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느린걸음, 한글,영문 동시 수록

박노해 에세이 ‘걷는 독서’ 출간...“인간은 걷는 존재, 만남의 존재, 읽는 존재”

[시사매거진] 표지에 새겨진 ‘걷는 사람’의 고전적 이미지가 시선을 붙잡는다. 박노해 시인이 2008년 고대 문명의 발상지 알 자지라(Al Jazeera) 평원에서 만난 ‘걷는 독서’를 하는 소년을 찍은 사진에서 따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알 자지라 평원 길을 달리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15살 소년은 경전을 들고 밀밭을 거닐며 ‘걷는 독서’를 하고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어둑한 방에서 나와 만년설산의 햇살 아래 ‘걷는 독서’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 “따사로운 햇살은 파릇한 밀싹을 어루만지고, 그는 지금 자신의 두 발로 대지에 입 맞추며 오래된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선조들의 복장과 걸음과 음정 그대로 근대의 묵독 이전의 낭송 전통으로 ‘걷는 독서’.” (박노해, ‘걷는 독서’)

박노해 시인은 오랜 독서 행위인 ‘걷는 독서’의 체험을 오늘날 우리에게 새롭게 전하고자 했다.

“지금 세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걷는 존재이고 만남의 존재이고 읽는 존재이다.” (박노해, 『걷는 독서』 서문 중) 『걷는 독서』는 언제 어느 곳을 걸으며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좋을, 삶의 모든 화두가 담긴 한 권의 책이다.

박노해 에세이 ‘걷는 독서’ 출간...“인간은 걷는 존재, 만남의 존재, 읽는 존재”

예약판매 즉시 베스트셀러, 20대 여성들이 제일 먼저 소장한 책

지난 5월 26일 예약판매가 시작된 『걷는 독서』는 에세이 분야에서 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알라딘, 교보문고, 인터파크 등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판매 도서 중에는 유일하게 10위권 안에 올랐다. SNS를 통해 ‘걷는 독서’를 보아온 팔로워들은 책 출간 소식에 댓글과 예약 구매로 뜨거운 기대를 표했다. “스무 살에 인스타를 통해 시인의 글을 처음 읽었는데 어느새 홀딱 반했습니다. 책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너무 기쁩니다”, “한 권은 나를 위해, 한 권은 힘든 친구를 위해”, “서문 일부를 읽고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났습니다”, “잠 못 들던 새벽에 필사하던 문장들이 쌓여 노트 한 권이 되었습니다” 등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던 자신만의 문장을 공유하며 〈걷는 독서〉 공동체를 형성해가고 있다. 판매 첫날, 가장 먼저 책을 구매하러 찾아온 독자들은 20대 여성들이다. “역사상 가장 많이 알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실시간으로 이어져 있는 감각적인 세대들”(박노해)이기에 그들에게 『걷는 독서』는 빛을 타고 별처럼 꽃처럼 가슴에서 피어나는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박노해 에세이 ‘걷는 독서’ 출간...“인간은 걷는 존재, 만남의 존재, 읽는 존재”

박노해 글·사진전 〈걷는 독서〉展, 그리고 최고의 영문 번역

2010년부터 이어온 ‘박노해 사진전’은 흑백 아날로그사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데, 이번 책에는 그간 촬영해온 수십만 장의 사진 중 컬러 작품만을 시인이 엄선하여 담았다. 한 편 한 편의 문장에 생기와 빛을 더하는 사진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채로운 감성을 전한다. 출간에 맞춰 열리는 특별전시 〈걷는 독서〉展(6.8~9.26, 서촌 ‘라 카페 갤러리’)에서 책에 담긴 대표작 57점의 컬러 사진과 문장을 감상할 수 있다. 좋은 문장을 품격 있는 영어로 동시에 읽는 기쁨도 있다. 한국문학 번역의 독보적인 대가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Brother Anthony of Taize)가 박노해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하여 우리말의 깊은 뜻과 운율까지 살린 영문을 나란히 수록했다.

박노해 에세이 ‘걷는 독서’ 출간...“인간은 걷는 존재, 만남의 존재, 읽는 존재”

박노해

시인, 사진작가, 혁명가.

1984년 27살에 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었으며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1991년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사형을 구형받고 환히 웃던 모습은 강렬한 기억으로 새겨졌다.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 침묵 정진 속에 광활한 사유와 독서와 집필을 이어가며 새로운 혁명의 길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그후 20여 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왔다. 지금까지도 모든 글을 오래된 만년필로 써 나가는 그는, 고난의 인생길에서 자신을 키우고 지키고 밀어 올린 것은 ‘걷는 독서’였다고 말한다.

하명남 기자 hmn2018@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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