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택배 전쟁’ 입주민 이기심인가, 택배회사 비협조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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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택배 전쟁’ 입주민 이기심인가, 택배회사 비협조 문제인가?
  • 여호수 기자
  • 승인 2021.05.0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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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차량 지상 출입을 반대하는 ‘공원형 아파트’ 입주민과 ‘택배 산’ 쌓은 택배기사들
2.5m 택배 차량 높이에 못 미치는 2.3m 지하 주차장 층고가 원인으로 꼽혀
주민 동의하에 실버 택배와 전동카트, 무인택배함 등 다양한 해결방안 검토해야

[시사매거진275호] 지난 4월 2일,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택배기사와 입주민 사이의 갈등이 화제를 모았다. 아파트 측에서 4월 1일부터 안전사고 및 시설물 훼손을 이유로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지상 출입을 통제했고, 이에 택배기사들이 집 앞 배송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사진_뉴시스)
(사진_뉴시스)

아파트 입주민들은 지하 주차장으로 물건을 배송하거나 단지 바깥에서 손수레를 이용하라고 당부했다. 문제는 택배기사들이 이용하는 택배 차량 대부분이 지하 주차장 층고인 2.3m보다 높아 주차장 진입이 어렵다는 데 있다. 지하로 진입이 불가한데 지상 통행을 제한하는 것은 추가적인 노동력이 발생할 뿐 아니라, 할당된 물량을 시간 안에 배송해야 택배기사의 수익감소로까지 이어진다.

결국 택배기사들은 집 앞 배송을 거부하고 아파트 입구에 택배를 쌓아두는 식의 조치를 취했고, 입주민들은 쌓여있는 택배 더미 속에서 자신의 물건을 찾아 직접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지난 4월 8일에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택배노조는 “택배차의 지상 출입을 허용해달라”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5월부터 단지 앞까지만 물품을 배송하겠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입주민대표회의 측의 입장도 뚜렷하다. 이들은 “애초에 아파트 단지가 지상으로 차량통행이 불가하도록 만들어졌고, 해당 내용을 이미 작년 3월부터 고지해 차량 교체 시간을 충분히 줬다”라며 “인근 아파트 단지 대부분이 지상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왜 우리 아파트만 문제 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4월 14일 택배노조는 배송 거부 시위에 돌입했으나, 일부 주민들의 항의와 택배사 압박 등에 이틀 후 ‘집 앞 배송’을 재개했다. 계속되는 갈등으로 민노총 산하 택배노조는 16일 오후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쟁 전술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한다”며 “아파트 단지 앞에서 무기한 농성과 촛불집회를 벌이겠다”고 선포했다.

이어서 다음날인 17일, 택배노조는 다시 한번 택배 차량의 지상 진입 허용을 요구하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택배사가 해당 아파트 단지 배송에 추가 요금을 받는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위치한 총 5000세대 규모의 아파트는 안전사고 및 시설물 훼손 우려를 이유로 단지 내 지상 차량통행을 금했다. 그러나 택배 차량은 지하 주차장 진입 제한 높이인 2.3m보다 차체가 높아, 지하 주차장을 통한 이동이 불가했고 이에 택배기사들은 4월 14일 단지 입구까지만 물품을 배송했다.(사진_뉴시스)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위치한 총 5000세대 규모의 아파트는 안전사고 및 시설물 훼손 우려를 이유로 단지 내 지상 차량통행을 금했다. 그러나 택배 차량은 지하 주차장 진입 제한 높이인 2.3m보다 차체가 높아, 지하 주차장을 통한 이동이 불가했고 이에 택배기사들은 4월 14일 단지 입구까지만 물품을 배송했다.(사진_뉴시스)

‘차 없는 안전한 단지’를 포기할 수 없는 주민들

이번에 택배 대란이 일어난 고덕동 아파트는 약 5,000세대가 거주하는 대규모 단지다. 주민들의 입장은 다양하지만, 입주민 대다수는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택배 차량 지상 진입을 거부한다’라는 의견이다.

애초에 공원형 아파트에 입주한 이유가 ‘차 없는 단지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입주를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주민은 “아이들이 차량을 피해 다니거나 사고가 날 걱정이 없고, 지상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는 점이 좋아 입주했는데, 택배 차량의 지상 진입을 허용한다면 입주한 의미가 없어진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택배 전쟁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민들도 생겼다. 한 주민은 “택배회사와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택배 차량의 크기를 줄이는 비용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다면 주민들이 십시일반 해서라도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3주가 넘어가는 이 사태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입주 기간이 오래된 또 다른 주민은 “분쟁의 해결점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안은 고려해야 한다. 지상에서 시속 10km로 운행하는 것을 제한으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등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4월 14일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은 해당 아파트 단지 입구에 택배 물품을 내리고, 아파트 단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_뉴시스)
4월 14일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은 해당 아파트 단지 입구에 택배 물품을 내리고, 아파트 단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_뉴시스)

택배노조 측, ‘기타 특수 차량은 허용하면서, 낮은 차량으로 바꾸라는 건 부당’

택배노조 측은 공원형 아파트의 특성상 택배 차량을 이용해야만 원활한 배송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안 그래도 바쁜 업무로 정신없는 가운데, 택배 물량이 몰리기라도 하면 아파트 지상에서 택배를 옮겨 문 앞 배달하는 것은 몇 배 높은 노동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더욱 힘들다.

한 택배기사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 높이가 낮아 택배 차량을 개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비용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적재할 수 있는 공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업무에 차질을 빚게 한다. 결국, 차량 개조를 하지 않고 택배를 배달하려면 단지 입구에 차를 대고 수레로 실어 옮겨야 하는데 하루 수백 개나 되는 택배 물량을 수레로 실어 나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택배기사는 “택배 차량의 높이를 무리하게 줄이면 택배 상하차 시 몸을 자주 굽혀야 해서 몸에 무리가 간다”라고 토로한다. 실제 택배기사들은 하루 평균 300~500개 물량을 상·하차하는 과정에서 비좁은 공간에 몸을 숙여야 한다. 무릎에 굳은살이 잡히기도 하며 허리나 무릎 등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다만, 고덕동 아파트에서는 가전제품을 배송하는 차량에 대해서는 지상 통행을 허가했다. 이삿짐 차량과 가구, 가전제품 배송 차량은 무게와 부피가 크기 때문에 특수 차량으로 분류돼, 단지 내 통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택배노조 측에서는 “다른 특수 차량의 진입은 충분한 안전 운행이 가능하다는 말인데, 택배 차량만 제한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반발했다.

 

비슷한 사례 속의 해결책,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활용해야

‘고덕동 아파트 발 택배 대란’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과거에 거론되었던 실버 택배나 전동카트, 택배 차량의 지정시간 출입, 택배 물품 보관소 도입 등 다양한 해결책을 내세우며 중재에 나섰다.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 실버 택배를 활용해 절충점을 찾았다. 실버 택배는 아파트 단지나 인근에 거주하는 노인 인력을 활용하는 서비스인데, 택배 회사는 아파트 입구의 실버 택배 거점까지만 물품을 배송하고 아파트 내에서는 실버 택배 요원이 주택까지 방문 배송하는 방식이다. 해당 아파트 측은 실버 택배 배송 금액 일부를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아파트가 내고 있다고 밝혔다.

전동카트 도입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세종시 호려울마을 10단지 아파트는 전동카트 구매 등 모든 비용은 아파트가 부담하여 이를 택배기사들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소형택배 차량은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고 대형차량은 골프장 등에서 사용하는 전동카트에 물건을 옮겨 배달하고 있다.

해당 단지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우리도 처음에는 택배 차량 지상 출입이 제한된 입주 초기엔 택배 물품이 경비초소 앞에 쌓이는 문제를 겪었다. 택배기사도 불만이 많았지만, 주민과의 토론 등을 거치면서 함께 만족할 개선책을 도출했다”라며 “아이가 많은 세종시 특성상 안전을 지키면서 택배기사도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았다. 현재까지 민원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울산 남구 옥동의 한 아파트 역시 주민투표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했다. 이들은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지상 출입 시간을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4시간으로 정했으며, 차량 속도도 시속 10㎞ 이내로 제한했다. 공회전 금지를 위해 시동을 끄게 했으며 동 간의 거리가 짧은 특성상 각 동 현관문 입구로 이동하지 않고 가운데 통로에서 정차하게 함으로써 합의점을 도출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울산 사례처럼 택배 차량 지상 진입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낫다”라며 “안전속도를 준수하고 차량에 후방카메라를 부착해 아이들이 오고 가는 걸 확인할 수 있게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해당 사례들에서도 보았듯, 아파트 주민들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와 이에 협조하는 택배기사들의 자세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 될 수 있다. 

4월 15일 고덕동 아파트 단지 내로 택배 물품이 손수레에 실려 들어가고 있다.(사진_뉴시스)
4월 15일 고덕동 아파트 단지 내로 택배 물품이 손수레에 실려 들어가고 있다.(사진_뉴시스)

 

원인은 지하 주차장 층고 높이, 0.2m 차이로 인해 쌓인 ‘택배 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갈등의 주원인은 지하 주차장의 층고 하한선에 있다.

주차장법시행규칙에 따르면 아파트 지하 주차장 층고 하한선은 2.3m이다. 보통 아파트 한 층 높이는 평균 2.2~2.4m 수준으로, 지하 주차장 역시 이러한 기준에 따라 2.3m로 결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택배 차량의 짐칸 높이는 2.5m를 넘기 때문에 지하 출입이 불가능하여, 지상으로 택배 차량을 운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택배 수요가 지금처럼 많지 않던 과거에는 대형화물 차량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드나들 일이 많지 않았을뿐더러, 이전까지는 차량의 지상 통행을 막는 아파트가 없었기 때문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층고 제한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8년 6월 지상 공원형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 높이를 기존 2.3m에서 2.7m 이상으로 높이도록 했다.

문제는 심의과정에서 지상으로 차량 출입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해당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또한, 규정 변경 전 설계 허가를 받은 단지는 2.3m 시공이 가능하다.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공원형 아파트, 진정한 주민 편의와 안전이 무엇인지 고려해야

환경친화적인 주거공간이 인기를 끌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녹지 비율이 높은 지상 공원형 아파트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건설사는 공원을 중심으로 ‘차 없는 안전한 아파트’를 설계했다. 이 과정에서 29.2%에 해당하는 19개 단지는 지하 주차장 높이가 2.7m에 못 미치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 채 ‘택배 차량은 지하로만 다녀야 한다’는 내부 원칙을 세웠다.

19개 단지 중, 5개 단지는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해 택배 노동자들이 저상 차량으로 바꾸거나 손수레로 문 앞 또는 무인택배함까지 배송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7개 단지는 지상 출입을 허용하고 있지만 추후 지하 출입만 허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4월 22일 서울신문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입주했거나 입주 예정인 수도권 1,000가구 이상 민간 분양 아파트 단지 65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하 주차장 높이가 국토교통부 기준처럼 2.7m 이상인 아파트 단지는 7곳(10.7%)에 그쳤다.

지하 주차장 높이가 확인되지 않은 6곳을 제외한 나머지 52곳에서는 언제든지 택배 대란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4월 19일 오전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배달 차량 지상 진입을 전면 금지한 고덕동 아파트 단지 앞에 천막을 설치해 농성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4월 19일 오전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배달 차량 지상 진입을 전면 금지한 고덕동 아파트 단지 앞에 천막을 설치해 농성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택배 분쟁을 야기할 수 있음에도 지하 주차장을 2.3m 높이로 짓는 가장 큰 이유는 시공비 절감 때문이다. 지하 주차장의 층고를 높일수록 시공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공비 절감은 결국 입주민과 택배기사 간의 분쟁 해결을 위한 ‘갈등 비용’이 되어 돌아온다.

‘지상 차량통행 불가’인 점을 보고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에게 특권의식을 버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 반대로 ‘동일 시간 내에 많은 수량을 배송하는 것’이 수입과 직결된 택배기사에게 효율성이 떨어지는 배송방식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계 당시부터 차량이 진입할 수 없게 지어진 것은 사실 양측 누구의 책임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규제가 필수적일 것으로 보인다.

여호수 기자 hosoo-121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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