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헐크파운데이션)

나에게는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부족하다. 내 야구 인생을 돌아봤을 때 오히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미래를 통찰하는 예지안(豫知眼)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이만수는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던 내 도전들은 미래를 알 수 없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에서의 메이저리그 코치, 라오스국가대표팀의 아시안 게임 참가, 베트남에서의 야구 전파는 내 인생 줄거리에 없는 자막이 되었을 것이다. 

베트남 하노이에 들어와 베트남 야구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땀 흘린지 한 달이 넘어간다. 아쉽게도 대부분 직장과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일과 후와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에 3번의 연습을 할 수 있다.

얼마 전 경악을 금치 못했던 실체와 마주친 평일 훈련장. 조명 하나 없이 미끄러운 보도블록 위에서 온갖 해충들에게 물려가며 연습하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주말에도 야구장이 없어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운 좋게 한국 사회인 야구팀이 미리 예약해 둔 야구장에서 당장 필요한 연습보다는 시합만을 하고 있는 그들을 몸소 경험했다. 

직접 눈으로 야간훈련과 주말의 연습 및 시합을 보면서 앞으로 베트남 야구를 대표할 선수들을 파악하고 미리 점찍어 두었다. 이미 훌륭한 재능을 보여준 5명의 선수를 마음에 두었다. 짧은 시간이라 미처 파악을 하지 못하거나 만나지 못한 선수들도 몇몇 있다고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베트남 선수들과 함께 해 온 유재호 감독과 이장형 베트남 야구지원단 단장이 파악하고 추천한 선수들을 포함하면 약 15명의 하노이 선수들이 초대 베트남 야구대표팀 승선이라는 감격을 누릴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물론 베트남 야구협회(VBSF)가 공식 업무를 시작하고 대표팀 선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 다양한 관점에서 선수들을 선발할 것이기에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5월 5일 호찌민과 다낭 훈련장 방문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4월 말부터 시작된 인도발 변종 코로나가 베트남 북부 지방에 확산되면서 베트남 내 긴장 상태가 최고조에 다다렀다. 일정을 부득이 취소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호찌민과 다낭팀들의 훈련장을 찾아 선수들을 코칭하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발굴해보려고 했던 계획이 무산되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 동안 이장형 단장, 유재호 감독과 거의 매일 만나 앞으로 전개될 베트남 야구의 방향과 미래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를 했다. 늘 비교대상이 되는 라오스의 야구발전과 비교해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 야구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한국 정부 기관인 주베트남 대사관, 한국문화원, 코이카를 비롯해 수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베트남 야구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민간 외교 차원에서 한국야구가 기여할 긍정적인 측면들을 이미 많은 이들이 인식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 야구협회가 출범하자마자 아시아 야구연맹뿐만 아니라 이미 WBSC 야구연맹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이들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베트남이 가진 야구에 대한 잠재력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_헐크파운데이션)

나는 머지 않아 베트남 야구가 인도차이나 반도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축구 못지 않는 인기를 누릴 것이라 확신한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많은 면에서 한국사람과 비슷한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 야구와 연관을 좀 짓고 싶은 것이 베트남 사람들이 손재주가 한국사람처럼 뛰어나다는 것이다. 야구는 손재주가 많고 다양한 감각이 고루 발달된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스포츠이다. 미세한 손 끝의 감각부터 땅으로 오는 공과 허공에 떠 있는 공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공을 쫒아가고 잡아내는 것은 많은 훈련과 함께 타고난 감각이 수반되어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타격에서도 매한가지이다. 또한 매 순간 강한 집중력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이 어느 스포츠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야구에 필요한 개인적, 의지적 요인을 베트남 젊은이들이 잘 갖추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이들은 다른 민족들과 비교해 자존심과 승부욕이 강하다고 들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 반응이 없는 것도 이들의 큰 장점이다. 물론 여기에 덧붙여 야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인프라 구축과 베트남 정부의 지원 등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베트남 야구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 청사진을 한국야구와 함께 그려갈 수 있기를 바라며 숙명과도 같은 이 일에 기꺼이 나를 희생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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