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걷는 독서’展, 라카페갤러리 6월 8일부터 개최 (라카페갤러리 제공)

[시사매거진] ‘라카페갤러리’의 19번째 전시 ‘걷는 독서’, 박노해 글·사진전이 오는 6월 8일부터 개최된다.

‘단 한 줄로도 충분하다.’ 매일 아침 한 줄의 문장과 사진으로 수많은 이들의 하루를 함께해온 〈박노해의 걷는 독서〉. 7년간 연재한 2,400편 가운데 엄선해 묶은 『걷는 독서』 책을 출간하며, 특별전시를 개최한다. 박노해 시인이 감옥 독방에 갇혀서도, 국경 너머 분쟁 현장에서도 멈추지 않은 일생의 의례이자 창조의 원천인 ‘걷는 독서’. 온몸으로 살고 사랑하고 저항해온 삶의 정수가 담긴 사상과 문장, 세계의 숨은 빛을 담은 사진이 어우러진 57점의 작품을 선사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날마다 계속해온 나의 ‘걷는 독서’ 길에서 번쩍, 불꽃이 일면 발걸음을 멈추고 수첩에 새겨온 한 생각들을 모았다. 이것은 눈물로 쓴 일기장이며 내 삶의 고백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대에게 보내는 두꺼운 편지다. 지금 세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걷는 존재이고 만남의 존재이고 읽는 존재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하고 삭막한 이 시대에, 이 ‘걷는 독서’가 그대 안에 있는 많은 생각과 지식들을 ‘목적의 단 한 줄’로 꿰어내는 삶의 화두가 되고 어려운 날의 도약대가 되기를” ― 신간 『걷는 독서』, 박노해 시인의 '서문' 중

인류의 오래된 ‘걷는 독서’를 새로운 독서 체험으로

전시포스터에 상징처럼 새겨진 ‘걷는 사람’의 고전적 이미지가 눈길을 끈다. 박노해 시인이 2008년 고대 문명의 발상지 알 자지라(Al Jazeera) 평원에서 만난 ‘걷는 독서’를 하는 소년을 찍은 사진에서 따왔다.

“따사로운 햇살은 파릇한 밀싹을 어루만지고, 그는 지금 자신의 두 발로 대지에 입 맞추며 오래된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선조들의 복장과 걸음과 음정 그대로 근대의 묵독 이전의 낭송 전통으로 ‘걷는 독서’.” 박노해 시인은 이 오랜 독서 행위인 ‘걷는 독서’의 체험을 오늘날 우리에게 새롭게 전하고자 했다.

최초 공개 컬러사진과 최고의 영문 번역을 나란히

2010년부터 이어온 ‘박노해 사진전’은 흑백 아날로그사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데, 이번 전시에는 그간 촬영해온 수십만 장의 사진 중 컬러 작품만을 엄선하여 선보인다. 한 편 한 편마다 그 문장에 생기와 빛을 더하는 사진이 다채롭게 감각을 일깨운다.

좋은 문장을 품격 있는 영어로 동시에 읽는 기쁨도 있다. 한국문학 번역의 독보적인 대가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Brother Anthony of Taize)가 박노해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하여 우리말의 깊은 뜻과 운율까지 살린 영문을 나란히 표기하여 외국인들도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박노해 ‘걷는 독서’展, 라카페갤러리 6월 8일부터 개최 (라카페갤러리 제공)

내 삶을 비추는 ‘단 한 줄의 글’

더 많이 읽을수록 미로에 빠지고, 자기 자신과 멀어지는 시대. 지금이야말로 내 삶을 비추는 ‘단 한 줄의 글’이 필요한 때. 응축된 문장 사이로 영감이 깃들고, 가슴을 울리는 서정 사이로 새로운 나를 마주하는 체험을 선사할 전시 〈걷는 독서〉.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보게 하고, 삶의 수많은 문제 앞에서 나직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박노해 작가

시인, 사진작가, 혁명가.

1984년 27살에 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었으며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1991년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사형을 구형받고 환히 웃던 모습은 강렬한 기억으로 새겨졌다.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 침묵 정진 속에 광활한 사유와 독서와 집필을 이어가며 새로운 혁명의 길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그후 20여 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왔다. 지금까지도 모든 글을 오래된 만년필로 써 나가는 그는, 고난의 인생길에서 자신을 키우고 지키고 밀어 올린 것은 ‘걷는 독서’였다고 말한다.

라카페 갤러리(Ra Cafe Gallery)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명소 서촌에 위치한 ‘라카페갤러리’는 비영리 사회단체〈나눔문화〉가 운영하는 좋은 삶의 문화공간이다. 〈나눔문화〉는 박노해 시인이 2000년에 설립하여 정부 지원과 재벌 후원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국경 너머로 평화를 나누고 우리 사회의 생명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적은 소유로 기품있게’ 살아가는 대안 삶의 문화를 꽃피워 왔다.

라카페갤러리는 2012년 4월, 종로구 부암동에 처음 문을 열어 9년 간 18번의 박노해 사진전을 개최했고 지금까지 25만 명이 다녀가며 ‘도심 속 순례길’이 되었다. 2019년 6월, 경복궁역 인근 통의동으로 이전하여 새롭게 문을 열었다.

라카페갤러리(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8 (통의동 10)),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오후 10시, 월요일 휴관, 전시 관람은 무료다.

박노해 ‘걷는 독서’展, 라카페갤러리 6월 8일부터 개최 (라카페갤러리 제공)

 

하명남 기자 hmn2018@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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