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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꼬꼬무'서 과거 재조명... 결혼·가족·나이·프로필·사망 눈길

야구선수 최동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20일 방송된 '꼬꼬무'는 '가을의 전설, 최동원' 편으로 꾸며졌다.때는 고교야구가 열풍이던 1975년 9월의 동대문 운동장. 2만 6천여 명의 관중이 한 선수를 바라보고 있다. 전날 믿기 힘든 경기력을 선보이고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다시 마운드에 오른 경남고 투수 최동원. 이틀째 선발 등판한 것도 모자라 '17이닝 연속 노히트 노런'이란 한국야구 역사상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혜성처럼 등장한다.무쇠팔 최동원의 '심장이 멎을 것 같은' 폭포수 커브는 상대 팀 강타자들은

꼬꼬무 최동원 (사진=방송화면 캡처)
꼬꼬무 최동원 (사진=방송화면 캡처)

야구선수 최동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20일 방송된 '꼬꼬무'는 '가을의 전설, 최동원' 편으로 꾸며졌다.

때는 고교야구가 열풍이던 1975년 9월의 동대문 운동장. 2만 6천여 명의 관중이 한 선수를 바라보고 있다. 전날 믿기 힘든 경기력을 선보이고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다시 마운드에 오른 경남고 투수 최동원. 이틀째 선발 등판한 것도 모자라 '17이닝 연속 노히트 노런'이란 한국야구 역사상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혜성처럼 등장한다.

무쇠팔 최동원의 '심장이 멎을 것 같은' 폭포수 커브는 상대 팀 강타자들은 물론,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찬사까지 얻더니, 한국 프로야구의 황금기를 이끈다. 그리고 운명처럼 최동원을 기다리고 있던 그해 가을이 찾아왔다.

최동원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고 싶다던 1984년 한국 시리즈, 그날 야구장에서 그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꿈같은 일들이 펼쳐졌다.

1차전 완봉승, 이틀 후 3차전에선 완투승. 그리고 5, 6차전까지 나선 철완 최동원의 활약에 단 '1승'이 목표였던 롯데는 유력한 우승 후보 삼성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운명의 7차전,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 최동원은 감독의 교체 제안에도 좀처럼 마운드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점수 차가 벌어지고, 최동원의 표정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패색이 짙던 그때, 그라운드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최동원은 나가 아닌 우리를 위해 혼신을 다해 승부수를 던졌고 7회말부터 그의 볼에 스피드가 붙기 시작했다. 8회초에는 유두열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3점 홈런을 날렸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는 6대 4로 삼성에 승리를 거뒀다.

1988년 9월, 88 서울 올림픽이 나흘 앞으로 다가 온 그날, 최동원이 여기 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최동원은 서둘러서 대전의 한 호텔로 향했고 잠시후 버스들이 도착하고 140명의 프로야구 선수들이 내리고 있었다. 

한국프로야구 선수회 창립총회가 열리고 선수 복지 향상을 위해 회장은 최동원이 됐다. 당시 비주전과 2군 선수들은 낮은 연봉과 부족한 장비 때문에 보호받지 못했고 부상만 입어도 방출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최동원은 선수회에서 연봉하한선과 연금제도를 만들면서 한국 프로야구를 위해 애썼다. 그러나 선수회가 결정된 직후 구단에서는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초강수를 뒀고, 결국 선수회는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최동원은 구단에서 트레이드라는 핑계로 방출이 됐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은 보복성 트레이드라고 말했다.

결국 최동원은 고향팀 롯데를 떠나고 삼성으로 이적해 마운드의 섰지만 이미 혹사되버린 어깨 탓에 더 이상 강철 어깨가 아니었고 1990년 가을, 나이 32세에 은퇴식도 없이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한편, 최동원은 1958년생으로 1983년 롯데 자이언츠 입단했다. 이후 1984 KBO MVP, KBO 골든글러브 투수상, KBO 정규리그 탈삼진 1위, KBO 정규리그 승리 1위를 차지했다.

최동원은 1989년 아내 신현주 씨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1남을 두고 있다.

최동원은 대장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와 수술을 받았으나 기력이 쇠하면서 결국 지난 2011년 53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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