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주 칼럼] 물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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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주 칼럼] 물의 두 얼굴
  • 편집국
  • 승인 2021.05.0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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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주 변호사
오병주 변호사

[시사매거진275호] 10m가 넘는 시커먼 물기둥이 선박들을 뒤집으며 방파제를 뛰어넘는 일본 쓰나미의 모습은 우리에게 자연의 공포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인류 역사상 ‘이런’ 물의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은 부드럽고 생산적인 존재로서 수많은 신화와 비유의 대상이 되어 왔다. 동양에서는 물이 최고의 선(善)을 상징했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로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말했다.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할 뿐 거스르지 않고 항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얕은 곳을 향해 흐른다는 것이다.

2,700년 전 헬레니즘 문명이 꽃피기 시작할 때 그리스 7현(賢) 중 한 사람인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며 ‘지구는 물 위에 떠 있다.’라고 주장했다. 에게해에 둘러싸인 소아시아에서 살았던 자연 철학자 탈레스의 사유(思惟)가 지금 시점에서도 그럴듯해 보인다.

우리가 사는 지구 표면의 71%가 물로 채워져 있고, 또한 희한하게도 인간 몸무게의 71%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땅이라고 할 때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흙이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모든 육상생물이 깃들어 사는 흙의 평균 두께가 1m에 훨씬 못 미친다고 한다. 반면 울퉁불퉁한 육지를 평평하게 깎아 바다를 메우면 지구는 깊이 3,000m에 육박하는 바다만 남는다고 한다.

이 수치만 갖고도 지구가 ‘물의 행성’이라는 말이 실감 나고 ‘물은 생명이다’라는 수사(修辭)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시 생명체의 출현이 바다에서 이뤄졌으며, 이를 반증하듯 인간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물(양수)에서 자란다.

그러나 이번 쓰나미는 이렇게 부드럽고 생산적인 물이 문명의 파괴자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물은 바다에서 산으로 거꾸로 올라갈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인간이 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오만일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는 물을 가벼운 물질로 착각하고 산다.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 물을 바라보며 물이 실제보다 무겁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 보는 것 중에 물보다 무거운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액체 상태인 물은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간다. 어디든지 틈만 있으면 스며들어 간다. 이렇게 무거운 물에 속도가 붙어 이동하면 무서운 파괴자로 돌변하게 된다.

1㎥의 물은 1t이다. 소형차 1대의 무게에 해당한다. 이번 쓰나미는 시속 약 60Km의 속도로 육지를 향해 돌진했다고 하니 그 파괴력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장애물을 만나면 직접 싸우지 않고 돌아가는 물의 속성이 오히려 상상할 수 없는 파괴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무겁기 때문에 가벼운 것을 띄우고 밀어붙이는 물의 속성이 역으로 더욱 파괴력을 키운다.

동일본 대진이 몰고 온 또 다른 재앙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이었다. 그 폭발 원인이 냉각수 공급 전원이 고장 났기 때문이다.

물에 의해 파괴된 원자력 시설이 물이 공급되지 않아 재난이 확산된 광경은 바로 물의 생산성과 파괴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물은 이용할 수 있어도 길들일 수 없다.’ 10세기 초 일본의 시인 ‘키노 쓰라유키(紀貫之)’가 남긴 말이다. 누구나 한번 음미해볼 만한 구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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