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말랑말랑한 정치칼럼 ①

올해 경인년(庚寅年)은 역학적으로 금(金)과 화(火)의 기운이 강한 해다. 쇠가 정적인 서늘함을 지녔다면, 불은 돌진하는 가운데 뜨거움을 내뿜는 기운이다. 전문가들은 이렇듯 상반된 두 기운이 마주한 해에는 특히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냉철한 이성을 상징하는 쇠는 따뜻함으로 기운을 달래야 하고, 과감한 변화가 도드라지는 불은 침착함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생(相生)의 지혜를 간과했을 때 뜻하지 않은 불행이 국운을 흐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고 보니 이 땅에 동존상잔의 피바람을 몰고 왔던 6.25전쟁이 일어났던 해도, 60년 전 경인년이었다.

차가운 바람과 뜨거운 바람이 만나는 곳에 짙은 안개가 피어나는 법이어서 그런 것일까. 희뿌연 안개정국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 눅눅한 나날을 헤매다 보니 어느새 상반기가 훌쩍 지나고 말았다. 지난 3월,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가라앉았고 서해발 안개가 온 나라를 뒤덮었다. 눈앞은 물론 흐르는 시간마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독스런 막막함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기상이변이 몰고 온 이상고온현상과 함께 여름을 맞이했다. 세상은 여전히 안개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고온을 만난 안개는 나날이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다.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천안함은 북한이 침몰시킨 것이라는데, 정작 이를 두고 난리가 난 곳은 뺨을 맞은 대한민국이다.

여당과 야당 사이에 잔뜩 날이 선 고성이 오가고, 보수와 진보는 당장 내전이라도 치를 듯 험한 논평을 주고받는다. 현 정부는 이 모든 게 “친북용공 성향의 前 정권 탓”이라 하고, 폐족을 당한 듯 초야로 숨었던 전 정부 인사들은 “특수한 한반도 상황을 도외시한 현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오해다.
이 모든 것은 안개와 지구온난화 탓일 뿐이다. 지독한 안개 탓에 시야는 확보되지 않고, 설상가상 몰아닥친 기상이변이 극도의 짜증을 빚어낸 까닭이다. 시민사회단체가 UN안보리에 보낸 편지 한 장에 반역의 대죄를 물은 것도, 어뢰도 조작이요 침몰도 조작이요 죽음도 조작이라는 그 눅눅한 소문도 역시 그 때문이다. 짜증과 소문이 난무하는 가운데 산더미 같은 민생법안을 실은 6월 임시국회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이 속에 내동댕이쳐진 국민들의 마음은 젖은 솜이불처럼 무겁기만 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쌓여 세월이 되고, 세월이 쌓여 역사가 된다. 그것은 모두 앞으로만 흐르는 법이다. 그리고 물결치고 굽이쳐 흐르는 동안 지워질 것은 지워지고, 남을 것은 선명히 남을 것이다. 이는 세월과 역사가 가진 휘발성(揮發性) 때문이다. 가벼운 거짓들은 모두 증발하고, 무겁고 단단한 진실만이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무엇을 남기게 될까?

이 글을 쓰고 있는 6월 29일 오후, 뉴스에서는 남부지방이 장마권에 진입한다는 기상예보가 흘러나온다. 여전히 세상은 안개 투성이고, 사람들은 막막한 시간과 눅눅한 짜증을 견디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세월은 흐르고 있다. 장마가 저물어 가는 동안 설익은 이 계절도 땡볕으로 익어갈 테다. 쨍쨍하고 해맑은 그날 아침, 서로의 선명한 얼굴을 마주한 채 우리는 어떤 인사를 나누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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