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26개 코스 425km를 걸으면서 얻게 된 ‘작지만 큰 행복’

[시사매거진] 지난 4월 제주 올레길을 처음 걸으면서 아니 세상에 이렇게 예쁜 길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걷는 내내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그러다가 제주올레길의 모든 코스가 편하고 예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도 경험하면서 지치고 힘든 시간들도 겪었다. 그러면서 주로 인기 많은 코스를 위주로 걷고 체험하면서 체험담을 글로 독자들에게 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대략 7개의 코스와 한라산 백록담을 오른 후 서울로 돌아왔다. 그 후 올레길에 대한 그리움이 하루하루 머릿속을 맴돌았다. 올레길을 걸었던 순간들에 대한 기억이 매일매일 생생하게 떠올라 결국 남은 19개의 코스를 모두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6월 나는 제주도 한바퀴(425km)를 완주하기 위해 다시 제주를 찾았다. 제주의 날씨만큼 뜨거운 내 열정은 이미 마지막 코스인 올레21코스 종착지에 가 있는 것만 같았다.
 

추자도 풍경(사진_정용일 기자)

제주시내와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17코스의 매력
인생 최고의 노을은 마치 하늘이 준 선물 같았다

그렇게 나름 고난의 코스였던 11~14코스를 넘어 15, 16코스를 지나니 사뭇 다른 분위기의 17코스를 만나게 됐다. 무수천을 따라 숲길과 물길을 지나면 제주공항이 있는 제주의 도심으로 접어들게 된다. 청보리길과 목마등대로 유명한 이호테우해변을 지나 한가로운 마을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제주의 머리라 불리는 도두봉에 다다른다. 도두봉에 오르면 제주공항의 전경과 수도 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 뒤로 보이는 한라산의 풍경도 볼거리 중의 하나다. 도두해안도로를 지나 제주공항을 주변을 거쳐 계속 걷다보면 제주시청 주변의 제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17코스의 도착점이다. 제주시내 주변에 숙소를 잡은 나로서는 호텔로 복귀하기가 매우 수월해서 좋았던 코스이기도 하다.

그리도 다음 날은 추자도에 가는 날이었다. 추자도만 완주하면 올레길 최종 완주 마지막 하루가 남는 날이기도 했다. 전 날 추자도에 들어가는 배표를 미리 예매해두었으며, 아침 일찍 터미널로 향했다. 여객선으로 1시간을 이동해서야 도착했으며, 추자도에 도착했을 때인 오전 11시부터 이미 하늘은 이 날 엄청난 노을이 펼쳐질 것이란 걸 암시라도 하듯 하늘의 풍경이 역대급으로 아름답고 청명한 날이기도 했다.

추자도 풍경(사진_정용일 기자)

올레길 26개의 코스 중 총 3개의 섬이 코스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섬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지금부터 이어서 해보겠다.


가파도에서 먹었던 짜장면, 또 먹고 싶은 그 맛
전기스쿠터를 타고 우도 해안도로를 꼭 달려보자
시간 내에 항구로 돌아오지 못하면 섬에 하루 갇혀요

먼저 가파도는 올레10-1코스로써 총 길이 4.1km의 올레길 중 가장 짧은 구간이다. 섬에 도착해 섬 전체를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는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 곳곳에 아기자기한 식당 및 카페들도 있어 허기를 채우기에도 적당하다. 특히 가파도 짜장면은 그 특유의 맛이 있어 한번쯤은 꼭 먹어볼만한 별미로 추천한다.

가파도 짜장면(사진_정용일 기자)

다음으로 올레길18-1코스인 추자도는 생각보다 섬 면적이 매우 넓은 곳이다. 배를 타고 10~15분이면 갈 수 있는 가파도나 우도와는 다르게 배로 1시간가량 이동해야 하는 꾀나 먼 거리이기도 하다. 또한 당일치기로 섬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배편은 한 번 밖에 없기 때문에 당일 섬을 빠져나오려면 반드시 오전 배를 타야만 한다.

추자도행 여객선(사진_정용일 기자)

올레코스를 걷기 위해서는 섬의 상단부분인 상추자와 섬의 하단부분인 하추자를 걸어야 하는데 코스 전체가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여러 언덕을 올라야만하기 때문에 섬을 당일 빠져나오려면 배 시간이 딱 한 번 정해져있어 그 시간까지 반드시 항구로 돌아와야만 섬을 나올 수 있다.

오전에 섬에 도착 후 17.7km라는 긴 코스를 대략 5시간 30~6시간 안에 완주를 해야만 한다는 시간적인 압박감이 더해져 생각보다 힘든 코스로 유명한 곳이 바로 올레 18-1코스 추자도이다. 하지만 섬 전체를 한바퀴 계속해서 순환하는 버스가 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다 싶으면 중간에 버스를 타고 항구로 돌아와도 된다. 만약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건 자존심이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 악 물고 매우 부지런히 걸어야만 할 것이다.

내가추자도를 방문했던 날은 하늘이 완벽 그 자체였으며, 코스를 한 바퀴 걷는데 시간이 빠듯하긴 했지만 그 환상적인 풍경들을 사진에 하나하나 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추자도 풍경들(사진_정용일 기자)

마지막으로 올레길1-1코스인 우도에 대한 설명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올레길 26개의 코스를 걸으면서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던 코스 3개 정도를 꼽으라면 그 중 한 코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우도 올레코스는 총 11.2km의 거리로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의 코스다. 또한 우도의 제주를 방문하는 일반 관광객들에게 무조건 한 번은 다녀오는 필수적인 코스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는 관광지인 만큼 볼 것도, 즐길 것도, 먹을 것도 많다는 얘기다.

제주 일몰과 낚시꾼(사진_정용일 기자)
제주의 일몰(사진_정용일 기자)

특히 올레길 트레킹을 마치고 전기스쿠터를 빌려 우도 외곽 해안도로를 한 바퀴 달렸던 기억은 내 생에 최고로 즐거웠던 추억 중 하나로 남았을 만큼 강력 추천하고픈 액티비티다. 이렇게 멋진 하루를 보내고 도두해안도로를 지나 호텔로 복귀하면서 본 노을 역시 인생 최고의 노을이었으니 정말 이 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행복 가득한 날로 기억된다.

우도 전기스쿠터(사진_정용일 기자)
우도 하고수동해수욕장(사진_정용일 기자)
도두해안로도로의 노을(사진_정용일 기자)

425km 26개 코스의 마지막... 올레21코스를 함께 걷다
함께여서 더욱 힘이 나고 행복했던 대장정의 마지막 걷기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대망의 올레길 425km를 완주하는 날이었다. 마지막 남은 20, 21코스를 남겨두고 피곤함이 겹겹이 쌓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전 7시에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올레길 전체코스를 완주하게 될 이 날은 다른 날 보다 더욱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나와 함께 올레길의 마지막 날을 함께 걸어주겠다며 친한 형이 전 날 제주까지 와 준 것이다. 그 형과 함께 올레길 완주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그 수많은 코스를 홀로 외로이 걸어왔던 터라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이 약간 낯설기도 했지만 그 낯설음도 잠시뿐... 걷는 내내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걷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게 걸었다. 오늘이 올레길을 완주하는 날이라는 생각에 없는 기운도 솟아올랐고 평소 좋아하던 사람과 함께 올레길 완주를 앞두고 걸으니 그 힘이 두 배가 되었다.

마지막 올레길 30km를 함께 했던 고마운 형(사진_정용일 기자)

수다를 떨며 걷다보면 어느새 중간스템프가 보였고 또 어느새 20코스가 끝나고 마지막 코스인 21코스의 중간스템프가 보였다. 하지만 그동안 쌓인 피로와 양쪽 발에 잡힌 물집들에 의한 통증은 나를 매우 힘들게 했다. 21코스의 마지막 도착점을 두어 시간 남겨두고 정상적인 걸음으로 걸을 수 없었다. 스틱에 의지해 절룩거리며 걸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최고였다.

함께 걷던 형님에게 내색을 안했지만 제주 성산에서 시작된 걷기가 드디어 제주도를 한 바퀴 걸어 저 멀리 눈앞에 성산일출봉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니 무언가 울컥하는 것이 느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터벅터벅 스틱에 의지해 절룩거리며 걷다보니 드디어 21코스 도착점에 다다랐고 우리 둘은 멋지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올레길에서의 나(사진_정용일 기자)

막상 완주를 하니 별 생각이 없었으며 조금은 허무하기도 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이제 더 이상 반 강제적으로 정해진 목표대로 이른 아침부터 걸어야만 했던 그 과제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올레길 마지막 두 코스 30km를 함께 해 준 형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씻고 제주시에서 다시 서귀포행 급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유인 즉, 올레길 완주 증서와 완주메달을 받기 위함이었다. 서귀포에 있는 올레본부에 도착하니 본부 직원들이 완주를 축하한다며 힘찬 박수를 보냈다. 기분이 좋고 으쓱하기도 하면서 조금은 쑥스럽기도 했지만 아무튼 기분이 정말 좋았다. 17일 만에 올레길을 완주했다고 말하자 나의 그 기록은 지금까지 올레길 완주자들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기록이라고 했다. 수 년 동안 매일 10km씩 걸으며 기본 체력을 다져온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본부에서 한 손에는 인증서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메달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제주시로 돌아 왔다.

올레길 완주증과 완주메달(사진_정용일 기자)

그리고 올레길을 완주한지 벌써 한 달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제주에서 걸었던 기억들이 아주 생생하다. 무엇을 위해 걷든 그 이유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좋다.

그냥 하염없이 걷다보면 걸으면서 자연스레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유가 생기기도 하고 명확한 이유에서 걷기를 시작해도 또 걷다 보면 그 이유가 사라지기도 하고 그렇다. 그냥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 걸으면서 생각나는 것들, 걷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외로움, 기쁨, 고통, 피곤함, 슬픔, 아름다움 등등 그 모든 것들이 나중에 스스로에게 큰 위안이 되고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믿는다.

가파도 어딘가에서(사진_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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