 덕분에 너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어. 사람에 대해서도... 조선에 대해서도...!”

마치 쇠몽둥이로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믿을 수가 없으나 또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누구인가? 일본에서 최고의 인술(忍術)을 연마한 수련자였다.

“으음.”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군. 그래... 물론 그렇겠지. 그러나 어쩌나? 김덕령을 탈옥 시켰던 일은 오로지 그대와 김덕령 둘 만의 극비였잖아. 그러나 결백 하다고, 조선의 왕과 대신들을 믿노라고, 그대를 안심 시키고 다시 스스로 자신만만하게 감옥을 찾아간 김덕령은 그 길로 죽어 버렸으니......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대 김충선 하나여야 하잖아.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나? 내가 알고 있으니! 여진의 딸 아율미가!”

그 순간에 김충선은 몸을 날렸다. 눈부시도록 빠른 몸놀림이다. 봄날의 경쾌한 바람처럼 아율미에게 다가가는 칼(刀)의 그림자가 개울을 가로 질렀다. 김충선의 손에서는 어느새 팔등신의 늘씬한 칼이 소스라치게 울부짖고 있었다. 아율미의 동작 또한 매우 신속했다. 그녀는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이 되어 몸을 뒤집었다. 솨악! 하는 칼바람이 개울물을 동강내며 하늘로 뻗쳐 올라갔다. 절단된 물과 돌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그러나 아율미는 이미 몇 걸음 물러나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과연 나를 시험해본 소감이 어떤가요? 믿어줄 재간은 되죠?”

여진의 공주 아율미는 대단한 무도를 갖추었다. 김충선의 기습을 그녀는 보기 좋게 피해 버렸다. 이제는 그녀의 말이 사실임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녀는 지난 3년 간 철저히 김충선의 뒤를 밟아온 것이다.

“저는 사냥과 무예를 배웠지요. 아버님은 잊혀진 왕국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자식들이 강해야 한다고 믿으셨어요. 딸이라고 하더라도 예외를 두지 않으셨어요. 우리 형제들은 부족의 모범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말을 타고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답니다.”

그녀가 존칭어를 사용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진을 통일하여 향후 금나라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누르하치의 위상은 대단한 것임이 분명했다. 아율미는 그 위대한 부족의 피를 이어 받은 왕녀였다.

“좋소. 그만합시다.”

김충선은 순순히 칼을 거두었다. 아율미는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놀랐지요? 수년간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겠죠?”“물론이요. 내가 한심할 뿐이요.”

“그건 아니지요. 스스로 탓할 필요는 없어요. 조선에 내가 침투하기 전부터 잘 훈련받은 여진의 간자들이 이미 활동하고 있었어요. 간접적으로 일본사정도 탐문하고 있었고요. 저희 쪽 간자들이 일찍부터 당신을 주목하고 있었답니다.”

“허...참......”

“저희 아버님은 명(明)나라가 대단할 것 같지만 곧 무너질 썩은 나라라고 생각하고 계시고, 그 중원의 빈자리를 노리고 계세요. 아버님이 이번 전쟁 초기에 일본에 대항할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한 것도 만약에 일본이 명나라로 진격하게 되면 일본이 충분히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셨지요. 그래서 일본의 진격을 조선에서 차단하려고 원병을 보내시겠다고 한 겁니다. 물론 거절당했지만.”

김충선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처음 등장했던 그녀가 아닌 듯싶었다. 목소리도 부드러웠고 기품이 엿보였다.

 

유광남 작가  sisamagazine1@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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