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진신사리와 묘법연화경이 보존된 전통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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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진신사리와 묘법연화경이 보존된 전통사찰
  • 취재_양성빈 본부장/장영희 기자
  • 승인 2008.05.1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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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과 불도가 있는 지장도량

   
▲ 원명사는 오로지 지장기도만을 일심으로 행하고 있는 사찰로 유명한데 지장기도의 전통적 수행방법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는 이곳은 보물 961호로 지정된 묘법연화경이 보존되어있는가 하면 지장전과 지장보살상이 몇 곳에 모셔져 있어 많은 이들로부터 진정한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는 기도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동 IC를 빠져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명사의 이정표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정표를 따라 김해시 대동면의 자연의 정취를 즐기고 있다 보면 어느새 깨끗한 공기와 고즈넉한 산세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원명사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원명사(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208/055-335-6449)는 오로지 지장기도만을 일심으로 행하고 있는 사찰로 유명한데 지장기도의 전통적 수행방법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는 이곳은 보물961호로 지정된 묘법연화경이 보존되어있는가 하면 지장전과 지장보살상이 몇 곳에 모셔져 있어 많은 이들로부터 진정한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는 기도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5월 12일(음력 4월 8일) 석가탄신일을 맞이해 원명사 주지 보운 스님을 만나 부처님의 말씀을 통한 현대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삶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백두산(白頭山) 정기 이어받아 참사랑 실천

부산 근교 김해에는 ‘백두산(白頭山)’이라는 심상치 않은 산이 하나 있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똑같은 산명을 지닌 이 산은 김해 대동에 위치해 있는데 의외로 산이 야트막해 워킹산행지로 전문산악인들에게만 잘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울창한 숲과 골이 이루어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백두산은 그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지점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의해 북한 백두산 정상에서 정남(正南)으로 곧바로 내려와 떨어지는 마지막 산이 자리한 지점이라고도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북한의 백두산과 대조적으로 362m의 낮은 이 산에도 불심의 터가 자리하고 있다. 가야의 옛 터 이기도 한 김해의 원명사(圓明寺)가 바로 그 곳이다. 원명사는 오래 전 가락국 시절부터 존재해 온 사찰로 추정되고 있는데 요사 뒤편에서 1392년 제작된 등복사(登福寺)라는 기와 와편이 출토돼 최소한 이 곳(옛날에는 이곳을 등복골이라 불렀음)에 사찰이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여러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원명사는 1920년대 장 씨 성을 가진 ‘보수행’이라는 보살에 의해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보수행’이라는 보살은 스님이신 삼촌으로 부터 물려받은 지장보살님을 원불로 모시고 계시다가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가기위해 부산까지 부처님을 업고 오셔서 연락선을 기다리면서 여관에서 묵는 동안 밤마다 지장보살님이 스님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일본으로 가기 싫다는 꿈을 매일 꾸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을 업고 찾아간 골짜기가 지금 원명사가 있는 등복사 지역이었다고 한다. ‘보수행’은 이 지역에 부처님을 모실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금빛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와서 지은 절이라고 하여 금불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하게 되었다. 이러한 유서를 가진 원명사의 역사는 최근의 역사만 전해져 오고 있으며 약 80여 년 전 원명 스님의 재창건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불맥을 이어오고 있다. 원명 스님은 당대의 도인이었던 수월 스님의 제자 지암 스님에게 출가하여 평생을 생식과 장좌불와(長坐不臥 드러눕거나 기대지 않고 수행하는 것)의 수행으로 정진하시다가 1992년 11월 앉아서 입적하셨는데 입적하시기 한 달 전 “내가 몇 월 몇 일 몇 시에 간다”고 제자인 영봉스님에게 예언하시고 예언하신바 대로 그날 그 시에 입적하셨다고 전해진다.


대한민국 제일의 지장기도 도량 원명사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원명사는 오로지 지장기도만을 일심으로 행하고 있어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원명사가 제 2의 창건을 할 때부터 사찰 고유의 전통적인 기도형태를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지장기도 외에 관음기도, 약사기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뒷받침하여 설명하는 보운 스님은 “원명사는 대웅전 외에도 지장전과 지장보살상이 몇 곳에 모셔져 있다”고 말하며 “원명사에 모셔진 지장보살 중 자모지장보살상은 세계의 대지진이나 나라의 큰 일이 일어나기 몇 일전부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이적을 보여 김해를 비롯한 경남일대에 많은 이들에게 입소문이 자자하다고”전했다. 또한 “원명사는 비교적 넓은 터에 잔디를 깔고 가람을 반듯하게 구조해 놓고 있어 신흥사찰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는 보운 스님은 가락국의 옛 사찰로서의 역사를 묻어둔 채 김해 제일의 지장도량으로 성장하고 있는 원명사의 긴 역사와 그 속에 서려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해 말했다. 이와 함께 “도심 속의 기도도량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철야정진 기도를 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제일의 기도도량으로 발전하는 원명사의 내일을 지켜봐 달라고 거듭 전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원명사

   
▲ “원명사는 대웅전 외에도 지장전과 지장보살상이 몇 곳에 모셔져 있다”고 말하는 보운 스님은 원명사에 모셔진 지장보살 중 자모지장보살상은 세계의 대지진이나 나라의 큰 일이 일어나기 몇 일전부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이적을 보여 김해를 비롯한 경남일대에 많은 이들에게 입소문이 자자하다.

원명사에는 오늘날까지도 수시로 방광을 하고 증과와 은현(숨었다 나타났다 함)을 하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대한민국 불교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이곳의 진신사리는 중국에 최초로 불법을 전한 ‘축법란’이라는 분이 중국에 처음 불법을 전하러 오실 때에 백마(白馬)에 부처님 사리와 경전을 모시고 위나라로 오시게 되면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위나라에서는 ‘축법란’을 반갑게 맞이하여 백마사를 창건하여 ‘축법란’과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구려 때 ‘아도’라고 하는 분이 아버지의 나라인 위나라로 가서 백마사에서 스님이 되신 후 고국 고구려로 돌아오실 때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돌아오셨는데 어머니인 ‘고도령’의 유언에 따라 신라로 불법을 전하러 오시면서 사리를 모시고 오셨는데 제일 큰 백호사리는 도리사를 창건하고 모시게 되었으며 나머지 정골사리는 청화산 백련사를 창건하고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백련사는 구한 말 고종황제 시대 때 비안현감의 직권에 의하여 소실되었고 그 곳에 모셨던 진신사리는 두점 스님께서 모시고 가까운 운암산 정수암으로 이주하여 모시게 되었다. 이 진신사리는 중국 백마사에서 모시고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운암산을 백마산으로 바꾸어 부르고 그 곳에서 도암스님으로부터 성암강백에게로 전해 내려오다가 무신년(1968년) 2월에 원명사의 회주이기도 한 묘허 스님에게 전해졌다가 석우 스님께로 전해져서 원명사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방광을 비롯하여 증과와 은현을 하는 등의 신통을 보이는 이 진신사리는 중국과 한국 북방불교권에서 최초로 모셔진 진신사리”임을 강조하는 보운 스님은 “묘허 스님께서 성암 스님으로 부터 전해 받을 실적에 백련사를 복원하라는 부탁과 묘허 스님의 생전에 복원할 수 없으면 제자에게 전해주면서 꼭 백련사를 창건하고 사리를 그 곳에 모시라는 부탁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전하며 대한민국 불교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원명사에서 많은 불자들이 불교의 참 진리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보물 제961호 묘법연화경 보관
원명사는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 제961호로 지정된 묘법연화경(1988년 12월 28일)이 보존되어 있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보운 스님은 “묘법연화경 중 4권에서 7권에 해당하는 이 책을 뜻있는 단월(시주자)로부터 기증받아 모시게 되었다”며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전인데 묘법연화경이 최고의 경전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세상에 현존하는 많은 경전의 내용을 집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부처가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음을 전하는 묘법연화경의 내용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이 원명사 안에서 더욱 많은 불자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하다.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208 T. 055-335-6449

INTERVIEW  |  원명사 주지 보은 스님

우리 문화와 깊은 인연을 맺으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불교. 그 중에서도 경상남도는 불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똑같은 산명을 지닌 김해의 백두산(白頭山)의 정기를 받은 ‘원명사’. 이곳을 찾은 날은 봄비가 촉촉이 땅을 적시고 온 세상에 만연한 봄의 기운을 알리던 봄날이었는데 따스한 봄 햇살보다 따뜻한 미소로 기자를 맞는 보운 스님의 첫인상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운 스님은 단양 방곡사 회주로 있는 묘허 스님을 은사로 불가에 출가했다. 그는 출가 후 은사 스님의 영향으로 선방에서 정진하다가 김해 원명사의 주지로 있으며 원명사의 긴 역사와 소중한 문화유산을 이어가길 바라는 묘허 스님의 뜻과 인연에 의해 원명사의 주지가 되었다고 전했다.

그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불교는 위로는 스스로 열심히 실천 수행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취한 바와 같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아래로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일깨워 참된 지혜와 자비의 삶으로 인도하여 이 세상을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각성된 사회로 만들어 나가는 것, 즉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실현에 있다”며 이러한 불교 말씀을 통해 모든 이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여 진정한 부처님의 자비를 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전체 불자가 모두 다녀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불자에게 만이라도 제대로 된 실천불교를 전하고 싶습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보운 스님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어느새 불도의 한 자락에 서 있는 듯한 편안함이 밀려왔다. 넉넉한 산자락에 불자들을 향해 넉넉히 열린 사찰 인심이 있는 곳. 바쁜 생활을 잠시 접고 원명사를 찾아 만연한 봄기운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김해 원명사 찾아가는 길
·승용차 이용: 경부고속도로에서 내려온다면 먼저 부산시내로 들어와 만덕터널을 지나 약 20분 정도 달려 구포다리(구포 옛다리)를 건넌다. 다리가 끝날 무렵 대동 쪽으로 우회전해 쭉 가다보면 왼쪽으로 상동, 직진하면 월촌가는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상동 쪽으로 지나면 곧 작은 마을이 나오고 이 마을을 지나 곧장 가면 굴다리가 나온다. 이 굴다리를 지나 우회전해 직진하면 작은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여기서 원명사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대중교통 이용: 구포시장에서 125번 버스 이용 후 종점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5분가량 소요(첫차: 6:25분, 막차: 21:55분, 배차간격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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