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이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학>에서 "주로 지식인 또는 엘리트 집단이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들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사회 전체가 혼돈에 빠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정치인들의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4대강 사업이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더욱 막중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산에는 나무가 있어야 산이 본래의 모습을 갖추듯 강에는 물이 있어야 합니다. 식목일이 나무를 식재하여 산을 산답게 만드는 것이라면 4대강사업은 강에 물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미래의 전세계적인 물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과연 4대강 사업이 홍수대책으로서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홍수를 예방하느냐 아니면 홍수에 순응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순응하는 방법은 강을 홍수시에 대비해 수평적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홍수터 내지 침수지(범람지)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강 유역에 있는 농경지 침수는 말할 것도 없고 축산 오·폐수도 강으로 유입될 것입니다.

예방하는 방법은 강의 높이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수직적 확대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제방을 높이 쌓는 방식과 준설을 통해 강바닥을 낮추는 방식이 있습니다.

제방은 강과 인간을 분리시켜 '함께 하는 강'이 아닌 '보는 강'으로 만듭니다. 그렇다면 결국 준설방식만이 남게 되고 이것은 홍수대책을 위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4대강에 설치되는 ‘보’에 대해서는 용어부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용어는 그 나라의 문화·기술·언어수준 등에 의해 좌우되므로 용어로 다툴 것이 아니라 시설물이 가지는 기능으로 말해야 합니다.

유속조절을 통해 강바닥이 패이는 현상을 방지하고, 생태환경을 고려한 적당한 수위조절과 함께 친수공간으로서의 강을 만들기 위해서 구조물은 반드시 설치돼야 합니다. 이것이 ‘치수’이며, ‘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외국의 강을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컨셉을 가져온다는 것이므로 결국은 우리나라의 강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공사를 추진해야 합니다.

단순 비교할 경우 각각 다른 강의 특성을 무시하는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독일에서의 결과가 우리나라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모든 조건이 같다는 전제하에서 성립하는 것입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원칙은 4대강 사업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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