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진보’의 심상치 않은 새 바람과 함께 진보의 대중화 이룩하나

지난 10월15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선출대회에서 진보신당을 이끌어 갈 신임 당 대표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선출됐다. 단독으로 출마해 96.1%의 찬성을 기록해 이날 당선이 확정됐다. 전 당원을 대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된 투표에서 총 유효투표자 10,561명 중 5,804명이 참여해 55%의 투표율을 보였다. 이와 함께 김정진 당대회 부의장, 박용진 서울지방선거 후보사업단장, 윤난실 부대표, 김은주 前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4명이 부대표로 당선됐다. 이들이 진보신당을 이끌어 갈 3기 지도부이다.

조승수 대표는 “선출의 기쁨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노동자,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강력한 진보정당을 꼭 건설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특히 “지난 20년 동안  존재조차 미미했던 진보정치세력이 시대정신을 선도하는 상황이 됐다”며 “진보신당이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진보를 표방하는 시대에 진정한 진보가 무엇인지 말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조 대표는 “진보신당이 진보세력의 단결을 이끌어낼 것”이라며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사회당과 진보적 학자들 그리고 시민사회세력과 함께 폭넓은 진보대연합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조 대표는 첫 공식일정으로 16일 오전 마석 모란공원의 열사 묘역을 참배한 뒤 쌍용자동차와 동희오토 농성 노동자들을 방문해 농성자들과 함께 철야농성을 벌였다.

2012년이 오기 전 통합 진보정당은 가능한가

이에 앞서 지난 9월5일 진보신당은 임시전당대회를 열고 “반신자유주의 정치연합을 통한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한다”는 내용의 당 발전전략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지난 6.2지방선거 이후 진보신당 내에서 향후 방향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고민한 결과였다. 당초 이 전략안에 포함되기로 했던 추진기구 구성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했다. 올해까지 종합발전계획을 완성하고 내년 정기전당대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약간의 혼란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연합 구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2012년 총선 전까지 진보정당의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통합론’과 정당통합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며 당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정비론’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진보신당의 과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는 진보정당의 한 축인 민주노동당이 관건이다. 이는 조승수 신임 대표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조 대표는 2008년 2월 민주노동당을 탈당해 지금의 진보신당 창당을 주도한 인물이다.

조 대표는 당시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에 젖은 자주파들이 가진 틀로는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진보신당의 역량 강화를 주장하는 ‘정비론자’들의 생각은 아직 그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당 통합을 통해 정치연합을 구성한다 하더라도 당시에 겪었던 갈등과 반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진보신당과는 다른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물리적이든 화학적이든 진보정당의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진보신당은 물론 규모나 지지율 면에서 앞서고 있는 민주노동당 역시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절실한 상황이다. 이는 내부적인 요인이라기보다는 진보정당의 통합을 통한 진보정치의 대중화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등 외부의 목소리 때문이다. 진보개혁 진영이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와 거대 여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당원과 지지자 입장에서 봐도 진보정당의 통합은 그 파괴력이 더욱 크다. 다만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각각 다른 가치를 가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건전한 경쟁이 가능한 여건이 마련됐을 경우이다.

민노당, 진보신당 “통합 논의 최대한 빨리 시작할 예정”

이렇듯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된 까닭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빠른 시일 내에 만나 통합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지난 10월21일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조 대표가 예방한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와 조 대표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을 것”라며 “분당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분이 있는 한편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분들도 많다”고 밝혔던 것. 통합논의에 대해 이 대표가 먼저 운을 뗀 셈이다.

이어 이 대표는 “진보통합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중앙위원회에서 11월중에라도 당길 수 있는 것이 좋겠다”며 “그 자리에서 통합 문제를 진지하게 의논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 역시 “개인적이든 당 차원이든 제대로 단결해서 국민들의 요구에 보답해야 한다”며 “정례회동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화답했다.

특히 조 대표는 두 정당을 6자회담 속의 북미관계에 비유하며 “한반도 문제로 6자회담 속에 북미 양자회담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듯 그런 틀 속에서 양당의 논의와 실질적인 진전이 의미가 있기 때문에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야권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범야권연대가 가시화되기 전에 진보정당이 먼저 통합을 이룰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대표는 “북미 관계보다 우리 관계가 훨씬 좋지 않겠느냐”며 “어차피 과거가 같고 미래를 함께해야 하는 만큼 최대한 빨리 통합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민주당의 진보정당 선언, 기존 진보들의 흡수 통합 가능성

한편 중도개혁성향을 띠고 있던 민주당이 지난 10월3일까지 전당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과감한 좌회전을 통한 진보정당으로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날 개최된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향후 진로와 관련해 두 가지 큰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하나는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선출했고, 다른 하나는 민주당의 새 강령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정당의 강령은 당 대표를 누구로 선택하느냐보다 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이번에 채택된 새 강령에는 종전의 ‘중도개혁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진보적’ 정책요소들을 많이 도입했고,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종전의 ‘민주, 개혁, 번영, 통합, 평화, 환경, 행복’에서 ‘민주, 자유, 복지, 평화, 환경’으로 변경했다. 또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종전의 ‘성장과 분배의 조화’에서 ‘인간중심 시장경제’와 ‘보편적 복지’로 바꿨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정치용어상 ‘진보’는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노선이다. 그런데 이번에 민주당이 강령을 개정하며 사실상 민주당이 ‘진보진영’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평가다.

이에 기존의 ‘정통’ 진보정당들은 정치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속내는 조마조마한 눈치다.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쏟아져 나왔던 정책들은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쉽게 공언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후연금, 아동수당 등 그 종류와 범위도 폭넓었다. 한 후보는 이를 실현하겠다며 부유세 신설 공약까지 내세웠다.

이 같은 내용이 민주당의 정식 당론으로 채택되는 순간 기존의 진보정당들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과 진보정당은 이른바 ‘보완적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협력은 적당한 동질성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그 동질성의 정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규모가 크고 힘이 강한 쪽으로 통합 압력이 거세지게 된다.

차기 집권을 노리는 민주당 지도부의 일각에서는 당의 이러한 진보적 전환을 진보정당과의 통합 과정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실제 이인영, 천정배 최고위원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아우르는 대통합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진보정당이 민주당에 흡수통합 되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민주당 내에서 진보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현실화하기에는 당 내부의 동력이 아직 미약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조승수 대표는 지난 10월2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특정시기, 특정목표를 못 박아놓고 진보대연합의 결과를 논할 경우 대단히 정치공학적으로 논의가 흘러갈 수 있다”며 “비정규직, 사회복지 등 주된 의제를 중심에 놓고 공동실천을 논의할 수 있는 모임이 연내에 정례화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 국민참여당 등 자유주의 정당은 진보진영 대표자 정례회동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진보, 자유, 보수’의 정당 분류를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조 대표는 “2012년 야권의 선거연대를 위해 지금부터 야당 내의 차이를 줄여가는 활동을 해야 한다”며 “비정규직 문제와 보편적 사회복지 실현을 전면에 내건 연대활동을 제 야당에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중도개혁주의’ 노선을 강령에서 삭제하고 진보의 정체성을 강화한 민주당을 향한 제언이었다.

또한 “민주당의 변화 시도가 단지 '말'만이 아니라면 비정규직 권리 보장 입법 등 진보적 의제를 공식 당론으로 채택하고 파견제 폐지 등의 방향으로 노동법 전면 재개정 등을 공동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며 “그러할 때만이 현재의 민주당이 전 정권과는 다르단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권에 부는 ‘젊은진보’의 심상치 않은 새 바람

이렇듯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에는 ‘젊은 진보’가 최대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전당대회에서 4위에 오르는 이변을 창출하며 지도부에 입성했고, 조승수 진보신당 신임 대표 역시 ‘진보의 대반격’을 선언한 상태다. 또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조 대표에 앞서 40대 당 대표 시대를 이미 열어 놓았다.

이러한 젊은 진보세력이 외치는 것은 생활진보와 보다 친숙한 진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투쟁적이고 딱딱한 이미지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국민이 행복한 복지진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진보신당 조 대표 역시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민노당 이 대표도 “진심의 정치, 유연한 진보”를 표방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차기 총선과 대선이 2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야권연대와 진보진영의 통합논의에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해낼지도 주목된다. 연배가 비슷한 만큼 기존 정치권에서 보여줬던 논의과정과는 사뭇 다른 양상과 결과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안고 있는 과제 역시 적지 않다. 민주당 내부에서 진보를 부르짖는 이인영 최고위원은 입지를 넓여야 하고, 최근 북한 세습문제와 관련해 보여준 태도 때문에 비판 받았던 이정희 대표의 향후 행보도 과제로 남는다. 또한 조승수 대표의 경우 민생의제에는 적극적이었으나 현 정부에 대한 견제와 비판에는 소극적이었다는 평가에 대한 간극을 줄여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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