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긴장하고 초심을 잃지 말라!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흔히들 ‘달인’이나 ‘고수’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들에게는 특별한 비결보다는 인생의 비장함까지 느끼게 하는 삶에 대한 깊은 열정을 엿볼 수 있다. GM쉐보레 오신택 이사는 국내 자동차 판매업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전국 자동차 판매 왕을 수차례 차지하는 등 지금도 ‘정상을 향해 달리는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항상 성실함과 고객에 대한 열정, 자신감 넘치는 비전으로 멋진 개인 브랜딩을 보여주며 오늘도 대한민국 자동차 세일즈산업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

뒷골목을 전전한 불우한 청소년기가 그를 성공으로 인도

선진국에서는 최고의 전문직으로 대접을 받는다는 컨설턴트의 신뢰도가 국내에도 점차 향상되고 있다. 자동차 세일즈 컨설턴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수없이 겪었다는 오신택 이사가 ‘자동차 세일즈 컨설턴트’에 뛰어든 계기는 의외였다.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6남매 중 5섯째로 태어난 그는 어느 성공수기를 보는 것처럼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등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병들어 누우신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과 우애 없이 자라 어린 시절은 행복이라고는 찾아볼 수없는 그야말로 눈물의 나날을 보내다시피 해야만 했다.

특히 인생의 과정을 놓고 볼 때 열심히 공부하고 건강하게 성장해야하는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오히려 어둠의 세계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세상을 원망하며 사회를 살아왔다. 어느덧 성인이 돼 철이 들 무렵 전신마비 장애로 누워계신 아버지 약값이라도 벌어보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흔히 노동자들이 꺼리는 3D직종이라는 라면공장, 목공, 막노동, 신발공장, 염색공장 등 물불 안 가리고 온갖 궂은일을 다해보았으나 아버지 약값을 벌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마침내 아버지는 12년의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형제들과의 불화는 계속됐고 다시 사회를 원망하며 어두운 골목세계를 전전하다 어느 날 친구의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그 친구가 자동차 영업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무작정 대우자동차에 입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됐다.
누구나 그렇듯 그 역시 영업초기에 연고도 없이 무작정 전단지를 돌리며 냉대하는 고객들의 시선을 참아내며 자신과의 싸움에 괴로웠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매일매일 성실하게 생활하던 그에게 드디어 고생의 보람을 맛보게 된다. “입사 후 1년 차 만에 제가 꿈에 그리던 신입 판매 왕이 된 거예요. 너무 기뻤고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한 노력 끝에 고객님의 차량을 인도하고 난후 고객께서 수고했다며 봉투에 5만 원을 넣어주며 격려해주시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성취욕을 느끼며 더욱더 고객들에게 헌신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성공을 향해 더욱 더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고 한다.

성실함, 철저한 준비, 고객과의 소통이 비결 아닌 비결

흔히 억대연봉의 자동차 판매 왕에게는 나름대로의 영업비결이 있게 마련이다. 과연 오신택 이사에게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궁금해 이런 질문을 던지자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도 “남과 같이 해서는 남을 능가할 수 없음을 알기에 아침 6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일하고 다음날 스케줄을 잡은 후 퇴근했다”며 특유의 성실함을 영업비결 아닌 비결로 꼽았다. 역시 성실함을 이길 장사는 없었다.
특히 그는 “고객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번 만난 후 차량의 결정단계에서 고객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1~2분 안에 판단해 고객의 필요한 부분, 즉 ‘니즈’를 판단해 그 부분을 채워드리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영업 노하우 아닌 노하우”라고 나름의 노하우를 소개했다.

또한 ‘철저한 준비’도 빼놓을 수 없다. 공휴일이나 휴무일에 남들이 쉴 때 혼자 출근했다. 그리고 ‘가능성 있는 고객’을 선별해놓고 다음날을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정에서는 빵점아빠, 빵점남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그는 자동차 판매 왕 타이틀을 수차례 거머쥐는 등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평범한 성공기’는 늘 재미없듯 인생의 실패와 좌절도 맛보며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털어놓았다.

너무도 가난했기에 오로지 자동차를 팔아 돈을 벌어야겠다며 일념 하나로 남들처럼 쉴 시간도 없이, 제대로 먹지도, 제대로 입지도 못한 채 돈만 열심히 벌던 시기에 큰 어려움이 찾아왔다. 큰 누님의 재혼한 남편이 빌라 사업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90년대 초 수억 원을 사기당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다시 방황의 세월을 보내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짜리 단칸방에 달콤한 신혼살림을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용불량자로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 당시 임신한 아내에게 라면으로만 6일 이상 끼니를 해결하게 했던 괴로운 시간도 있었다는 얘기를 하면서는 눈시울을 적신다. 몇 년을 다시 방황하다 GM대우에 재입사하고 아내는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식당일을 하면서 부부가 재기의 몸부림을 친 끝에 드디어 희망의 끈을 볼 수 있었고 오늘의 그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항상 긴장하라! 그리고 초심을 잃지 말자!

현재 그는 아내에게 면사포도 씌워주지 못 한채 살고 있어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또한 그런 아내가 현재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어 신에 의지한 채 신앙생활을 함께 하고 있단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수많은 판매 왕 자리에 오르게 되고 지금은 생활이 다소 여유로워졌지만 그는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하루도 쉬지 않고 오직 한길을 걷고 있다”며 “참 감사한 것은 저를 믿고 인내하며 도와준 아내가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더욱 앞을 향해 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사랑하는 아내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만약 그가 자동차 세일즈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자동차 세일즈를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제 아들의 자랑이 될 훌륭한 아빠는 못되지만 근면과 끈기를 아들에게 가르쳐 주며 실천교육을 시킨다는 점이 감사할 따름이죠.”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좌우명이나 인생철학이 무엇인지 물었다. “저의 좌우명은 항상 긴장하자입니다. 항상 5분대기 자세로 언제든 고객이 불러주시면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 퇴근하는 날이 있더라도 집에서 밤 11시 이전에는 넥타이를 풀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초심을 잃지 말자입니다. 지금의 자동차 세일즈를 그만둘 때까지는 긴장을 놓지 않고 초심의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에게 프로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신택 이사는 “이제는 어려운 곳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며 “대우자동차에서 GM쉐보레로 론칭 되면서 품질도 좋아졌으니 더욱 더 타의 귀감이 되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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