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버린 그 자리에서 돋아나던 고맙고 위대한 밥상

먹거리 안전을 위해 여러 날 밥을 굶은 적이 있었다. 먹고 싶은 마음과 떨어지는 기력이 한 데 어우러져 밥상에 대한 온갖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돌이켜 보면, 옛날에 우리는 우리의 밥상을 양적으로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큰 걱정이었다. 모자라나는 식량으로 고생할 때가 엊그제였던 것이다. 요즘 우리는 우리 밥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질적으로 ‘지킬 것’인가가 큰 걱정이다. 식탁안전이 최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구할 수 있고 먹을 수 있다는 상습적인 관념을 너무도 당연시하면서, 국민의 건강권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식탁안전을 내팽개쳐 버린 이명박 대통령의 조공외교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돈벌이를 지상과제로 알고 있는 대통령이,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주부들이, 어머니들이 가족건강을 위하여 밥상 살림에 애쓰고, 걱정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채, 미 정치인들의 강력한 압력에 굴복하여, 국민들의 식탁안전과 국민 건강권, 그리고 이를 지키라고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검역주권까지 미국 목축업자 이익을 위해 송두리째 선물보따리로 바쳐버린 것이다. 국민의 어머니인 농민들의 생존권까지 내어주었음도 물론이다.

허나 어떠한가? 지금 우리 국민들은 밥상의 양적, 질적 위기,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지 아니한가. 국제 곡물값은 연일 오르고, 식탁안전을 위협하는 식품들이 국경을 초월하며,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매일 대하는 밥상은 양적으로 보자면 70% 이상이 외국에서 조달되어 들어온 것이며, 질적인 면도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건강을 살리는 살아있는 밥상이 얼마나 되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말이 있다. 흙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면 다 똑같은 흙으로 보이지만, 조금만 더 살펴보면 곡물이 생육하는데 있어 기능을 상실한 흙도 많다.

흙 1그램 마다, 땅의 지기를 머금은 200억만 마리의 미생물들이 풍요로운 잔치를 벌이는 흙속에 뿌리 내려 자란 곡식과, 생명을 죽이는 강력한 제초제로 인해 죽어버린 흙 속에 뿌리내린 채 각종 화학 비료와 농약으로 자란 곡식과의 차이는 천지 차이다. 겉으로 보면 후자의 곡식은 겉은 번드르르 하고, 윤이 나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이미 살아있는 먹거리라 하기 힘들지 않을까?

여기에 발효식품인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은 자취를 감추고, 온갖 가공식품이 밥상에 범벅이 되어 버티고 있는 모습은 실상은 우리 가족(국민) 건강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케 한다.

대부분이 외국에서 들어오는 이들 가공식품은 그 재배 과정을 확인할 길이 없다. 유전자 조작 식품은 아닌지, 불량식품은 아닌지 알 수 없어 더더욱 불안하다. 생명과 같은 우리의 밥상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밥상을 살리는 일이 국민의 건강을 살리는 길임이 자명하지만, 이를 아는 정치인이 많지 않으니 이도 통탄할 노릇이다.

지난 2005년, 나는 쌀 재협상 국회 비준을 저지하기 위해 꼬박 31일간을 굶게 되었다. 한 달간 꼼짝 않고 굶고 앉아 많은 생각들을 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생생한 기억은 어린시절 먹던 그 소박하고, 고마운 밥상이었다.

하얀 쌀밥에 간장과 깨소금을 섞고, 거기에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비빈 다음, 한 숟가락을 떠서, 김치 한 쪽을 척 걸쳐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60년대 어린 시절의 그 밥상과 추억이 그렇게 먹고 싶고, 그리울 수가 없었다. 오곡잡곡밥에 곁들인 산나물, 푹 발효되어 군침 돌던 된장국, 솥에 넣어 쪄 먹던 계란찜, 기름을 발라 윤기가 흐르던 마른 김 - 그저 다른 건 아무 욕심도 나지 않았다. 행복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즐거움에 어깨춤이 절로 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큰 밥그릇을 골라, 조금이라도 더 담은 밥을 퍼가려고 숟가락 싸움을 하던 그때였다. 일 때문에 늦은 저녁을 드시던 아버님의 밥상머리에 온 남매들이 둘러앉아, 아버님께서 드시고 조금 남겨주시는 것을 서로 받아먹으려고 목을 빼고 기다렸던 그 시절이었다. 그때가 그토록 가슴에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었다.

그 쌀을 생산하기 위해 농부들은 못자리에 씨를 뿌려 가꾼다. 어느 정도 자란 모를 논에 옮겨 심어 놓고는 아침마다 들판에 나가 벼들과 ‘밤새 안녕’의 인사를 나누고, 물은 적당한지 물꼬를 손보고, 논두렁을 한바퀴 빙 둘러보며 가을을 맞이한다. 벼가 누~우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면 낫으로 벼를 베어 논바닥에 깔아 놓고, 볏단을 묶어 뒤지고 모아 추수를 한다. 허리가 아프고, 숨이 막힐 만큼 힘들어도 그저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그 기대감과 기쁨은 귀중한 곡식이 주는 선물이라는 사실이, 농부가 지치지 않고 벼타작을 거뜬히 해내게 한다.

가을 수확기 추석쯤에는 채 익지도 않은 벼를 베어 타작을 조금만 한 뒤 나락 채 솥에 쪄서 찐쌀로 밥을 해먹으면 그 맛이 색달랐다. 또 일하고 있는 들판에서 어머님께서 점심 무렵 머리에 이고오신 쌀밥과 갈치국에, 각종 살아있는 반찬을 먹으면, 그 밥맛은 그 어떤 일류 식당에 가도 맛볼 수 없는 최고의 식사가 된다. 그 옛시절의 추억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다가오면,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 그 어떤 명예도 다 소용없이 느껴진다.

사람은 굶어보아야 철이 들고, 정신을 차리게 되는 가보다. 그때 내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고, ‘17대 의정활동만 끝나면 꼭 농사꾼으로 돌아가리’라는 다짐을 굳게 하였다.

그런데 지금 17대를 끝내고, 18대를 시작하면서도 끝내 농사꾼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또 다시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나는 단식을 ‘밥 먹듯이’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여앉아 막걸리 한 잔에, 김치를 싼 두부를 한 입을 먹던 그 시절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명절이 되면, 떡메를 쳐 찰떡을 만들어, 시루에 넣고 찌는 동안 무럭무럭 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둘러앉아 웃음을 지었던 그 옛일이 기억에 사무쳐, 이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얼른 흙속에서 살리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을 엄습했다.

밥은 곧 생명이요, 하늘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토록 절절한 밥의 고마움을 잘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보릿고개 시절을 겪어본 사람들은 밥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아버님께서는 벼를 심는 논에 소 사료로 쓸 조사료를 심을때면 죄 받을 짓이라며 며칠째 수저를 아니 드시려 하셨다.

그러나 요즈음, 밥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도 밥을 제대로 안 먹으려고 해서 부모님들의 애를 태운다. 하지만 세계는 지금 식량위기가 닥쳐와 곡물값 폭등이 일어나고 있다. 식량 자급률이 26%에 불과한 우리나라가 식량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 섬뜩하기까지 하다.

밥- 그것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기에 늘 먹는다. 하지만 늘 먹게 되기에 그 소중함과 귀중함은 잊혀지고 만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한이 없기에, 그저 생명의 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싱싱한 밥상을 맞이하고, 이웃과 서로 돕고 정을 나누며, 땀 흘리고 평화롭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삶인지를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고마운 밥상, 이 위대한 밥상을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찌 알꼬?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삶. 이는 아마 온갖 욕심이 빠져나간 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고민하고 실천하는 삶 속에서야 드디어 만날 수 있으리라.

나는 지금도, ‘먹고 싶은 게’ 제일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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