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반역_제 22장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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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반역_제 22장 갈등
  • 편집국
  • 승인 2020.12.0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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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70호]통제사로부터 서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요. 그렇다면 통제사를 만나 유지를 전한 것은 어떻소? 그건 사실이요?”

선전관 조영은 그것마저 부인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통제영에서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울 수는 없었다.

, 통제사와 만난 일은 있소.”

그럼 문제는 장계의 유무가 아닙니까. 그건 궁 안의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으니 이를 확인하면 될 것입니다.”

망할 놈의 자식! 이라고 좌의정 육두성은 고함을 치고 싶었다. 참는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이번 한 번이다. 기회는 두 번은 없는 것이다. 왕은 이미 그 장계를 폐했다고 했으니 증거는 없다.

장계의 행방을 재검토해보기로 한다. 진정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국청에서 그 장계를 논하지는 않을 것이다.”

 

22장 갈등

비가 내림.

봄비가 그치면 새로운 길을 도모해야 할 것인데...

그녀가 적셔온다.

수표교의 꽃비를 맞으며 여인의 눈물을 향기로 삼았다.

그녀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피의 전선에서 느끼던 감정은 여인의 미소로 녹아버렸다.

하지만 아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절규(絶叫)!

나의 숨이 멈춰진다.

(사야가 김충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1597318일 무신 )

봄비가 내렸다. 세우(細雨)였으나 김충선의 가슴에는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통제사의 장계가 드러난다 하여도 결국 조선의 왕 선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생명의 연장일 뿐 통제사 이순신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그것이 김충선을 괴롭혔다.

선전관 조영이 증언을 했다네. 그런 장계는 없었다고!”

승정원의 구대일로부터 국문의 내용을 전해들은 김충선은 두가지 생각에 골몰하였다. 이대로 모함을 받게 된다면 혁명의 명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원수 권율도 역세혁명(易世革命), 반역에 가담하지 않겠는가? 그도 이순신의 죽음을 방관만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천명했다. 도원수의 변심은 병부의 수장 이항복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되면 두려울 것이 없는 완벽한 성공을 예고한다. 영의정 유성룡! 도원수 권율! 의병대장 곽재우! 김충선의 피가 또 다시 끓어올랐다.

형님과 울, 정종사관님은 통제영으로 내려 가셔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세요! 언제든지 삼도수군을 동원할 수 있도록 준비 하시고, 이분 형에게는 명나라를 설득할 문서를 작성하라 하십시오.”

이분은 이순신의 큰 형 이희신의 둘째 아들로 외교통이었다. 여진과 왜의 언어에도 능통했고 무엇보다도 명나라와의 소통에 능숙하였다.

그리 전하지!”

김충선은 그들을 통제영으로 내려 보내며 다시 강조했다.

장군을 추종하는 전 장수들을 단속하고, 거사가 시작되면 제일 우선으로 통제사의 뒤를 이은 원균장군과 그 부하들을 장악해야 할 것입니다.”

정경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통제사님의 명령만 떨어진다면 나를 비롯한 통제영의 만호들과 군관, 첨사들이 모조리 궐기할 것이요!”

울아, 형님들을 모시고 내려가라. 그리고 넌 도중에 승병장 삼혜스님을 미리 뵙는 게 좋을 듯하구나.”

그러지!”

그리고 그들은 김충선에게 작별을 고하고 서둘러 한산도 통제영으로 떠나갔다. 김충선은 이들의 행적에 대해서 권율과 곽재우 등에게 일단 함구하고 장예지와 함께 거리로 나왔다. 여러 가지 경우의 예측이 사야가 김충선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이순신을 살릴 수 있는 다른 하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사라진 장계를 추적하는 것이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인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불편해 보이십니다.”

빗물이 떨어지는 청계천변을 거닐며 장예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녀의 해맑은 목소리였다. 만일 오늘과 같은 시기가 아니었다면 김충선은 마음이 크게 동요했을 것이다.

그래요. 답답합니다.”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스승님의 가슴에서 분탕질 하는 그 마음을!”

김충선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따르던 장예지의 발걸음도 자연 느려졌다. 그녀의 손짓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봄꽃들에 향했다.

스승님, 봄비에 꽃이 촉촉합니다. 그리고 내일 날이 맑으면 그 향기와 아름다움이 더욱 화사하게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봄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봄비라는 것이구려.”

이 비가 스승님의 열화를 잠시나마 식혀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무 초조해 하지 마십시오. 다시 맑은 바람이 불고 밝은 햇살이 떠오를 것입니다.”

장예지의 조용한 충고는 마치 바다에 스며드는 석양처럼 부드럽고 강렬했다. 김충선은 순간 당혹감마저 들었다.

내가 급했구나. 서둘렀구나!’

장예지는 수표교를 건너다 말고 초롱초롱한 눈망울 반짝이며 김충선을 살펴보았다.

통제사를 구원하시고 싶은 게 아니신지요?”

그렇소.”

서장의 존재를 현재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찾아내야만 하는 게 아닙니까? 혹여 짐작 가는 곳이라도...?”

김충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모르오. 하지만 왕의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소.”

상감마마가 은닉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왕은 통제사를 제거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해를 획책해 왔소.”

장예지는 갑자기 맥이 빨라지고 호흡이 곤란해졌다. 익호장군 김덕령의 사고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는 조선의 왕 선조에 의해서 억울하게 죽어갔다.

그때와는 다를 것이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상대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통제사를 쉽게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승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난 어떤 식으로든지 장군을 구해낼 것이요. 그래야만 왜적에게 승산 있는 조선이 될 것이니까!”

웃었다. 장예지는 봄꽃과 봄비 아래 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미소를 보내줬다. 이 웃음은 실로 찬란하기까지 했다. 우울하고 답답했던 김충선의 무거운 생각을 일시에 날려 보냈다.

예지아씨의 미소를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소.”

누구에게도 웃음을 줄 수 없을 줄 알았어요.”

장예지 역시도 이렇게 홀가분한 웃음을 지어본 것은 김덕령이 죽은 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웃음 뒤에 찾아오는 뜨거움은 차마 설명할 수가 없는 야릇한 느낌이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귓불을 빨갛게 달아오르게 하였다.

매우 미안하고 비통했소. 내 스스로 원망스러웠소.”

문득 김충선이 지나간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익호장군 김덕령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들었어요. 도련님을 구했으나, 도련님 스스로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그는 충분히 살 수가 있었소. 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화를 자초했소. 난 그런 덕령 형을 이해하지 못했소. 그런데...... 이번 경우도 그와 같은 느낌을 받고 있소. 통제사는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으려 하오.”

장예지는 돌발적으로 고백했다.

스승님을 그리워했습니다. 간절히 뵙고자 소망했습니다.”

김충선은 그녀의 돌연한 고백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그게......”

저는 그러 하였는데 스승님은 어떠셨는지요?”

김충선은 그녀의 방심이 담뿍 담겨있는 눈망울을 마주 하자 그만 심기가 산란할 지경이었다. 더 이상의 감정을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솔직히 달려가고 싶었소!”

김충선의 솔직한 대답을 들으며 장예지는 또박또박 글을 새기듯 그의 가슴에 화인처럼 각인 시켰다.

그 마음입니다. 통제사의 마음이 그 마음이고, 홍의장군이며 도원수, 영의정의 마음이 그 마음입니다. 그들은 스승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불꽃이 터졌다. 김충선의 뇌리에서 용암의 분출이 단계적으로 폭발되었다. 어둠을 가르고 치솟아 오르는 태양의 선명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들도 그랬던가?

진정으로 원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세상에는 존재 하는 법이지요!”

그래서 자신도 장예지를 선뜻 찾아 나서지 못했었다. 두려움은 아니었다. 배려였을까? 상대의 아픔에 대한 이해였든가? 아니면 관습이었을까? 김충선은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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