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생산과 생산적 복지를 실현해 가는 ‘행복공장만들기운동본부’
장애인들에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할 때

[시사매거진276호] 장애인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이가 있다. 한국의 중증장애인 복지가 불모지였던 시기에 시작하여 주위의 무관심과 냉대를 딛고 일어선 사람, 바로 정덕환 설립자다. 한때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국가대표 유도선수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한순간에 장애인이 되었지만 전신이 마비된 몸을 일으켜 장애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45년이 흐른 지금, 그는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헌신하는 장애인의 대통령'이 되었다.

사단법인 행복일자리운동본부 정덕환 이사장

에덴복지재단의 38년사는 정덕환 설립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직업 재활이 전무한 시절부터 다양한 제도가 마련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애인 고용 현장을 걸어온 산 증인이다.

이사장님께서는 어쩌다 중증장애인이 되셨고, 또 평생 장애인을 위해 봉사해 오신 계기는?

저는 전도유망한 국가대표 유도선수였습니다. 경기도중 목이 꺾이는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레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밥을 먹고 얼굴을 씻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네 살 아들을 둔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10여 년을 장애에 적응 하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세상에 장애인이 그렇게 많은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세상은 오직 정상인 중심으로만 돌아가고 있었기에,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서럽고 속 터지는 일인지 몰랐습니다.

절망을 딛고, 휠체어와 삼발이 오토바이에 익숙해진 저는, 당시 허허벌판이 던 구로동 이화아파트 근처에 이화식품이라는 간판을 걸고 식료품점을 시작했습니다. 삼발이 오토바이를 탄 1급 장애인이 남대문으로 동대문으로 물건을 싣고 다녔습니다. 장애인이 된 후 처음으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을 하고 싶어서 함께 모여든 장애인 5명과 함께 에덴복지원을 설립했고, 그렇게 첫 공동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업의 첫 성과로 3개월 동안에 36만 원의 매출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지출이 35만 원이라 아무것도 나눌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일을 해서 밥을 먹고 연탄을 피우며 살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 했습니다. 일해서 번다는 당당함에 얼굴이 밝아지면서, 장애의 그늘도 사라 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감격을 다른 장애인과도 함께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한때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국가대표 유도선수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한순간에 장애인이 되었지만 전신이 마비된 몸을 일으켜 장애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내기로 결심한다.

그동안 에덴복지원, 에덴하우스, 에덴복지재단을 설립하고 운영해 오셨는데, 기억에 남는 일은?

에덴복지재단의 배태(胚胎)라 할 수 있는 것이 이화식품입니다. ‘이화식품35년 전 제가 오랜 방황을 끝내고 생계를 위해 시작했던 작은 구멍가게 입니다. 겨우 앉아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거스름돈도 거슬러줄 수 없어 손님들이 직접 거슬러 갔습니다. 힘이라곤 쓸 수 없는 손이지만 그 손으로 삼발이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물품을 실어 날랐습니다. 운전대를 잡지 못해 쓰러지기도 수없이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학용품이라도 하나 사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983, 5명으로 시작한 에덴복지원 시절부터 판로개척의 필요성을 몸소 체험한 저는 판로를 위한 확고한 방안이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35년 동안 복지와 관련한 정부 부서들을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탄생시킨 법이 바로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을 제정한 일입니다. 그것이 가장 보람된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것에 대해 지금도 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법은 말 그대로 중증장애 인들이 만든 생산품을 우선 구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법이 만들어지기 까지 참 많은 고생이 따랐지만, 그나마 17대 국회의원이었던 정하원 의원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감정이 북받치는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신 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복지 관련 부서를 찾아다니다 보면 보통 4~5층 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복지과가 한직(閑職)이기도 했고, 90년대까지만 해도 보통 공공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4~5층까지 휠체어를 탄 채,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두 사람이 양쪽에서 휠체어를 잡고 뒤로 비스듬히 눕혀서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아 차 실수라도 하는 날엔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렇게 겨우 계단을 올라 복지과에 들어서는 저를 바라보던 공무원들의 멸시에 찬 눈빛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 리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에덴복지재단의 특징은 일반 작업장에서는 일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이 모여 제품을 생산하는 생산적 복지의 모델이라는 점입니다. 1987년 내가 중 증장애인들의 생산 현장을 제안하자 당시 학교 교수들이 발달장애인을 자립 시킬 수 없다고 인정하고 염려를 많이 하기도 했지만, 에덴은 이미 장애 인 복지의 바람직한 모델로 인정을 받아 국제노동기구(ILO)에 등록됐습니다. 1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최대 장애인고용생산시설인 에덴을 통해 자립하여 세금을 내는 당당한 장애인 근로자들을 대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허허벌판이던 구로동 이화아파트 근처에 ‘이화식품’이라는 간판을 걸고 식료품점을 시작했던 정덕환 이사장은 함께 모여든 장애인 5명과 함께 ‘에덴복지원’을 설립, 첫 공동체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진은 구로동 에덴하우스
허허벌판이던 구로동 이화아파트 근처에 ‘이화식품’이라는 간판을 걸고 식료품점을 시작했던 정덕환 이사장은 함께 모여든 장애인 5명과 함께 ‘에덴복지원’을 설립, 첫 공동체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진은 이화식품 시절 

지난 2014년에 발간한 행복공장 이야기에서 일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일할 수 없는 장애인은 사회가 돌봐야겠지만, 일할 수 있고, 일하고 싶은 장애인에게는 그런 기회를 주는 게 진정한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가졌지만 오히려 정상인보다 더 나은 집중력이나 차별화된 기능을 지닌 장애인 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찾아내어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저의 꿈입니다.

20097, 저는 한국직업재활시설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는데, 그해 10 30일을 장애인 직업재활의 날로 선포하고, 취임사에서 ‘1030비전을 제 시하면서, ‘일이 없으면 삶도 없다라는 장애인들의 일자리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어떤 장애를 가졌을지라도 노력을 통해서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은 귀가 더 예민하게 발달하고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팔이 더 강하게 발달합니다. 자폐와 같이 사회성이 발달 하지 않은 경우는 집중력이 남다르게 발달합니다. 이런 특성을 잘 살리면 또 다른 능력이 되고, 그 능력은 생산능력으로 이어집니다. 정부나 단체로부터 무상으로 베푸는 혜택을 받는 것보다도, 스스로 일하여 보수를 받을 때, 장애를 넘어 자신의 삶의 보람과 가치를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2011년 형원 개원식에서 직원들과 함께 기념사진

사단법인 행복일자리운동본부에 대한 소개를 한다면

2015423, 저는 에덴복지재단 내에 행복공장만들기운동본부를 만들어 각계 인사들을 모시고 출범식을 가졌습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통해 장애인의 자립 및 재활을 맞춤형으로 하는 생산시설인 행복공장을 전국화 하는 것을 목표로, ·중증장애인과 사회취약계층 비장애인(노인, 청년, 여성)이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일터를 만들고, 중증장애인생산 품 생산시설과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갖춘 사회적경제기업을 활성화하고 자 출범하였습니다.

특히 2019919, ‘사단법인 행복일자리운동본부는 친환경 생산과 생산적 복지를 실현하고자 에코페어(Eco-Fare)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시혜적 복지에서 고용복지, 생산적복지를 성취하기 위하여 전국 사단법인으로 독립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에코페어 발대식. 2019년 9월 19일, ‘행복공장만들기운동본부’는 친환경 생산과 생산적 복지를 실현하고자 ‘에코페어(Eco-Fare)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시혜적 복지’에서 ‘고용복지, 생산적복지’를 성취하기 위하여 전국 사단법인으로 독립 설립하게 되었다.
파주공장

사단법인 행복일자리운동본부의 활동 사항과 계획이 있다면

201912,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음과 동시에, 서울특별시 및 CTS기독교TV와 함께 서울광장에서 장애인기업, 사회적기업, 여성기업, 협동조합,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이 제조 생산하는 친환경적 및 기술혁신 제 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1회 대한민국 성탄마켓을 공동 개최하였으며, 2020년에는 온라인으로 개최하였지만, 올해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 행하여 개최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현재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 700여 개 중에 아직까지 대형식품 공장이 없는데 저희가 올 1월부터 설립을 준비하고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올해에는 대한민국 최초 대형 식품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 및 제1호 행복공장을 완성하려고 하고 있으며 앞으로 2, 3호 등 수십 수백 개의 행복 공장을 계속 만들어 더 많은 장애인과 사회취약계층 비장애인(노인, 여성, 청년)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친환경적이며 기술 혁신적인 제품 제조, 생산을 통해 고부가가치적 수익을 통한 안정적인 판매 및 고용증대, 그리고 소비자 에게는 품질 좋은 제품을 전달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입니다.

시사매거진(발행인 김길수)과 사단법인 행복일자리운 동본부(이사장 정덕환)는 2021년 5월 11일 업무협약 식(MOU)을 가졌다. 장애인 및 사회취약계층의 일자 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경제기업 활성화단체인 비영 리 사단법인 (사)행복일자리운동본부는 본 업무협약 으로 양 기관의 상호발전과 사회공헌 및 공익활동의 일환인 ‘에코페어(Eco-Fare)캠페인’ 활성화를 위해 노 력하고, 친환경과 사회복지를 아우르는 신사업 발굴 을 통해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말

장애인은 그들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또 장애인이 되었다고 해서 인간으로서의 능력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기능이 있으며,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오늘날 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과 시설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장애인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는, 불행한 신체적 현실을 극복 하고, 스스로 생산능력을 지닌 사회인으로서 굳건하게 활동할 수 있는 국가 정책은 물론, 건강한 기업들과 국민 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장애인들에 게는 끊임없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을 교육하여 생산능력을 계발할 것입니다. 또한 지구 환경 회복을 도모하는 건강한 기업들을 발굴하여, 성장시킴으로서,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그야말로 행복공장들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박희윤 기자 bond00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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