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조국의 시간’에…또 둘로 나눠진 나라

[시사매거진 276호] 내년 3월 9일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 문제가 핵심 이슈로 재부각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조 전 장관의 정치권 전면 등장을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여권 지지층에는 검찰 개혁의 아이콘이지만, ‘부모 찬스’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조 전 장관을 그대로 둔 채 향후 대선을 치러야 하는 여당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은 강하게 비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출판한 자서전 표지(사진_한길사 홈페이지)

20대 대통령선거를 9개월 앞두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여권이 또다시 ‘조국 소용돌이’에 빠졌다. 여권 지지층에는 검찰 개혁의 아이콘이지만, ‘부모 찬스’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조 전 장관을 그대로 둔 채 향후 대선을 치러야 하는 여당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은 강하게 비판했다.

자녀 입시 및 사모펀드 비리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해 11월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조 전 장관은 “오랜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보내며 조심스럽게 책을 준비했다”며 “밝히고 싶었던 사실,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뒀던 말을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촛불 시민들께 이 책을 바친다”고 밝혔다.(사진_뉴시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출판

조 전 장관은 지난달 27일 자서전 출간 소식을 알렸다. 한길사가 펴내는 ‘조국의 시간’이라는 책이다. 1일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 동시 발매가 되었다.

조 전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오랜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보내며 조심스럽게 책을 준비했다”며 “밝히고 싶었던 사실,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뒀던 말을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촛불 시민들께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또 “4·7 재·보궐선거 이후 저는 다시 정치적으로 재소환됐다. ‘기승전-조국’ 프레임은 끝나지 않았고, 여당 일각에서도 선거 패배가 ‘조국 탓’이라고 한다”면서 “저를 밟고 전진하시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한길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조국의 시간은 2019년 8월 9일, 조국이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정리하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기록했다”며 “언론의 허위 보도와 과장이 난무하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한 조직 이기주의에 맞서 내놓는 최소한의 해명이자 역사적 기록”이라고 밝혔다.

조 전 장관은 자신과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그는 책에서 “검찰은 압수수색 이후 내가 사모펀드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알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검찰은 수사를 접지 않고, 나와 내 가족 전체에 대한 전방위적 저인망 수사로 나아갔다. ‘멸문지화’의 문을 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사가 아니라 사냥이 시작됐다. 수십 개의 칼날이 쑤시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가족의 살과 뼈가 베이고 끊기고 피가 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아야 하는 절통이었다”고도 했다.

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윤석열에게는 촛불 혁명보다 검찰 조직의 보호가 더 중요했다. 민주보다 검치가 우위였다. 그는 영웅에서 반(反)영웅으로, 공무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고 평했다.

자신을 지지한 ‘서초동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나는 죽지 않았다. 죽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의 흠결을 알면서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생환(生還), 그것이면 족했다”고 밝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이룸센터에서 ‘이낙연의 약속’ 출판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가족이 수감되시고, 스스로 유배 같은 시간을 보내시는데도 정치적 격랑은 그의 이름을 수없이 소환한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고 밝혔다.(사진_뉴시스)

여권의 반응

조 전 장관이 집필한 책 출간과 관련해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7일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내려가는 심정’이었다는 소회. 조 전 장관께서 그간의 일을 어떻게 떠올리고 어떻게 집필하셨을지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가족이 수감되시고, 스스로 유배 같은 시간을 보내시는데도 정치적 격랑은 그의 이름을 수없이 소환한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지난달 28일 “조국의 시간은 역사의 고갯길이었다.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서초동의 촛불을 가른 고개”라며ㅊ“부디, 조국의 시간이 법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그 진실이 밝혀지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과 불공정이 교차하고 진실과 거짓이 숨을 몰아쉰, 넘기 참으로 힘든 고개였다”고 평가했다.

정 전 총리는 “언제나 역사 앞에 선 개인은 힘이 없다”며 “공인이라는 이름으로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발가벗겨지고 상처 입은 그 가족의 피로 쓴 책이라는 글귀에 자식을 둔 아버지로, 아내를 둔 남편으로 가슴이 아리다”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조국의 시련은 개인사가 아니다”라며 “조국의 시련은 촛불 개혁의 시작인 검찰개혁이 결코 중단돼서는 안 됨을 일깨우는 촛불시민 개혁사”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한 의원은 “조국 문제에 발목 잡혀선 안 되는데 또 조국이냐”며 “지도부가 사과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대선 주자들까지 동조하고 나섰다”고 했다. 다른 초선 의원은 “대선 경선 시작 전에 당 지도부가 ‘조국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는데 완전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야권의 비판

황규환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구두 논평을 통해 “조 전 장관은 재판 중인데도 자신이 억울하다며 또다시 국민기만극을 펼치려 하고 있다”면서 “끝까지 반성이 없다.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되레 당당히 출판까지 하는 몰염치와 국민 기만은 이 정권 축소판”이라고 비판했다.

유승민 전 국회의원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조국 씨가 ‘조국의 시간’이란 책을 내자 민주당 인사들이 아부 경쟁에 나섰다”며 “‘조(曺)비어천가’를 부르는 한심한 민주당”이라고 비판했다.

유 전 의원은 ‘조국의 시간은 역사의 고갯길…가슴이 아리다’, ‘그가 뿌린 개혁의 씨앗을 키우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가슴 아프고 미안하다’, ‘조국의 시간은 우리의 이정표…조국의 시련은 촛불시민 개혁사’ 등 범여권에서 나온 조 전 장관의 회고록 출간에 대한 입장들을 나열했다. 이같은 범여권 정치 인사들의 반응에 대해 “이 말만 들으면 무슨 애국지사를 기리는 찬양시 같다”며 “조국은 불공정과 불법, 거짓과 위선의 상징이다. 조국 사건은 사이비 진보들의 밑바닥을 보여줬고, 이 때문에 민심이 그들을 떠났다”고 직격했다.

이어 “그들이 ‘조비어천가’를 목놓아 부를수록 민심은 더 싸늘해질 것”이라며 “무서운 민심을 알면서도 친문 극렬 지지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비어천가를 부르는 거라면, 그런 사람들은 정치할 자격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김근식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위선자 조국(曺國) 때문에 우리는 조국(祖國)이라는 원래 좋고 아름다운 국어를 못 쓰게 되었다”고 씁쓸한 심경을 드러냈다.

김 교수는 “우리 조국, 조국 사랑, 조국 통일 등 애국심을 발현케 하는 정말 자주 쓰던 국어였는데, 조국 사태 이후 도저히 조국이라는 애초의 순수한 단어를 입에 올릴 수가 없게 되었다”며 “‘조국’이라는 단어를 차마 쓰지 못하고 ‘나라’로 바꿔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어만 훼손된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훼손되었다”며 “조국(曺國) 때문에 조국(祖國)이 훼손된 것이다. 정청래 의원이 또 한번 조국이라는 애국심의 좋은 단어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학교 교수가 지난 5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 창립식 및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과 한계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진 전 교수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 전 장관의 자서전 출간 보도를 공유한 뒤 “가지가지 한다”고 비꼬았다.(사진_뉴시스)

진중권, “가지가지 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 전 장관의 자서전 출간 보도를 공유한 뒤 “가지가지 한다”고 비꼬았다.

이어 다음날인 29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려면 조국기(조국+태극기) 부대에 아부해야 하고 그러면 당심과 민심의 괴리는 커지고”라며 “골치 아프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조 전 장관을 향해 “하여튼 이 친구의 멘탈은 연구대상”이라며 “또 책을 써야 하나? 제목은 ‘국민이 겪은 조국의 시간’”이라고 비판했다.

‘조국 흑서’로 불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공동 저자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경애 변호사는 “다시 한번 국론 분열 확장을 꾀하신다. 민주당 대선은 이 책으로 인해 물 건너간 듯하다”면서도 “또 뭐라고 혹세무민하는지, 재판에 내놓을 만한 항변은 적혀 있는지 파악해 보려고 책을 사게 될 테니 잘 팔릴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3월 9일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조 전 장관 문제가 핵심 이슈로 재부각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조 전 장관의 정치권 전면 등장을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민주당이 의뢰한 조사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2030 청년들의 이탈에 ‘조국 사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2030의 눈에는 ‘검찰개혁 투사’가 아니라 ‘선량한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은 잘나가는 부모’였을 뿐이다. ‘민생 우선’이라며 검찰개혁도 후순위로 밀어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공정 이슈에 민감한 20대 청년층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당의 딜레마는 더 깊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박희윤 기자  bond00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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