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레드 슈즈" 공연을 앞두고
무관중 영상공연 네이버TV (9월5일 토요일 오후 3시)

작곡가 전예은, 뉴욕의 어느 루프탑에서 (사진=전예은 페이스북)

[시사매거진=강창호 기자]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공존하고 있다. 특히 도심 한가운데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들은 느리고 빠른 템포들과 섞여 총천연색의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한다. 작곡가 전예은은 이러한 도시들의 다양한 소리들을 소재로 2013년엔 뉴욕을 배경으로 한 ‘얼반 폴리포니(Urban Polyphony)’를, 2017년에는 서울시향의 위촉으로 ‘도시 교향곡(Urban Symphony)’을 발표했다. 이렇게 도시를 하나하나 점령해가는 그가 이번에는 국립오페라단과의 첫 작품으로 청중을 만난다. 그것이 바로 잔혹동화 <레드 슈즈>이다.

작곡가 전예은 (사진=국립오페라단)

레드 슈즈가 나오기까지 에피소드?

2016년에 아르코 창작 아카데미 3기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아르코 측에서 오페라 작곡을 제안하셔서 작업을 했는데, 대본에 작곡가가 직접 참여하는 것까지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빨간 구두’였고 이듬해 1월에 쇼케이스로 무대에 올렸지요. 지금의 <레드 슈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국립오페라단에서 한국창작오페라 프로젝트로 위촉해 주셔서 이렇게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원작 ‘빨간 구두’ 에서는 보수적인 사회 내에서 욕망을 표출 한 대가로 한 개인이 파멸에 이르는 결과를 보여 주며, 욕망이란 부정적인 것임을 암시한다. 오페라 '레드 슈즈' 연습컷 (사진=국립오페라단)

이번 작품은 어떤 스타일의 오페라?

큰 규모의 오페라보다는 음악극에 가깝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오페라 <캔디드(candide)>는 오페레타와 뮤지컬을 반반씩 닮고 있는 작품이지만 오히려 뮤지컬로도 더 유명하잖아요? 12음기법, 탱고, 왈츠 등 흥미로운 음악적인 요소들이 다양하면서 극의 진행속도 또한 빠르고 재미있게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캔디드를 보면서 평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음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습니다. ‘현대음악’도 복잡하고 어려운 게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소리로 들려주는 음악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청중들이 제 음악을 듣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라는 느낌을 가지길 바라며 작업에 임했습니다. ‘현대음악’이란 게 곧 우리의 삶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자 음악으로 표현한 언어라고나 할까요?

오페라 ‘레드 슈즈’ 역시 ‘컬러 없는 도시’의 ‘컬러 잃은 사람들’이라는 가사처럼, 개성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색채 없는 도시가 배경이다. 오페라 '레드 슈즈' 연습컷 (사진=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레드 슈즈>는 어떤 내용?

어른들의 마음에 자그마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어른을 위한 음악 동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동화를 오페라화 한 작품들 중에는 그림형제의 <헨젤과 그레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소재로 한 드보르작의 <루살카(Rusalka)>와 같은 작품들이 있지요.

이 같은 작품들은 교훈적인 내용과 해피 엔딩, 혹은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기존의 작품들보다 극의 색채가 더 짙으며, 더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를 모티브로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어린 시절 레드 슈즈를 신고 사람들을 홀리고 다닌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쫓겨났던 마담 슈즈는... (사진=국립오페라단)

대략의 스토리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한 소녀가 어느 날 갖게 된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추다가 결국엔 다리를 잘라내고 경건한 삶을 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동화 ‘빨간 구두’의 원작이 가지고 있는 미스터리한 내용과 환상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되, 여기에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빨간 구두에 얽힌 그들 간의 갈등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나 빨간 구두로 유혹하는 마담 슈즈 사이에서 갈등하는 카렌. 오페라 '레드 슈즈' 연습컷 (사진=국립오페라단)

특별한 아리아가 있는가?

“우리의 기억, 남아있는 잔상, 그리고 우리가 들었던 소리의 잔향이 없다면 모든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라고 말한 현대전자음악의 아이콘인 로버트 헨케(Robert Henke)의 말처럼 극이 끝나고도 긴 여운을 가져다주는 아리아의 존재는 너무나 중요하죠. 이처럼 작곡가로서 귀와 가슴에 남는 아리아를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 <레드 슈즈>엔 특별히 정성을 들인 아리아가 있습니다. 드뷔시의 ‘달빛’을 가져와 색다르게 쓴 곡인데, ‘달빛 아래 네 연인’이라는 합창곡입니다. 오래 기억에 남는 아리아로 관객들에게 닿았으면 하는데, 드뷔시의 힘을 빌어서 분명 그렇게 되리라 생각해요.(웃음)

빨간 구두는 과연 동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 모두 각자의 ‘빨간 구두’ 하나씩을 마음 속 깊은 곳에 품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오페라 '레드 슈즈' 연습컷 (사진=국립오페라단)

향후 계획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히사이시 조(Hisaishi Joe)의 애니메이션 음악들을 접하고 작곡을 해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결국 작곡을 전공하게 되었고 6년간의 미국 유학을 마친 후, 현재까지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 활동으로는 우선 위촉곡 발표 계획이 있는데, 2021년 5월 초, LA에서 진은숙 선생님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는 ‘서울 페스티벌’에서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클라라 주미 강)이 연주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어떤 작품이든 "청중들이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현대음악을 만들고 싶다"라는 초심을 잊지 않고, 창작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저의 꿈이자 바람입니다.

작곡가 전예은 (사진=전예은 페이스북)

인터뷰를 마치고…

루이스 캐럴과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들의 작품들을 좋아하며, 영화 인셉션과 메멘토 등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들과 프랑스 예술영화 등에서 때때로 영감을 받는다는 작곡가 전예은. 그의 번뜩이는 음악적 재치와 상상력이 더해진 안데르센의 동화 <레드 슈즈>는 꿈틀꿈틀 살아있는 이야기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으로 기대된다. 비록 코로나(COVID-19)로 모두가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힘든 시기에 있지만, 현장 무대가 아닌 무관중 공연의 생방송 영상으로나마 이 작품을 만난다는 것에 감사하다. 다 같이 마음에 ‘레드 슈즈’를 신고 본방사수는 어떨까?

(사진=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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