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홍보 대폭 강화, 전문가그룹 중용 ‘실용인선’ 자체 평가

   
▲ 이명박 정부가 인사파동과 쇠고기 정국 등 갖은 고난 끝에 청와대와 내각 1기를 마무리 짓고 새 단장에 나서는 등 출범 120일여 만에 개편을 단행했다. 지난 6월 19일 청와대는 고강도 인적쇄신을 감행해 그동안 실정에 대한 책임을 보여줬다.
이명박 대통령은 6월 20일 신임 대통령실장에 정정길 울산대 총장을 내정하고 7개 수석비서관을 모두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명박 정부 2기 청와대 비서진은 지역과 학맥 편중 논란에도 불구하고 분야별 전문가들을 과감하게 발탁해 효율적 국정운영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정길 울산대학교 총장을 대통령실장에 기용하고 정무수석에 맹형규 전 의원, 민정수석 정동기 전 대검찰청 차장, 외교안보수석 김성환 외교통상부 2차관, 경제수석 박병원 우리금융지주 회장, 국정기획수석 박재완 전 정무수석, 사회정책수석 강윤구 전 보건복지부 차관, 교육과학문화수석 정진곤 한양대교수를 임명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유임됐고 신설될 홍보특보에는 박형준 전 의원을 내정했다.


부자청와대 비판, 국민 눈높이 맞추기 고심 
새 정부 첫 청와대 진용과 비교해 분야별 전문가가 대거 발탁됐고 정무적 능력이 보완된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교수 출신은 5명에서 2명으로 대폭 줄어든 대신, 빈자리에는 관료나 정치인이 충원돼 관료 출신 수석비서관수가 1명에서 4명으로 증가했다. 정치인도 3선의 맹형규 정무수석과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홍보특보에 내정된 박형준 전 의원을 합해 3명으로 늘어났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교수 일색이다 보니 정책능력과 정무적 감각이 떨어져 당·정·청간 엇박자를 조율하지 못하고 현안 대응력이 떨어져 정책혼선이 빚어지고 난국을 초래한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의 측근들이 포함되고 지역편중의 문제점이 시정되지 않았다’며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인사라고 비판하고 나섰지만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이 중용돼 국정수행능력이 제고됐다는 점까지 부인하기는 어렵다.
1기 청와대에 부자청와대란 비판이 거셌던 만큼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려 고심한 흔적도 눈에 띈다. 재산규모가 주요한 인선기준으로 작용해 실장과 수석들의 평균재산이 36억 7,000만 원에서 16억 3,000만 원으로 55.6%나 줄었다. 반면, 지역편중과 학맥편중 현상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아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청와대 실장과 수석의 출신지역별 분포를 보면 영남 5명 서울 4명에서 영남 4명 서울 3명 호남 2명으로 지역안배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영남 출신이 숫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 1기 청와대는 서울대 5명, 고려대 3명, 숙명여대 1명으로 서울대와 고려대 편중현상이 심했지만 이번에도 서울대 6명, 고려대 2명, 연세대 1명 한양대 1명으로 학맥이 특정학교에 편중됐다.

‘국민과의 소통’강화, 정치·외교·노동·언론특보 임명

   
▲ 이명박 정부 2기 청와대 비서진은 지역과 학맥 편중 논란에도 불구하고 분야별 전문가들을 과감하게 발탁해 효율적 국정운영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신임 대통령실장에 정정길 울산대 총장을 내정하고 7개 수석비서관을 모두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정무·홍보기능이 대폭 확대되고, 정책기능은 효율적으로 재편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보여주듯이 청와대는 대대적인 참모진 개편에 이어 ‘소통’ 강화시스템 구축을 위해 정치·외교·노동·언론 등 대통령 직속으로 분야별 비상근 특보를 두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특보에는 김덕룡 전 의원이 유력한 가운데 노동특보에는 박길상 전 노동부 차관이, 언론특보에는 이성준 전 한국일보 부사장, 최규철 전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거론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이 대통령에게 정치문제를 조언하고 정치권 메신저 역할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신설된 홍보기획관 산하에는 4개 비서관이 편제돼 ▲홍보기획비서관에 이동우 한국경제신문 전략기획국장 ▲국민소통비서관에 김철균 전 다음 부사장 ▲연설기록비서관에 정용화 전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 ▲메시지관리비서관에 이성복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맹형규 정무수석실 산하 정무기획비서관에는 김두우 현 정무2비서관이 내정됐고, 행정자치비서관은 황준기 현 비서관이 유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무1, 2비서관이 합쳐진 정무비서관에는 전영태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포함해 3, 4명의 후보가 경합중이다.
신설되는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돼온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의 경우 좌파에서 뉴라이트 진영으로 전향한 것을 놓고 진보와 보수 양측에서 논란이 일고 있어 최종 기용여부가 불투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영준 전 비서관의 사퇴로 공석인 기획조정비서관에는 정인철 전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대변인실에서는 춘추관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곽경수 언론2비서관 자리에 박선규 전 KBS 기자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대운하 전도사’ 역할을 해온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은 지난 6월 20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특보단 운영을 두고는 ‘옥상옥’ ‘위인설관’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이명박 정부는 당초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가 소내각으로 전락해 일상적인 국정까지 관여하면서 부처가 위축되고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졌다”며 과거 4실장·8수석·2보좌관이었던 청와대 직제를 1실장·1처장·7수석·1대변인으로 줄인 바 있다. 또 지난 6월 24일 청와대는 조직개편을 단행, 무엇보다 ‘국민과의 소통’기능을 강화하는 데 맞췄다. 우선 박형준 전 의원이 내정된 수석급 홍보기획관 자리, 그리고 그 밑에 홍보1, 홍보2비서관, 국민소통, 연설비서관 등 네 명의 비서관을 두기로 한 게 눈에 띈다. 국민소통비서관에는 김철균 전 ‘다음’ 부사장, 연설비서관에는 정용화 전 인수위 자문위원이 내정됐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청와대 조직개편의 내용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 조직을 닮아 논란에 오르고 있다. 신설되는 홍보기획관실은 이명박 정부가 “기자실통폐합 등 언론 통제 창구”라고 몰아세워 없앴던 노무현 정부의 홍보수석실을 사실상 부활한 것이다. 기획관은 수석급으로 4명의 비서관을 통할할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 시절 홍보수석도 4명의 비서관을 관할했다. 홍보수석실 부활이라는 비판을 피하려 명칭을 수석실이 아닌 기획관실로 바꾼 게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있다. 실제, 현 청와대 고위인사들은 참여정부 홍보수석실 관계자에게 정책 홍보 방안 등에 대한 자문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사회비서관실 신설 방안도,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시민사회단체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노무현 정부의 시민사회수석실 기능을 부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노무현 정부는 취임 초 정무수석실 안에 시민사회비서관실을 뒀으나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반대 시위, 화물연대 파업 등을 겪으면서 시민사회와 소통을 위해 시민사회수석실로 확대개편했다. 하지만 ‘작은 청와대’를 내건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시민사회수석실을 폐지했었다.
정무 1, 2비서관을 정무비서관으로 통폐합하려는 것도 참여정부와 판박이다. 참여정부도 출범 초 유인태 정무수석 밑에 정무기획, 정무 1(여당), 정무 2(야당) 비서관을 두었으나, 2003년 12월 여야 구분을 없애 통합적인 정무기능을 수행하겠다며 정무 1, 2비서관실을 정무비서관실로 통폐합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특보·경제특보·외교특보 등의 비상근 특보직 신설을 검토하는 것도 ‘말뒤집기’라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경험 활용과 여론 수렴 등을 명분으로 문희상 비서실장, 이정우 정책실장, 이기명 후원회장 등 청와대 고위인사 출신과 정치적 동지들을 정치·정책·문화특보에 기용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은 “보은인사”, “위인설관”이라고 반발해 특보직 임명이 취소되는 등 파란을 겪었다.
참여정부 한 고위인사는 “참여정부도 나름의 고민과 필요에 따라 조직을 운용했는데, 거기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차별화에 나선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증명된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정부조직 개편은 제대로 작동되는지 살피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 이번 인적쇄신에서는 분야별 전문가가 대거 발탁됐고 정무적 능력이 보완된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교수 출신은 5명에서 2명으로 대폭 줄어든 대신, 관료 출신 수석비서관수가 1명에서 4명으로 증가했다. 정치인도 맹형규 정무수석과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홍보특보에 내정된 박형준 전 의원을 합해 3명으로 늘어났다.

청와대 떠나는 대통령의 복심 ‘류우익’
새 정부의 초대 청와대 참모진을 진두지휘했던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결국 117일 만에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직언도 서슴지 않아 핵심 정책참모이자 ‘복심’이라는 평을 받아왔으나 뜻하지 않던 쇠고기 파문과 ‘촛불민심’에 밀려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이 대통령과 류 실장이 인연을 맺은 것은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통령이 재선의원 시절이던 1996년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경부대운하 건설 구상을 제시하기에 앞서 대학에서 지역정책론, 지역개발론을 강의하던 류 실장을 직접 찾아가 조언과 도움을 청했던 게 계기였다. 두 사람과의 관계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04년 류 실장이 ‘수도이전반대 국민연합’을 주도하면서 더욱 끈끈해 졌다는 후문이다.
류 실장은 특히 지난 대선기간에는 이 대통령의 싱크탱크 중 하나인 국제전략연구원(GSI) 원장을 맡아 정책브레인 역할을 했다. 지난해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일해 달라는 요청을 뿌리치고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류 실장은 이 대통령의 ‘삼고초려’로 청와대에 입성했으나 결국 4개월 만에 물러나 ‘초대 비서실장’으로서는 최단명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입버릇처럼 “언제든 학교로 돌아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던 류 실장은 짧은 ‘정치외도’를 마치고 서울대 지리학과 강단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지리학회 사무총장 자리도 계속 맡게 된다.

2기 참모진 표절 논란 등 출발부터 삐걱대나

   
▲ 청와대 조직개편 내용을 두고 일각에서는 “홍보수석실 부활이라는 비판을 피하려 명칭을 수석실이 아닌 기획관리실로 바꾼 게 아니냐”며 눈총을 주고 있다.

한편, 쇠고기 파동으로 새롭게 등장한 2기 청와대 참모진이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1기 참모진이 취임 후 불과 100여 일 만에 전원 경질된데 이어 2기 역시 순조롭지 않은 모습이다. 2기 참모진의 발목을 잡은 것은 논문표절 의혹이다.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강부자(강남 땅부자)’ 논란을 피하기 위해 ‘명세빈’ 즉 비(非)고려대ㆍ비(非)영남ㆍ비(非)자산가 등 ‘명백하게 세 가지가 부족한 인물’로 애써 진용을 구축했더니 엉뚱한데서 구멍이 뚫리는 양상이다.
정진곤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내정자는 지난 6월 23일 논문 중복과제와 자기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 발령 보류를 자진해서 요청했다. 정 수석은 논문 표절 의혹이 몇 몇 언론에 제기되자 정정길 대통령실장에게 “논문 표절 의혹으로 새로 출범하는 대통령실과 비서진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질 경우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누가 될 수 있다”며 “관련 학계가 의견 수렴 등을 통해 공정한 판단을 내릴 때까지 발령을 보류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정 수석은 “흔히 애기하는 표절도 아니고, 스스로 학자적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 않는다”고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어쨌거나 물의 빚게 돼서 죄송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정 수석은 지난 2000년 ‘21세기 사회와 열린교육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학술진흥재단(학진) 등재지 ‘열린교육연구’에 게재했다. 이 논문은 2년 전인 1998년 강원도교육연구원 계간지에 실었던 논문과 제목과 구성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 수석은 2000년 논문 어디에서도 이 같은 사전 발표 사실을 명기하지 않아 논문 중복게제 의혹을 받고 있다. 동일한 논문을 타 매체에 실을 경우 ‘언제 어디에 먼저 발표한 논문’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게 학계 관행이다.
이 논문은 자기표절 의혹도 받고 있다. 정 수석이 1997년 이화여대 조경원 교수와 공동명의로 ‘열린교육학회지’에 발표한 ‘현행 열린교육의 교수학습 방법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탐색’이라는 논문에 핵심적인 부분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또 2004년 한양대에 게재한 ‘지식기반사회의 특성에 비추어 본 학교교육의 개선방향’이란 제목의 논문에도 2000년 논문의 한 단락을 별다른 인용 없이 그대로 실어 자기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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