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좀 내봐도 좋은 계절이 왔다

소똥내, 짠내 물씬 풍기는 농어촌 복합형 촌동네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삭막한 도시생활을 하는 처지에 산과 들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진 기억들이 많다는 건 참으로 자랑스럽고 고마운 일인 것 같다. 하루종일 콘크리트 숲을 헤매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 발은 퉁퉁 부었고, 자동차 매연에 목이 매캐한데, 그럴 때마다 뜨거운 물이 넘실대는 욕조에 온몸을 담근 채 그 때 시절의 나날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바야흐로 봄이 왔건만, 빌딩으로 가득한 콘크리트 숲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온도차이나,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차림을 통해 간신히 눈치챌 수 있을 지경이다. 이런 점에서 촌동네의 봄날은 참으로 경이롭고 아름다운 광경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산과 들녘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통에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그 황홀한 계절의 변화를 못본 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나서면 봉긋한 산이 하나 솟아 있었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사시사철 푸르렀는데, 특히 봄이면 산골짜기에 핀 화사한 진달래가 일품이었다. 마치 가파른 산 능선을 따라 흐르다가 골짜기에 고인 것처럼 피어 있었던 까닭에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진달래 골짜기라고 불렀다.
그곳에 진달래가 활짝 피는 봄날이 돌아오면 동네잔치가 자주 벌어졌다. 뒷집에 살던 고모, 도랑 건너 사는 삼촌이 시집장가를 가는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늦도록 짝을 만나지 못한 노처녀 고모들이나, 노총각 삼촌들은 진달래 골짜기에 다홍빛깔이 짙어질 무렵엔 아예 집밖으로 잘 나오지를 못했다.

진달래 골짜기는 눈앞에 뻔히 펼쳐진 곳이었음에도 거리가 너무 멀어 학교에 입학기 전까지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군불 땔 나무를 주우러 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만 펼쳐볼 뿐이었다.

‘진달래 골짜기에는 풀이나 돌멩이도 모두 진달래빛으로 울긋불긋하겠지.’
나무하러 가신 할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마당을 빙글빙글 돌며 그런 상상으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리고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그냥 ‘어린이’에서 ‘학생’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동네 형들을 따라 꿈에도 그리던 진달래 골짜기를 직접 밟아볼 수 있었다.
직접 찾아간 진달래 골짜기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하지만 수북히 무더기를 지어 핀 진달래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진달래 골짜기엔 진달래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슬을 머금은 채 살아 숨 쉬는 바위들과 그 사이로 흐르던 작은 개울, 그리고 진달래 꽃잎을 사뿐히 밟고 날아오르는 벌과 나비들. 그 경이로운 풍경 속에서 그저 밋밋한 분홍빛 진달래는 시큰둥할 지경이었다.

그대는 멀리서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그곳’이 있는가? 혹은 숨어서 바라보며, 가슴 끓이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용기를 내봐도 좋을 것 같다. 유난히 한파와 폭설이 잦았던 겨울. 그 모진 바람은 따스한 햇살에 모두 물러가 버렸으니까. 단단히 마음을 먹고 그곳, 혹은 그 사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보시라. 그리고 낮은 목소리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단언컨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아름답고, 눈부신 무언가를 보게 될 것이요, 그리워했던 것보다 더욱 멋진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곳’도, ‘그 사람’도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 부디 용기를 내어 보시라. 그것은 이 지독한 삶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대에게만 주어지는 생(生)의 덤이자, 행복의 짜투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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