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예술을 꽃피우는 조그만 완성의 마침표를 준비해 늘 푸르게 펼쳐지는 지역문화가 꽃피어나기를 희망합니다”

[시사매거진=차홍규 교수] 박대진 시인과의 만남은 국회에서 열린 온새미로 시동인그룹 시화전과 필자의 개인 초대전을 함께 콜라보 전시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당시 온새미로 시동인 그룹 회장이었던 박시인의 시에서 풍기는 진한 향토색에 관심이 가다보니 그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그와 대화를 나누며 요란하지 않게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위해 일하는 모습을 접하며, 이해타산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각박한 세상에 참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더욱 마음까지 통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나타내지 않는 과묵한 성격으로 현세의 사람 같지 않는 그의 사상이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너무 진도를 나간 것일까?

박대진 향토시인은 스스로를 나타내지 않는 과묵한 성격으로 현세의 사람 같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나 박대진은 향토문인이다! 나는 여전히 향토문화예술인이라는 점잖은 작은 굴레를 씌운다.

왜일까? 어려서부터 학교수업 시간 선생님의 질문에 자신감 있게 손들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마음속으로는 확실한 답을 외치고는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고 지목 받으면 마지못해 주섬주섬 대답을 했던.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짜잘함이 가득했던 태생적 촌놈으로 살았던 환경 탓이었던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감 결여이고 더욱 지역에 한거(閑居)하는데 나설 데가 별로 없다. 혹은 나대지 말자라는 어쭙잖은 자기 철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늦깎이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치열하지는 못했다. 이름하여 자기만족에 젖는 변두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고는 하였지만 생각해보면 모두 핑계이었던 셈이다.

성실한 인간이고자 함은 만인의 의지일터이고, 부의 축적이나 사회적 완성은 모든 이의 지향일 터이지만, 나름의 그릇됨이 각자 다르기 때문 일거라느니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벼슬이 되는 희끄무레한 시점에서 터득되어진 관조(觀照)라는 말로 위안을 받으면서도, 속으로만 충실해지는 나름 옹고집들이 뭉쳐 심중에는 단단히 박혀 있는 옹이 하나를 분신처럼 끌어 앉고 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자신을 뜯어 헤쳐 보면 비겁하지 않기 위해 꽤나 열심히 살았는데 자랑스러울 것 하나도 없는 무관(無官)의 자연인으로 타인의 눈에는 어설프기 그지없는 모양새 일 것이다.

결혼하는 딸아이에게 해줄 말을 찾다가 이 아버지는 너희를 위해 해준 것, 모아준 것은 없지만 너희들에게 정의를 심어주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어설픈 변명이고 자기항변이 아니겠는가? 늘 어설픔을 달고 사는 삶이다.

필자와 인터뷰 중인 박대진 향토시인. 그는 인터뷰에서 지역 예술인들을 위로하는 물방울이 모여서 작은 물줄기가 되고 그 흐름으로 향토문화예술로 이바지함으로서 결국에는 나라와 민족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자원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문화예술과 관련하여 활동도 많이 하는데 자랑을 부탁드린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서 발행하는 종합월간지 <예술세계>2000년도 초반부터 약 8년간 민속기행을 주제로 칼럼니스트 활동하면서 시군 단위로 남한 전 지역을 여행하며 돌아보았다. 여행길을 거듭하면서 무심했던 인문과 역사지리에 대해 애면글면하며 스스로를 깨웠다. 그러면서 화성지역의 향토역사 인문학에 눈뜨게 되고 그 속을 비교하며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좌충우돌 닥치는 대로 화성지역의 향토사를 읽고 썼다. 그리고 어설픈 <화성향토역사문화연구소>를 구성하고 화성시 사회단체에서 요청하는 대로 향토지역사에 관한 안내활동과 칼럼을 제공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았음에도 당연한 것처럼 마치,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김정호 선생 또한, 환영받지 못하지만 필요할 터이니 그리하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냥 해야 한다는 것이 자기 정의요. 자기 필요성이었을 것이라면 무리 있을지 모르겠으나 생각해보면 전국을 밟아보며 깨닫는 자아 발견의 시간이었다.

전국 각지에 숨겨진 특별한 이야기이거나 또는 비경을 밟아가며 한 조각 한 조각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어설픈 행복감도 누려 보았다. 이 땅의 민초들이 누대로 씨 뿌려온 한숨 같은 추구와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나 둘씩 찾아 맞추어가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면서 당당했던 시기였다. 2017년 화성지역 문화예술단체의 추천으로 화성시문화상’ <문화예술진흥부분>을 수상했다. 자랑스러움은 아니기에 가족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언제라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왠지 가족들에겐 돌봄 책임을 다한 아버지가 아니라 개인적인 일에 충실한 지극히 게으른 아비였을 뿐이란 생각이 뇌리를 맴돈다.

그러나 나름 최선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20205월 화성시 평생학습관에서 주관하는 4060화성인생학교-라이브 강좌 화성 공간기록 해설사양성교육과정 강사로서, 화성시의 숨겨진 향토문화와 역사의 숨결을 널리 알리는데 보다 큰 화성지역의 공간을 채워 넣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이 매우 기대가 된다.

중앙 사()에 묻혀 알려지지 않은 화성지역의 역사, 화성인의 고결한 숨결 정신, 그 한 올, 한 올의 가치와 역사문화들을 화성시민들과 함께 발걸음 하여 알려나가리라. 이 암울한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고난의 시기에 펼쳐내는 화성시의 새로운 발걸음에 동참하여 새로운 동력을 충전하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다.


청소년관련 비영리 법인 활동도 하던데

‘()좋은친구들이라는 청소년육성지원 법인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8년 경 ()좋은친구들과 인연이 닿았다. 학교 밖 청소년들의 대안학교에서 <예술 감성> 과목을 담당하면서 이 세상이 온통 답답하다던 청소년들과 어울려 같이 답답함을 바라보는 일을 하게 되면서다. 조금씩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고, 나의 암울했던 청소년기 또한 그러했기에 모든 것을 낮추고 지우려했던 기억들을 그들에게도 실어놓고선 함께 동병상린의 마음으로 함께 추구할 수 있었다. 정 들면 고향이라던가? 그 인연을 지금도 놓지 않고 상황 펼쳐지는 대로 청소년들과 어깨를 함께하며 일을 해오고 있다. 그로인해 비영리 청소년법인 단체의 이사직을 맡아 미래의 우리나라를 짊어질 도량들을 육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12년 화성지역의 청소년들을 모두기 위해 ()좋은 친구들 화성지부라는 둥지를 조직했고 공동지부장으로 10여년 활동하면서 청소년들을 이해하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다. 때로는 그들로 인해 삐치기도 하고 골 부려대면서도 늘 그들과 선한 다툼을 이어오고 있다.

청소년들과 틈을 메우지 못함이 아쉽지만 짬나는 대로 그들이 받아들이는 대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향토문화예술성을 욕심 것 강조하고 받아들이기를 강요하기도 한다. 역사와 향토문화를 알게 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애향의식과 인문가치관을 돋우는 인성강화를, 예술 감성을 통해 청소년들의 창의 지성과 인성순화를 이끌어주고 싶음이다.

소년 그들이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엔 현재의 각광받는 직업인 판·검사니, ·약사, 회계사 등 대부분의 자 직업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하니 보다 창의 로운 예술 관련을 매개로 대중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는, 더욱 여유로워지는 개인들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자신의 행복을 배가할 수 있는 대안 관건으로 창의감성을 토대로 미래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마음의 눈, 심미안을 키워주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

비영리 청소년법인 단체의 이사직을 맡아 미래의 우리나라를 짊어질 도량들을 육성하는 일을 하고 있는 박대진 향토시인은 역사와 향토문화를 알게 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애향의식과 인문가치관을 돋우는 인성강화를, 예술 감성을 통해 청소년들의 창의 지성과 인성순화를 이끌어주고 싶다고 했다.

비영리법인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비영리법인을 운영하면서 많은 회의에 젖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빈번히 매스컴에 오르는 공익법인이나 종교단체들이 내놓고 대행 기부봉사를 표방하는 모금후원 광고를 한다든지, 기부후원금을 방만하게 사용하여 지탄 받을 때는 내게도 의혹의 눈총을 던지는 한마디가 아프게 한다. 기부후원금으로 개인치부를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일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술 한 잔 사라는 말도 가볍게 던진다. 이는 비영리법인의 씁쓸함이다.

이로 인해 ()좋은친구들은 적극적으로 후원과 기부를 권하지 않는다. 우리 비영리법인의 취지에 동참하는 분들에게만 내용을 설명하고 동감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참여를 당부한다. 또한 최소한의 경비만을 기부 모금하도록 하며, 비 급여 봉사직원제로 투명하게 운영하며, 열악하지만 참여봉사의 선명성을 표방하며 운영을 한다. 때로는 왜 의혹을 자처하는 이 일을 왜 하는가? 스스로에게 자문도 한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해야 하기에, 그 누가 나의 일을 빼앗아 가지 않으니,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 또는 그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그냥 그렇게 가고 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예술인의 자세는

지역문인들은 자칭 타칭 실력도 없어 보이고 돋보이지 않는다. 전체 무리 중에 10% 내외의 유명 인사를 떠받드는 그들이 있기에 우듬지에 올라탄 그들의 명성을 더욱 돋보이고 우러르게 작용하는 무릇 언저리들인 셈이다. 지역문화예술 단체라는 게 알다시피 재정지원이나 활동무대가 매우 열악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열심히들 노릇하는 무리도 있다. 더러는 자포자기를 하겠지만, 자신을 갈고 닦아 나아가는 참신한 신예들도 있고 몸부림치다가 더러는 자기 안주에 그치는 예술인도 있다. 결국은 지역문화예술 단체나 그 회원들은 자기 열망에 갇힌 몸부림으로 상처 받고 때로는 다소나마 스스로의 위안을 얻는 자가발전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그 누구도 치유해 줄 수 없는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외로움을 감싸않아 주지 않는다고 탓하지는 않겠다. 지역 예술인들을 위로하는 물방울이 모여서 작은 물줄기가 되고 그 흐름으로 향토문화예술로 이바지함으로서 결국에는 나라와 민족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자원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기초문화예술인들과 지역단체들이 노력과 역할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류문화가 존재할 것인가를 묻고 싶다. 반딧불이 한 마리가 빛을 내어 모두의 감탄과 감동을 줄 수 있을 터인가? 라는 물음을 이기적 유명작가에게 묻는 것이다. 스스로의 작은 빛이 무리를 이루고 이루었을 때 세상을 비추고 이끌 수 있음이 아닌가라고, 그 누구 한사람의 노력 결실과 우쭐함이 아니라 우리민족 대대로 이어받은 문화근성이 현재시점에 발화하여 한류라는 꽃이 피었음을 말하고 싶었다.

엘리트들이여! 우쭐대지 마라. 당신들이 밟고 선 그들이 당신의 모태이니라!’

약 8년간 ‘민속기행’을 주제로 칼럼니스트 활동하면서 시군 단위로 남한 전 지역을 여행하며 돌아본 박대진 향토시인은 여행길을 거듭하면서 무심했던 인문과 역사지리에 대해 애면글면하며 스스로를 깨웠다. 그러면서 화성지역의 향토역사 인문학에 눈뜨게 되고 그 속을 비교하며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 그럼 추진 중인 활동이 있다면

지역예술인들이 참여하는 사회복지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지역예술인들의 예술창작활동 역량 증대는 물론, 회원들의 권익과 향토지역에 대한 문화예술 봉사활동을 보장하는 둥지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지인들과 머리를 맞대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예로, 화성 향남지역에 향기 나는 화성인문학이라는 동아리를 구성했다. 매월 1~2회 토요일 오후 7, 예술문화 카페 <아르모니아>에서 생활인문학을 주제로 예술가이거나, 노동·권익·농민·역사·문화 등등 다양한 사회분야의 중앙인사거나 지역 활동가들을 초빙해 강연을 청하여 대담 토론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참여를 원하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참여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서로 부담 없이 토론하고 차와 음료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의 생각을 보듬어 소통하고 서로를 존중할 때 더욱 커져 긍정하는 아름다움을... 아직은 지역적 한계에 머물지만, 시간을 거듭하며 나름의 재미를 더하고 있어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소박해서 더욱 소중한 청소년들과 함께하며, 화성지역의 사람들이 나누면서, 향토문화예술을 꽃피우는 조그만 완성의 마침표를 준비라도 할 수만 있다면, 그 꼬리 보이는데 까지 쫒아가 보려고 한다. 더불어, 청소년들을 모두는 창의의 보금자리를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지역이라는 환경적 목마름 소외층이거나, 보통의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는 더욱 아름다운 생각을 가꾸고자 하는 일이다. 그래서 더불어 늘 푸르게 펼쳐지는 지역문화가 꽃피어나기를 희망한다.

 

필자 차홍규

서울과기대 학사, 홍대 미술학석사, 동신대 공학박사
기능올림픽 심사위원, 서울국제평회미술제 심사위원장
88올림픽 기념 공모 작품전 서울시장상 및, 장관상 등 다수
개인전 54회 및 미주, 유럽 등 단체전 300여 회
한중수교 20주년 기념작가 (한국, 중국 유일 작가)
중국 북경 칭화대학 미술대 교수 정년퇴임
, 한국 조형예술원 석좌교수, 한중미술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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