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 체감할 수준 아니다”
세계 경제는 ‘회복세’ - 한국경제는 ‘부진 지속’

세계 주요국들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에 설레고 있다.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이후 침체의 늪에 빠졌던 세계 경제는 미국을 필두로 점차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10년 장기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도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어느 구석에서도 경기가 좋아질 징후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다간 세계 각국 경제의 동반 회복 흐름에서 홀로 밀려나 외톨이 신세가 되는 것 아니냐는 탄식마저 들린다.


소비 심리가 조금 나아지는 조짐이 보이지만 본격적인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주장하지만 국민이 느끼는 경기는 아직 한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1월 소비자전망조사 결과’에 따르면 6개월 전과 비교해 현재의 경기, 생활형편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를 나타내는 소비자평가지수는68.4로10월(62.7)에 비해 조금 올랐다.
현재의 경기, 생활 형편을 6개월 전과 비교하는 소비자평가지수는 기준점(1백) 밑으로 내려갈수록 부정적으로 보는 가구가 긍정적으로 보는 가구보다 많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소비자평가지수가 60대에 그쳤다는 것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현재의 경기나 생활형편을 좋지 않게 본다는 뜻이다.
현재와 비교해 6개월 후의 경기, 생활형편, 소비지출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기대지수는 지난해해 11월 94.6으로 나타나 전월(91.5)에 비해 조금 올랐다. 특히 소비지출에 대한 기대지수는 1백.9를 기록해 앞으로 소비자들이 조금씩 지갑을 열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대형 유통업체 매출동향에 따르면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6%나 감소해 10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다만 할인점 매출은 지난해 11월보다 2.5% 증가, 6개월만에 증가세를 보였다.
통계청 관계자는 "소비자기대지수가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기준점인 1백에 못미치는데다 백화점의 매출도 계속 하락세라 소비심리가 반등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2004년에도 내수 ‘감감’

중소기업 경기는 올해에 다소 호전될 것으로 보이나 내수 부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중소제조업체 최고경영자 1천5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04년 경기전망조사’에 따르면 내년 중소제조업의 업황전망 지수(SBHI)는 101.5를 기록했다. 수출은 106.5로 나타나 호전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내수는 98.8에 그쳐 판매 둔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SBHI(Small Business Health Index)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보다 세분화해 산출한 경기전망지수로 이 값이 100 이하면 경기가 전보다 나빠지고 100 이상이면 호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종과 회사 규모별로도 경기 전망치가 엇갈려 중기업(110.2)과 중화학공업(107.7)은 지수가 100을 넘어선 반면 소기업(97.3)과 경공업(94.9)은 100을 밑돌아 경영부진이 예상됐다.

올해 유통 최대뉴스 소비심리 꽁꽁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와 넘쳐나는 신용불량자, 물류대란에 사스공포까지…’.
지난해 유통업계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은 한해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유통업계 최고경영자(CEO) 및 학계 전문가 1백명을 대상으로 올해 유통업계 10대 뉴스를 조사한 결과 ‘소비심리 위축’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신용불량자 급증 할인점의 백화점 추월 주5일 근무제에 따른 유통업계 변신 바람 TV홈쇼핑의 이색상품 대박 등이 10대 뉴스에 꼽혔다.
지난 한해동안 소비심리 위축은 유통업계를 짓눌렀다. 도소매 판매액은 9개월째 내리막길을 걸었고, 백화점 매출도 10개월째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해 세자릿수 성장을 자랑했던 홈쇼핑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또 3백60만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와 4백40조원에 이르는 가계 부채도 소비 부진을 가져왔다. 할인점은 지난해 유통업계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상반기 9조7백60억원의 매출을 기록, 8조6천억원의 백화점을 10년 만에 따라 잡았다
실질소득 증가, 성장률 밑돌아

우리나라 국민의 구매력을 나타내주는 실질 국민총소득(GNI)이 경제성장률 수준만큼 늘어나지 않아 체감 경기도 더욱 악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9월 사이 누적 실질 국민소득이 1년 전보다 0.2% 감소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9월(-9.8%)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3분기 국민소득 잠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3분기 중 명목 국민총소득은 1백53조7천8백56억원으로 1년 전보다 4.5% 증가했다. 물가상승 등을 감안한 실질 GNI도 1백9조7천5백86억원(95년 불변가격 기준)으로 1년 전보다 0.9% 증가해 2분기째 소폭 증가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실질 GNI 증가율은 이 기간 중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2.3%)에 크게 못 미쳐 소득증가가 경제성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6분기 연속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실질GNI 증가율이 실질 GDP 성장률을 밑돈 것은 주력 수출품의 가격은 떨어진 반면 원유 등 수입물품의 가격은 올라 무역 손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계 빚, 가구당 사상 최대

또 신협, 마을금고, 상호금융 등의 신용협동기구 대출이 크게 늘면서 가계 빚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들어 계속되고 있는 극심한 소비 위축으로 물품 외상구입은 사상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3.4분기 중 가계신용 동향’에 따르면 가계신용(가계대출+물품 외상구입) 잔액은 439조9천481억원으로 6월말에 비해 0.2%인 8천613억원이 증가했다. 이는 전분기의 감소에서 증가세로 반전한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에따라 가구당 빚은 2천921만원으로 지난 6월말의 2천915만원에 비해 6만원 늘어 역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여기에 통계로 잡히지 않은 은행이나 카드사의 상각채권을 합할 경우 가구당 빚은 훨씬 늘어난다.
하지만 지난해 9월말까지 가계 빚은 8천900억원에 증가에 그쳐 작년 같은 기간의 증가폭(82조원)에 비해 크게 둔화됐다. 가계 빚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은 신협, 새마을금고, 상호금융 등 신용협동기구의 대출이 크게 늘면서 가계대출 증가폭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증가액은 6조9천919억원으로 전분기(5조8천122억원)에 비해 늘었다.
가계대출 억제조치로 은행 대출 증가폭은 전분기 9조6천542억원에서 8조8천494억원으로 둔화된 반면 신용협동기구의 대출 증가폭은 3조4천614억원에서 4조9천58억원으로 확대됐다.
한은은 "가계의 높은 채무부담으로 가계신용 연체율이 상승하고 신용불량자수가 증가하면서 가계의 재무상태가 소득감소, 금리인상 등의 충격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커진만큼 가계신용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업문도 ‘바늘구멍’-기업 88% "내년 채용도 올해와 비슷하거나 줄일 것"
또한 취업 전문업체 스카우트(www.scout.co.kr)가 지난해 채용을 실시한 주요 기업 12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채용을 ‘다소’ 또는 ‘대폭’ 줄일 것이라고 응답한 업체가 20%에 육박했다.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68.0%(87개 업체), ‘늘릴 것’이라고 답한 업체는 16개(12.5%)에 그쳤다. 응답 기업들은 자신들이 속한 업종의 채용 전망에 대해서도 ‘어두울 것’이라는 응답(21.1%)이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18.0%)보다 많았다.
업종별로는 제약과 자동차, 기계, 철강, 조선, 건설, 목재 등의 업종은 채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며, 증권과 보험 업종은 유일하게 고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중소기협중앙회가 발표한 ‘2004년 경기 전망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10.1%가 지난해보다 고용을 축소하겠다고 밝혔고, 69%는 자연 감원분만 보충할 것이라고 답했다.
스카우트 김현섭 사장은 "올 채용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을 가능성이 많다"면서 "올해에도 극심한 취업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400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한 르노삼성자동차는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적게’ 뽑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쌍용건설은 지난해 100명을 뽑았지만 역시 ‘다소 감소’라고 답했다. 200명을 채용한 한미약품과 70명을 뽑은 한국얀센은 채용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고, 전동차 제작업체인 로템은 지난해 상 하반기 각각 40명, 100명을 뽑았지만 올 상반기엔 채용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건설업체들도 대부분 올해 채용인원을 대폭 축소할 움직임이다.
전문가들은 2004년도 취업시장 여건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나빠진다는 것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하반기 채용에서 유한킴벌리는 11명 모집에 4234명이 몰려 385대1을 기록했고, 애경산업도 15명 내외 모집에 3500여명이 몰려 233대1을 기록했다. 남양유업과 LG칼텍스정유, 현대모비스 등도 경쟁률이 200대1을 넘었다. 지난해 ‘나홀로’ 호황을 누리다시피한 삼성그룹 정도만 작년보다 15% 늘어난 6500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했을 뿐이다.
잡코리아 김화수 사장은 "채용시장은 보통 경기보다 1분기(석 달) 정도 뒤늦게 따라간다"면서 "지난해 연말 경기 동향을 감안할 때 올 상반기 채용시장이 나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낙관론속 투자부진 보전 양상

대부분 경제연구소들은 2004년 올 설비투자 압력이 증대돼 2003년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예측을 내놨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설비투자증가율을 무려 11.1%로 예상했다.
이렇게 설비투자가 다소 숨통을 틀 수 있을 거라 보는 이유는 올해 수출호조 세가 지속되고 내수가 차츰 활기를 띠면서 설비투자증가율도 차츰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이 된다. 세계 IT경기 회복,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 등도 투자 증가에 기여를 할 요소다. 그간 장기간 투자를 미뤄온 기업들이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 증가율을 본격적인 투자확대로 보기는 어렵다. 지난해의 극심한 투자부진을 보전하는 정도라 할 수 있다.
투자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만만찮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보통 수출이 늘면 투자가 늘고 뒤따라 소비가 늘어나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최근 제조업가동률이 78%에 불과하다. 수출이 늘어도 여전히 과잉설비 상태인 셈이다. 따라서 설비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처럼 수출 증가와 이에 따른 투자 증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상태라 수출호조세에 따른 설비투자 증가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수출입…흑자기조 이어갈 듯

대외여건이 좋지 않고, 환율이 계속 하락했음에도 2003년 수출은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내수가 극도로 부진한 상황에서 수출이 경제를 이끄는 축이 됐다.
2004년에도 수출은 여전히 사정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수입은 그다지 늘지 않을 것 같다. 내수경기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돼 소비재와 자본재 수입도 크게 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상수지는 올해에도 흑자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증가세는 지난해보다는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만성적인 적자였던 서비스수지 적자폭이 커지면서 경상수지는 지난해보다 줄어든 17억(LG경제연구원) 36억(KDI)달러 선에 머물 것으로 보여진다.



물가- 안전세 지속 전망


2003년 3%대에서 안정된 물가는 2004년에도 안정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구체적으로는 2%대 후반이 될거라는 전망이 가장 우세하다.
이처럼 물가가 안정되리라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선 내수가 여전히 반등 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수요에 따른 물가상승압력이 높지 않다. 경기가 그 다지 좋지 않은 시기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유통업체의 가격경쟁 격화, 저가 소비재 수입 증가 등도 물가 안정에 기여할 요소다. 국제유가가 WTI 기준으로 배럴당 27달러 내외, 지난해의 30달러에 비해 3달러 가량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점, 미 달러화 약세에 따른 원화 강세 현상이 지속됨으로써 수입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2%대 물가를 점치게 하는 주요 이유다.
물론 불안 요인도 상존한다. 우선 명목임금상승률이 높아질 전망이다. 보통 선거 이후에는 선거 이전까지 억제돼왔던 공공요금이 일제히 올라가는 현상이 있어 왔다. 올해에도 역시 총선 이후 공공요금이 상승세로 반전할 가능성이 높다.

금리…상승세 우세

2004년에는 오랜 기간 하락세를 계속해왔던 금리가 상승세로 반전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국제금리가 오르고 조금이나마 경기회복이 이뤄지면서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설명. 실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그동안 채권과 부동산에 몰렸던 자금이 주식과 기업금융 쪽으로 이동하면서 채권, 부동산 거품이 해소되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상승 속도는 완만할 것이다. 또 시장금리가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저금리 기조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회복세가 미약해 금리상승 압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해 5%대이던 회사채수익률이 6%대(3년만기 AA- 기준)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환율…미 달러화 약세 지속 가능성

환율은 2004년 대외변수 중 가장 큰 관심사다.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환율 추이에 따라 우리 경제를 떠받드는 유일한 축인 수출 판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미 달러화 약세가 여전히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 재정적자와 경상수지적자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다 미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달러 약세 현상이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설상가상 중국 위안화 환율이 절상되거나 변동폭 확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위안화 환율에 변동이 생기면 원화 환율도 동반절상될 가능성이 크다. 원화와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엔화 환율 하락 역시 환율 하락세를 부추길 요인이다. 엔화 환율이 110엔 이하로 떨어지면서 원화 환율 하락을 선도할 가능성이 있다.
올 환율은 한마디로 하락세가 분명한 상황에서 다만 완만한 하락세냐, 급격한 하락세냐와 도대체 얼마까지 떨어질 것이냐가 관건이 된다. 일단 대부분 연구소들은 1100원대 초반을 예측했다. 그러나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기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은 하반기에는 1100원 이하로 낮춰질 가능성도 팽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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