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경 꽃누르미 명인, ‘미래비전 제시하는 한국 공예계 선각자 될 터’

많은 꽃들도 개체대로라면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고, 단 한 번 피었다 지는 일생이다. 그래서 창작을 통해 탄생하는 꽃누르미 작품도 단 하나밖에 없다는 희소성을 가져서 매우 귀하다.

[시사매거진268호] 21세기는 대한민국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시기다. 경제성장도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생태학이나 의생학에 대한 연구도 처음 재개된 때이다. 특히 미국의 사상가이며 문학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수상집 <월든>을 통해 현시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람 중 하나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후 세속을 떠나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과 교감하며 소박하고 단순한 삶은 영위했다. 그러한 선각자적 삶을 따라 전 세계적으로 생태학에 대한 연구와 대안적 삶에 대한 공감이 켜지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연과 벗하며 자연이 가진 힘과 위로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정서적 지지를 해주는 꽃누르미(押花) 명인이 있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경기광주 화담숲 근처인 도척면에서 <백향꽃누르미갤러리>를 운영하며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는 백미경(白美京·56) 명인이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의 꽃누르미 명인으로서 자연에 대한 사랑과 겸허함을 배우는 가운데 사람과 자연이 서로 소통함으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전달하고자 한다.

한국 최초로 꽃누르미(압화) 명인에 등극한 백미경 작가.(사진_최주일 사진작가)   

백향 백미경 명인의 자연 사랑과 꽃누르미 입문기

백향(白香) 백미경(55·白美京) 명인은 1965101일 경북 김천에서 11녀 고명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그녀의 아버지는 미국의 헨리 소로우와 같이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이 준 커다란 혜택에 깊이 감사하면 마음이 진정 부유한 사람이 되어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해 보이셨다.

그러한 가르침에 따라 고향 사랑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체득하며 자란 백미경 명인은 그곳 김천을 아버지의 품과 같이 인지하며 항상 그리움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어느 곳에 있든 마음은 항상 고향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결혼과 함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로 이사를 오게 된 백미경 명인은 우연히 수원동성뉴코아백화점(현 폐점)’을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액자 속에 든 한 송이 붉은 백일홍을 보고 큰 감흥에 젖게 된다.

고향 마당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그 백일홍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풍요롭던 김천에 대한 추억으로 오버랩 되며 가슴을 물들였다. 그리고 평소 즐겨 읽던 이해인 수녀의 <백일홍 편지>처럼,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모든 만남은 생각보다 짧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 부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처음 보아도 낯설지 않은 고향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백일홍. 살아 있는 동안은 많이 웃고 행복해지라는 말도 늘 잊고 살면서......’ 울림이 되었다.

처음엔 정물화 그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시관 큐레이터가 진짜 꽃, 생화를 말려서 창작한 공예품이라고 알려주었어요. 문화적 충격을 느꼈죠. 한참 정지한 듯 서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제게 한 번 배워보라고 권하더라고요. 그때가 19983월경이었을 거예요. 기억 속에 잊고 있던 자연의 위로와 치유는 물론 풍요와 혜택, 경외심과 감사함이 되살아나며 현대에 맞게 재현할 수 있는 꽃누르미 작가 입문의 계기가 되었죠.”

자연을 모티브로 하여 실제 생화를 말려서 작업하다 보니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 탄생한다.

백의민족 민초의 향기를 뜻하는 백향(白香)’의 삶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그 집과 과수원을 제가 가지고 있어요. 어릴 적 추억이 많은 곳이죠.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그곳에 살았던 것이 굉장히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 꽃누르미 작업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죠. 대도시에 사는 것보다 그곳에서 살았던 경험 덕분에 보는 눈이 남다르다고 느낍니다. 시골에 살았던 경험과 체득이 정서적으로 제 안에 창작혼()을 불러일으키죠. 식물과 자연, 꽃과 풀, 나무와 풍경이 제게 영감을 주어 작품의 깊이를 더하게 합니다. 자연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돼주어 제 생애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백미경 명인은 199810월경 한국문화센터에서 본격적으로 강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그리고 수강생들에게 열정적으로 작품 지도를 하던 어느 날, 수원남문뉴코아백화점(중부대로 34본길15 소재)으로부터 꽃누르미(押花)’ 개인매장을 개설하고 수강생을 지도하는 것과 더불어 작품을 판매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의를 받게 된다. 뉴코아백화점 영업부장이 찾아와 입점과 더불어 판매와 교습을 병행해보라는 권고였다. 1999년도 10월경의 일이다.

제가 작품을 만들어 판매할 당시에는 주로 스탠드(전등) 외 생활 소품들이 자주 거래되었어요. 유화가 아니라 천연식물이다 보니 생화를 말려서 창작한 작품이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어요. 그전에는 외국의 송이가 크고 선명한 색깔의 꽃을 선호했지만 우리나라 경제 수준이 향상되고 선진국이 되면서 수수하고 잔잔하며 정겨운 토종의 들꽃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꽃누르미 작품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동양화의 여백과 정서를 느낄 수 있다나요? 현대인의 문화생활 트렌드가 바뀌기 시작하며 삶의 휴식을 거기서 찾으려는 거죠.”

그런 그녀는 백향(白香)’이라는 애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나타내는 흰백()자와 향기향() 자를 써서 백의민족 한국인의 향기라는 뜻을 표방한다. 또한 우리민족 들꽃인 민초들의 향기라는 뜻도 있고, 백미경의 성씨 백()자를 의미하는 뜻도 넣었다. 무엇보다 명인의 아버지가 그녀를 귀애한 것처럼 부성애를 담아 사랑스런 향기를 전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꽃을 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생활 속에 힐링도 하고, 개인마다 가진 어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죠. 꽃을 보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눈으로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죠.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을 보면 발걸음을 멈추고 서게 되죠. 고독하고 힘들었던 사람들도 꽃을 보며 위로를 받고, 스스로 치유하거나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자연의 힘이고 은혜가 아닐까요?”

화담숲 있는 경기광주 도척면 백향꽃누르미갤러리정주

백향 백미경 명인은 처음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에서 <가람꽃누르미공방>을 시작했다. 강이 흘러가는 것이 좋아서였다. 수원남문뉴코아백화점 매장을 철수하고 난 후 본격적으로 공예작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048월경 <백향꽃누르미공방>으로 개칭해 작품 활동을 전개하면서 대한민국 미술대상전 압화 부분 최우수상(2006)을 수상했고 이어 대한민국 압화공모전 디자인부분 최우수상(2006)을 수상했다. 또한 대한민국 야생화공모전 압화예술공모전 우수상(2006)과 더불어 고양시 세계 압화공예대전 우수상(2007)을 석권한다.

그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경기광주 오포읍 양벌리에서 활동을 하다가 그해 8월에는 아예 터를 잡고 작품 활동에 전념할 생각으로 이곳 경기광주 도척면 얼음골길에 정주하게 된다. 당시 대한민국예술총연합회(이하 한국예총)으로부터 꽃누르미 명인으로 추대(2014)되어 더욱 좋은 작품 천착이 필요했다.

“20148월에 이곳 도척면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평소 광주시 농업기술센터에 강의를 다니다가 인연이 되었죠. 곤지암을 아우르는 노고봉 계곡과 화담숲이 위치해 있고, 산벚나무가 자라는 천연림은 물론 백합, 미나리아재비, 천남성 등 자생식물과 함께 멧돼지, 고라니, 다람쥐, 뻐꾸기, 박새 등과 원앙, 토종 거북이인 남생이, 반딧불이 등이 서식하고 있어 매력적인 곳이죠. 무엇보다 조용하고, 산세가 좋아 이곳에 공방을 열기로 결정했어요.”

그런 백미경 명인은 홍익대 미술대학원 현대미술을 수료한 후 전)한국 꽃누르미협회 부이사장을 거쳐 현 백향꽃누르미협회 회장과 ()아시아 민족조형학회 이사, 미술과 비평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게 되었다. 아울러 대한민국 문화경영대상 우수예술인(2016)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꽃누르미 명사가 되었다. 무엇보다 올 20207월에는 <대한민국 신지식인> 35기 문화예술체육부문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현재는 경기대학교 평생학습원 꽃누르미 가을학기 강좌를 도맡아 교수로 출강 중이다.

백미경 명인은 올 2020109, 대학로 혜화아트센터에서 개최될 <따로 또 같이>라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11관은 꽃누르미 작가 12명이 참여해 60여 점을 선보이는 한국백향꽃누르미협회전이고, 2관은 액자와 액세서리 외 생활소품 그리고 가구까지 곁들인 50여 점의 백미경 명인 개인전이다.

처음 공예를 시작하던 23년 전 당시에는, 꽃누르미(押花)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중이 많이 찾고 애호하는 공예가 되었어요. 자연을 모티브로 하여 실제 생화를 말려서 작업하다 보니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 탄생하죠. 많은 꽃들도 개체대로라면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고, 단 한 번 피었다 지는 일생이죠. 그래서 창작을 통해 탄생하는 꽃누르미 작품도 단 하나밖에 없다는 희소성을 가져서 매우 귀합니다.”

또한 유럽의 귀족사회를 거쳐 일본에 전래된 압화(押花)’가 한국에서는 꽃누르미로 부릅니다. 전통 공예가 아니라 물 건너 전래된 외래 공예인 거죠. 거기다가 생화가 아니라 꽃을 말려서 만드는 가공이다 보니 앞으로 우리 나름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수정해나가야 할 과제가 산재해 있습니다. 제가 대한민국 최초의 꽃누르미 명인이다 보니 책임감과 더불어 커다란 자부심을 안고 있습니다. 숙제도 있죠. 정책적으로는 공예품에 적용되는 과세를 비과세로 전환해야 하고, 현재 출강 중인 경기대처럼 전국 각 대학에서 신설학과로 자리 잡아 새로운 공예작가를 배출해야 한다는 교육적 목표와 대안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취미와 적성에서 진일보해서 이제는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거죠. 이를 위해 준비와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고 들려준다.

백미경 명인의 애제자인 좌측 최수연 작가와 우측의 안현옥, 허지현 작가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사진_최주일 사진작가)

백미경 명인과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친환경의 시대.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는 가운데 자연의 혜택을 받고 누리는 친환경의 시대. 찾아보면 자연은 의외로 우리 가까이 있고 꽃과 나무, 풀 등을 비롯해 동물과 곤충의 생명을 사랑하다보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나 감사함도 커지게 된다. 다른 생명에 대해 사랑하는 방법이 백미경 명인의 창작세계에 투영돼 있어 그의 작품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는 영혼을 울리는 자연 사랑의 마음이 풍경 속에 생명의 환희가 되고, 또 그 환희가 사람들의 자정능력이 되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감싸고 아름답게 승화시킵니다. 꽃이 주는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끼며 살면,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위로와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고 전한다.

안수지 사회부기자 asj2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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