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한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불심을 붓끝에 모두 담아내다

   
▲ 선재불교미술원의 조성범 원장은 온 마음을 다해 불화를 그리면서 부처님의 뜻을 깨닫고 삶의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불교에 마음을 두는 불자들에게 있어 귀의와 예배의 대상이 되는 사찰의 주요 성물로 탑이나 불상, 보살상 외에 불화를 들 수 있다. 불화란 부처와 보살을 위시한 수많은 성현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모셔놓은 것으로 단청이나 불상에 채색을 입히는 그림이나 탱화를 총 망라하여 지칭하는 것이다. 조각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성된 불상이나 보살상에 비해 평면적인 회화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 불화를 모시는 것도 본질적으로 불상이나 보살상을 모시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각에 비해 그 표현방법이 얼마든지 자유롭다는 점 때문에 독립적으로 모셔져 예배와 귀의의 대상이 되며, 불상의 뒤편에 모셔져 앞에 모신 불상, 보살상이 미처 다 표현해내기 어려운 불교의 상징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자들의 입장에서는 불화를 통해 불교의 장엄한 세계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 불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심을 다해 신중하게 완성해야 하는 것으로 그만큼 많은 기를 소모하는 작업이다.
불화를 그리며 행복을 느낀다
어린 시절 불화를 그리던 선친의 영향으로 항상 그림을 보며 살아왔다는 지허 조성범 원장. 선친의 곁에서 어릴 적부터 붓 잡는 법을 배우며 섬세한 선을 그리도록 지도받았다는 조 원장은 자신이 불화를 그리게 된 계기를 ‘인연’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려고 애쓰지 않았고 또한 싫다고 뿌리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인연이 닿아 나의 업이 되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고, 더욱이 부처님의 정신을 담는 그림이니 모든 것이 다 복을 짓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임하고 있습니다”라며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마치 부처님과도 같은 인자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조성범 원장이 처음 불화를 주문받아서 그린 것은 그의 나이 14세 때이다. 그림 그리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불화를 그리는 한 길만을 걸어오며 그림을 그리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는 조 원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을 완성했지만 언제나 작품 하나하나에 부처님의 정신을 담고자 노력한다고 전했다. 많은 불자들이 그의 불화를 선호하는 이유도 그가 가진 곧은 정신과 노력이 작품에 묻어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라 확신한다.

고려불화의 우수성을 지켜내고자
많은 예술이 시대적 영향에 의해 다양한 변화를 거듭해오듯 불화도 역시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그 양식이나 기법에 있어 변화를 거쳐 왔다. 현존하는 불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격적으로 불화가 성장을 한 시기는 고려시대 부터다. 불화를 보면 그것은 굉장히 화려함을 추구하는 귀족적인 특색을 보인다. 이는 고려 왕조에서 불교를 국교로 채택하여 공개적으로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당시는 궁정에서도 불화를 그릴만큼 그 지원이 풍부했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려 불화는 그 색채가 화려하고 선이 보다 더 섬세하다. 그러나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불화의 기법은 퇴락하게 된다. 실제로 조선 불화를 보면 서민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그 색채도 원색적이고 단순하며 선 역시도 굵고 분명하다. 현대의 불자들도 물론 관심에 따라 고려불화를 선호하기도 하고 조선불화를 선호하기도 하는 등 차이를 보이지만, 선재불교미술원의 지허 조성범 원장은 고려 불화를 주로 그리고 있다. 또한 그 맥을 이어갈 것이라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의 선친이 고려 불화의 양식을 추구했으니, 그 아래에서 배운 영향으로 당연히 고려 양식을 고집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그가 가진 신념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조 원장에 따르면 과거 고려시대의 화려하고 섬세한 불화는 감히 모방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일본의 약탈을 경험하면서 많은 작품들을 빼앗겼다고 한다. 그래서 고려양식을 이어가고자 해도 국내에 잔존하는 작품의 수가 적으니 보고 배울 것이 부족하여 그 맥을 잇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조원장의 선친은 직접 일본에 방문하여 고려양식을 연구하였으며, 이를 보고 자란 조성범 원장 역시도 조국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예술적 욕구를 품게 되었다고 한다.
덧붙여 1960~1970년대에 일본에 약탈당한 불화들이 한국의 것임이 밝혀지면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에 다행이라는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실력 있는 제자들을 더 양성하여 고려 불화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애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선재불교미술원: Tel.051-806-0399

INTERVIEW | 선재불교미술원 조범석 원장

                                       “온 마음을 다해 불화에 전념할 것이다”
■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떤 마음인가
처음 불화를 그릴 때에는 잘하고 싶은 마음에 팔이 아플 정도로 붓 끝에 힘도 많이 주었고, 욕심도 많이 내 보았다. 아마도 그 때에는 남의 눈을 의식하여 그들의 평가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불심을 담은 나의 좋은 기를 모아 그림을 그려서 보는 이들이 그저 나의 그림에 눈높이를 맞춰주었으면, 혹은 나의 그림으로 다른 이의 눈높이가 맞춰졌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붓이 움직이는 대로 자신 있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편하다. 아마도 그림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는 이치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특별히 무엇을 하겠다고 설정한 사실적인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 그저 지금 하고 있는 그대로 불화를 그리는 일에 꾸준히 매진할 생각이다. 그것이 평생을 걸고 갈 나의 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꿈이 있다면, 장구한 세월이 흐른 뒤 돌이켜 보았을 때, 불화를 그리는 사람으로서 한 시대를 대표할만하다는 인정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불심을 다해 좋은 마음을 불화에 담아내고자 노력해야 할 것임을 안다. 선친의 뜻을 받들어, 결코 퇴보하지 않는 불화를 그리며 마음을 다해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

■ 지허 조성범 원장의 프로필
<시상 경력>
1986. 현대 서화 대상전 불화부분 최우수상 / 1990. 한국문화예술대상전 불화부분 최우수상 / 1990. 국제예술진흥회 불화부분 대상 (세종문화회관) / 1991. 국제예술 대상전 불화부분 대상 / 1992. 국제서화대상전(전일전) 대상 / 한국문화 국제종합대상전 밀알장학회 초대작가 / 대한민국 문화예술 대상전 초대작가 / 길림예술항수대학교 불화부분 명예교수 / 현 선재사 주지 및 선재불교미술 원장
<공개 실적>
1992. 한 ·중 연합 선서화전 / 1992. 한·일 서화교류전 (오끼나와) /  1992. 길림성 역사박물과 문수보살상 소장 / 1994. 불화개인전 (부산역문화관) / 1994. 통도사 부산포교원 초대전
<주요 작품>
대각사 괴불탱화 / 통도사 금수암 후불탱화 / 밀양(대각사 부설 영산정사) 오천불회도 /  영도 미륭사 수월관음도 /  경주외동 후불탱화, 산중탱화 및 단청 /  울산 대흥사 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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