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 16세기 임진왜란 전야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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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16세기 임진왜란 전야와 같다
  • 강현섭 기자
  • 승인 2019.08.0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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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되는 국제질서 읽어내야 역사적 비극 막아낼 수 있어...

[시사매거진=강현섭 기자] 대형 사건과 사고는 한 건의 잘못된 요소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재난의 원인과 결과는 필연적인 관계가 있지만 여러 건의 요인들이 겹겹이 누적되어야 발생한다. 국가적 위기 역시 그러하며 21세기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16세기 임진왜란 전야의 상황과 같다는 점에서 역사적 경고를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16세기 일본의 상황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후 다이묘들에 대한 통제와 120여 년 간 지속된 사무라이들의 넘치는 혈기를 해외로 빼돌리고자 조선에 대한 “정명가도”를 요구하였다. 토요토미는 일본 열도의 통일사실을 조선과 명에 알리고 새로운 국제질서의 확립을 위해 황국 일본에 대하여 사신파견과 조공을 바칠 것을 요구하였는데 불응 시 “조선출병”의 협박메시지도 함께 전했다.

선조는 마지못해 정사 황 윤길과 부사 김 성일을 수반으로 통신사를 파견하여 왜의 조선침략 여부를 파악하게 하였는데 사신들은 국익차원에서 일본의 침략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체 귀국하여 “동인과 서인을 대표한 입장”에서 다른 견해를 조정에 보고하였으며 선조는 “8도의 민심을 흉흉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역사적인 오판을 하게 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동북아에 새로운 질서가 강요되는 가운데 일본의 무역 보복을 당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상황 역시 42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와 비슷하다.

먼저,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인식이 무지하다는 점이다.

토요토미는 일본열도 통일로 명과 조선에 대하여 새로운 질서와 힘에 의한 국제관계의 수립을 요구 했음에도 조선은 국제정세의 무지와 무신경으로 애써 눈을 감으려 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일본의 부상이 분명 ‘힘에 의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21세기 대한민국은 북한핵무기는 우리일이 아니라 미국을 타겟으로 한 것이라고 안위하고 일본의 힘은 겨룰 수 있는 정도라고 무시하고 있다.

아베정권이 오늘부터 확대하는 White List 제외조치는 ‘경제력에 기반 한 조치’들이지만 문재인 정부와 퇴짜 맞은 방일단의 여권 실세들은 ‘NO Japan 운동’을 강조하며 도덕적, 감정적 판단에 근거한 성리학적 판단 만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 영공 침범을 둘러싼 중ㆍ러ㆍ일과 우리나라의 갈등상황 또한 국제질서가 재편되고 있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임진왜란 당시의 아둔함과 비슷하다.

둘째, ‘전쟁가능성’과 관련된 냉철한 분석이 없다는 점이다.

통신사로 파견된 김 성일은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본 후 ‘쪽바리 라는 멸시적 입장’에서 출병가능성이 없음을, 황 윤길은 ‘날카로운 인상과 범상치 않은 눈매’를 토대로 출병가능성이 있음을 각각 다르게 보고했다. 김 성일은 감정적 판단은 조선의 국익보다는 붕당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왜의 출병가능성을 오판한 것이다.

김 정은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쇼를 보면서 보수야당은 “남북미간 대화는 위장평화 쇼다,”는 경고를 하지만 “평화가 경제다” 며 반일정서가 민주당의 총선전략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서를 돌려보는 것을 보면 당쟁에 기반한 임진왜란 전의 김 성일을 재현해 보고 있는 느낌이다.

임진왜란 2년 전, 일본 사신들은 ‘공작새와 조총 2자루’를 상납하는 등 실질적 정세변화의 징표들을 보여 주었으나 선조는 조총을 “병기고에 넣어두라.”며 무시해 버리고 전쟁가능성을 무시하고 눈앞의 편안과 안일을 추구했던 역사적 사실과 상통한다.

왜가 쳐들어오면 명이 도와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조선 조정의 안일한 판단과 일본이 경제보복을 하자 미국으로 달려가 도와 줄 것을 요청하는 장면에서는 과연 이 정부가 여러 가지 긴급사태에 어떻게 대비하며 국민을 보호할 것인지 우려를 가지게 한다.

셋째, 최고 정권담당자들의 무능이 선량한 백성들에게 고통의 눈물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선조가 “별일이야 있겠어?” 하는 무사안일적 판단은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무시”와 “무신경”이 무역보복을 자초한 측면에서 비슷하다.

고독한 결단으로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최고 지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외교적 길이 있었음에도 선조가 의주로 피난까지 하며 굽히지 않았던 고집은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담판 없는 말 없는 고집과 닮아 있다.

토요토미가 무력에 기반하여 호통을 치던 것과 아베가 경제력에 근거하여 냉담하게 무역보복을 확대하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부대의 파죽지세를 연상케 하며 그 섬뜩함이 있다.

16세기 조선의 백성들은 성리학과 도덕적 감정에 기반하여 의병으로 왜에 대항했지만 21세기의 한국인들은 국난에 힘을 보태고자 단결하여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싸움의 결과는 자명하다. 정권과 지도자는 역사적 평가만 받으면 되겠지만 백성들은 의병의 몰살과 같이 혹독한 댓가를 치뤄야 하고 핍절한 삶으로 7년을 버텨야 한다.

전쟁 이후 조선의 백성들이 회복하기에는 수십 년 세월이 필요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를 반추해 미래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데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면 역사에 멍청한 국민이다.

국민이 나서야 한다. “죽기 살기로 난제를 풀어나갈 자세가 없다.”면 비극의 역사는 한반도에서 또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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