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 가운데서 경험했던 짧은 시간여행에 대하여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단어들이 있다. ‘바쁘다’, ‘정신없다’, ‘피곤하다’가 바로 그것. 이는 30대 중반의 직장여성인 나 역시 마찬가지다. 과장 승진 이후 업무는 산더미처럼 불어났고, 기계적인 웃음을 쏟아내며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늘 포장된 말투와 상당의 가식을 입은 채 예의범절에 신경 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모든 일상이 돌아서면 머리나 가슴에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일회용 일상을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업무와 사생활은 늘 나란한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그 사이에서 ‘시간’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중이다. 오늘은 그 일상의 외줄에서 넘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음에서 시작된 어지럼증은 오후가 지나가 헛구역질을 동반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급한 회의보고서를 덮어둔 채 당당히 칼퇴근을 감행했다. 그리고 내 아늑한 거실 소파에 반쯤 드러누운 채 TV 속에서 재주를 부리는 아이돌 가수들의 몸짓에 퐁당 빠져 버렸다. 흥겨운 비트박스에 귓속은 흥건했고, 손에 든 다이어트 과자와 아이스크림 덕분에 뱃속이 호강 중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채널을 바꿔나갔다. 그러다 나도 TV도 우뚝 서 버린 순간이 있었다. 뉴스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소식 하나. 국내 1인 가구의 비율이 전체 24%가 되고, 혼자 사는 미혼 여성은 35만 명이 넘다는 것이었다.
모처럼 흥겨움으로 훈훈했던 가슴이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노인, 그것도 독거노인으로 늙어갈 것이고, 어느 순간엔가 쓸쓸한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섬뜩함. 그 생각에 목덜미를 움켜 잡힌 기분이었다. 그리고 일상은 고스란히 리와인드 되기 시작했다. 서른네 살의 늘어진 일상이 다시 팽팽하게 당겨졌다. 살아온,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갈 시간들이 한꺼번에 들려들기 시작했다. 방안에는 온통 째깍거리는 시계초침 소리로 가득차고 있었다.
초침소리는 아련한 환영(幻影)과 환청으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자상하고 멋진 남편, 토끼 같은 아이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빚어내는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내가 지금 가지고 있지 않고,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다. 그 평범하고 단란한 삶을 미뤄둔 채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환영과 환청이 사그라들 무렵 나는 문득 생각했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선택한 삶도, 내 의지로 꾸려온 삶도 아니었다. 그저 밀려나지 않기 위해 내디뎠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던 시간들. 남은 것이라곤 시간의 발목에 내려앉은 먼지들과 늘질대로 늘어져 버린 피부의 탄력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마가 한창이었다. 국지성 폭우가 서울 도심을 폭격 중이었다. 그 요란한 빗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리게 됐다. 거실에 우두커니 선 채 질풍노도의 10대와 20대를 다시 한 번 경험한 기분이었다. TV가 꺼지고, 창밖의 빗소리마저 잠잠해진 순간. 나는 다시 30대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짧았던 시간 여행은 깊은 깨달음을 하나 얻게 됐다. 지나간 시간들은 되돌릴 수 없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당겨 살아볼 수도 없다. 오직 오늘이 유일하며 그 속에 나는 고스란히 갇혀 있다.
따라서 나는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살아보기로 했다. 멋지고 화려하며 엣지 있는 30대 중반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말이다.
“그래, 그러기 위해서는 이 뜨겁고 변덕스러운 여름부터 제대로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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