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소애 작가

서양화가 김소애 작가

[시사매거진=신혜영 기자] 삶은 느리고 희망은 강렬하며,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추억과 아픔의 미라보 다리를 떠난 아폴리네르처럼,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의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고 한다. 다섯 차례에 걸쳐 캔버스 위에서 수리재를 호흡하며 노래한 서양화가 김소애 작가는 올 초 예고한 대로 수리재를 마음에서 떠나 보내는 마지막 인사, ‘안녕, 수리재테마의 개인전을 10월 개최했다. 홀로 남겨진 장소에서 오히려 삼원색으로 강렬한 희망을 그려 냈듯이, 김 작가가 두고 온 수리재는 화폭 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계절갈이를 하는 중이다. 그렇게 다른 누군가에게 수리재의 일곱 가지 사계를 건네 준 김 작가는, 이제 그림동료들과 바다 건너 유럽에서 새로운 마음의 고향을 둘러 볼 계획으로 여행 가방을 꺼내 새로운 풍경이 있는 장소로 향한다.
 

고적한 밤이 지나면 청명한 새벽의 동이 트는, 수리재의 삼원색 추억을 고이 접어두고

지난 109일부터 15일까지 인사동 M갤러리에서 개최된 개인전 <안녕, 수리재>를 성황리에 끝내며, 수리재와의 여섯 번에 걸친 만남이라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 서양화가 김소애 작가의 표정은 한결 밝았다.

떠나기 전 굳이 다시 찾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7년간 머물던 청평 수리재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구석구석 남긴 뒤, 수리재 스톤하우스의 넓은 작업실을 양도하고 분당 정자동의 작은 오피스텔에 입주한 김 작가는 수리재와의 이별의 편지를 캔버스 위에 그려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 작가가 처음 수리재에 도착해 느낀 고적한 밤의 두려움이 어느덧 햇살처럼 활기찬 아침의 에너지로 바뀌었듯이, 수리재는 한때 무채색으로 뒤덮인 화풍이었던 김 작가의 그림에 오색찬란한 사계의 진면목을 입혔으며 그의 삶과 예술관마저 바꾸어 놓았다. 그렇게 의미 있는 장소가 남긴 그리운 흔적이 큰 만큼, 수리재라는 파라다이스에서 돋아나는 슬픔을 베고 움터오는 새순을 키우는 과정은 이 장소를 떠난 김 작가의 기억 속에 더욱 아름답게 남았다고 한다.

밤의 산울음꾼 고라니와 아침을 깨우는 산새 소리를 떠올리고, 김 작가가 좋아하는 클래식과 제3세계 음악 레코드를 재생시키면, 매일 들이키던 산자락의 상쾌한 공기와 길가에서 마주치던 이웃들의 웃음소리까지도 마법처럼 선명해져 밝고 선이 굵은 터치로 색을 입힐 수 있었다. 이렇듯 기억의 일부를 잘라 내 선명하게 물결치고 대비되는 삼원색으로 산과 나무와 동물들의 움직임을 그린 김 작가의 그림들은, 모두 그가 좋아하는 작가 고흐의 그림처럼 강렬하고 뚜렷하게 수리재의 사계를 담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인사동 M갤러리에서 처음 접한 어느 외국 관객들은 한국에도 이런 색감을 지닌 작가가 있었나라는 경탄으로 감상을 대신하기도 했다. 소품에서 100호 대작까지 40여 점을 소개한 김 작가는 산의 절경 외에도 고운 <능소화>, 즐겨 듣는 음악의 리듬감이 반영돼 한결 독창적인 터치감을 자랑하는 <춤추는 숲> , 기억의 인상을 비구상에 담고자 모든 것을 바쳤다고 전한다.

 

수리재를 떠나 새로운 세계로, 강렬한 색과 에너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발길을 멈출 것

김 작가는 그동안 유독 수리재 시리즈를 아끼는 팬들이 많았다고 한다. 자택 소장, 전시장에 올린 그림에 전시회가 끝나기 전부터 개인소장 의사를 밝히던 팬들의 발길이 수리재와의 작별전시 <안녕, 수리재>에서도 이어져, 애착을 가진 그림들 모두가 전시 중간에 이미 소장자가 정해졌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김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끝내면서 마음뿐 아니라 수리재의 실제 색과 촉감, 물성의 기억까지도 함께 다른 누군가에게 이전하는 이별 의식 같았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전시 첫날부터 열광적인 반응에 고무된 김 작가는, 7년 간 28번의 자연의 변화와 즐겼듯이 앞으로는 현대미술의 한복판에 진입해, 비구상의 파격적인 현대 예술과 미술학을 공부할 결심도 생겼다고 한다.

김 작가는 어렵지 않게 사람을 위로하는 색채심리학에도 관심이 있으며, 그림이 사랑받는 것도 수리재 안에서 아픔을 극복하며 밝고 아름다운 그림이 나온 것에 많은 공감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한다. 또 평소 좋아했지만 수리재의 자연에 몸과 마음을 맡긴 7년 동안 미뤄두었던 여행을 하며, 느낌이 맞는 장소에 다시 머물면서 붓을 드는 것도 김 작가의 위시리스트에 들어 있다.

김 작가는 낯선 수리재와 인연을 맺은 지 1년이 지나자 이내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함께 잠들고 눈을 뜨는 일상에 젖어들었듯이, 단기 일정이라도 화려한 뉴욕과 같은 도시에 들어가 사람들이 만드는 밝은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고 전한다. 김 작가는 이미 오랜 그림친구들과 1달 일정으로 유럽 스케치 여행 일정을 잡아 둔 상태이다. 분당의 작업실에서도 사진을 바라보며 떠올린 수리재의 경치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담겼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에, 김 작가는 특별한 주제나 행로도 정하지 않은 채, 마음을 사로잡는 장소라면 어디든 환영할 것이라고 한다.

김 작가는 밤이라는 시간을 음악과 함께 하며 스스로에게 묻고 사색하는 7년 동안 밤을 검은색이 아닌 시시각각 변화하는 푸름과 녹색의 그림자로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여행지였던 신주쿠, 마드리드, 파리, 런던, 자그레브, 그리고 서울의 밤거리를 고적한 어둠과 비오는 풍경으로 표현했던 과거와 달리 세계 어느 곳이든 도시의 빛과 색채, 휘몰아치는 생명력 속에 은유하는 비구상의 그림을 꿈꾼다. 영원한 마음속의 둥지, 수리재를 떠나 새로운 아침과 밤의 공기를 접하고 돌아오게 될 김 작가의 새 그림은 아마도 세상 곳곳에서 접한 희망의 숨결 덕에 더욱 밝고 강렬한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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