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모색

(시사매거진254호=차홍규 화백) 최희영 선생님은 근 4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는 오래된 지인이다. 필자와 마찬가지로 보수나 진보를 떠나 균형 있는 사고를 갖추려 노력하는 사람으로, 사범대학 졸업 후 평생을 교직에 있다가 학교장으로 정년퇴직했다. 교육은 나라를 이끌어 가는 국가의 중대한 백년대계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며 수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아쉽게도 ‘교육이 위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스승의 그림자도 안 밟는다는 이야기는 공염불이 된 지 오래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교직을 서비스업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편하다’는 자조적인 말도 흔히 듣는다.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교육자로서 교단에서 평생을 살다 정년퇴직한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친구 최희영을 찾아가 보았다.

39년 간 교직에 몸담았던 최의영은 “교육은 나라를 이끌어 가는 국가의 중대한 백년대계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며 수단’”이라고 말한다.

교직에 대한 현실을 평가한다면

교직은 서비스직이라는 말은 이제 교육 현장에서도 상용화된 말이다. 학부모나 학생은 교사에게 섬겨져야 하고 존중해야 할 대상이라고 방향성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교사의 자리는 없다. 권리는 없고 오로지 책임과 의무만 존재하는 것이 교직자의 현실이다. 학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데는 물론 세월의 변화와 더불어 학교 사회의 문제점도 있겠으나 한두 사람의 잘못된 시각이 현재의 감정적인 정책을 만들어 놓은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39년 교직에 있다 보니 어느 한순간 신뢰받던 교사는 사라지고 촌지나 받고 학생들을 편애나 하는 불신의 덩어리로 전락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참된 교사였던 우리들은 사회의 손가락질이나 받고, 사회의 지도자로 존경받던 교장 선생님은 권위주의에 물든 파렴치한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문제점은

학교 교육의 문제점은 방향성을 잃었다는 점이다. 한국 교육의 철학은 실종된 지 오래다. 오직 교육방법이나 정책만 존재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헌법이나 교육 목표에 명시되어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것을 반영하고 있기는커녕 교사에게 오직 성직자의 자세만 요구하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방황하고 있다. 교육과정이나 방법에만 몰두할 뿐 우리 것을 무시하고 오로지 서구의 교육이나 문화의 답습에만 열을 올리며 그것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본 철학인 홍익인간을 바탕에 두고 인성교육과 함께 미래 지향의 교육과정이나 방법을 모색해 나가야 하건만 우리의 교육 현실은 맞지도 않는 서구의 옷을 걸치고 허우적거리는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나를 찾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그것이 곧 글로벌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의 방향성이라 여겨진다.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우리 사회가 밝아지기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 먼저 ‘이 나라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학교라는 존재가 결코 실험대상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갑자기 정치인이 교육부 장관이 되어 제시한 순간적인 계획안에 따라 학교가 이리저리 움직여져서는 절대 안 되며 깊은 통찰과 철저하게 만들어진 천년의 대계로 우리의 교육이 나라와 인류의 국본인 홍익인간을 키우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교직을 존중하는 풍토 속에서 교사들은 활짝 깨어나 흘리는 땀과 열정이 진정한 보람으로 결실되어 희망이 가득하고 나라를 위하여 존재하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존경받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하는 교사들이 더 이상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기자회견 중에 음속을 물어보는 기자에게 “나는 책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는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답한 바 있다. 미래인재는 검색 가능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인성과 창의성을 가진 사람, 그리고 자신에서 출발하여 인류와 지구, 우주를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선생님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아이들이 지식정보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스승의 역할에 온전히 힘을 쏟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최의영은 대학 들어가 서예를 시작하며 지금까지 평생을 하고 있고, 교직 생활을 시작하며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배운 시조창을 지금도 보급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교직 생활 동안 보람된 일도 많았을 텐데

39년의 교직 생활은 한마디로 천직을 내게 선물처럼 안겨준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즐거움을 주었으니까. 나에게 인생을 지탱해주는 격언 중 첫째가 맹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이었다. 두 번째가 주희의 ‘권학문(勸學文)’이었고 세 번째는 ‘조문도(朝聞道)면 석사가의(夕死可矣)’라는 말이다. 모두가 가르치고 배우며 깨우치는 즐거움을 함축하고 있다. 가장 큰 보람은 각계각층에서 사회인으로 한 몫을 다하는 제자들을 멀리서 보면 정말 흐뭇하다. 내가 사랑했던 부천여고 제자는 나와 함께 교장연수도 같이 받아 현재 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으로, 제자들이 사회인으로 존경받고 멋지게 사랑받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는 내 일보다 더 기쁘고 행복하다. 이번 스승의 날 즈음에도 덕적도의 첫 제자들이 모여 좋은 음식과 꽃다발을 준비하며 선물까지 하였다. 그러나 더 감동적인 것은 당시 함께 했던 동료이자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고 계신 김창섭 조각가가 나를 위해 제작한 조각 작품 ‘달팽이’를 선물하여 준 일이다. 나의 인쇄 첫 작품 ‘달팽이’ 시(詩)가 다시 살아 돌아온 느낌이어서 눈물이 났다.

 

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생각은

예술은 당연히 대중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고 아름답게 하는 인간의 행위라 여기기 때문이다. 평소에 농담처럼 하는 말로 예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한다. 예술은 사람의 정서를 순화하고 심성을 멋지고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인간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대중화는 참 반가운 이야기다. 학교교육과정에서도 정서교육을 위해 인성교육을 위해 예술과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한다. 원래 문학 음악 미술 무용의 예술 4대 분야는 원시종합예술에서 출발하여 인지의 발달에 따라 분화된 것인 만큼 한 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향유하려는 본능이 있다면 예술의 대중화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전통문화에도 남다른 사랑이 있는데

아마도 이유는 첫째 가정환경의 영향이 크다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7대 종손의 집안에서 자라며 일 년에 12번 제사를 지내고 어머니의 집안 대소사를 이끌어 가시는 모습은 가히 감동적이었기에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지금까지 5남매가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해 본 적이 없다. 거기에 조부모님의 사랑이 컸고 면장이셨던 아버지는 공직자로서의 책임감을 몸으로 보여주셨다. 일흔에 서예를 시작하셔서 국제 서예 전시회에 참여하실 정도로 능력과 열정이 대단하셨다. 평생 한복을 입으셨던 어머니의 자태는 고고한 귀부인이었다. 이런 영향이 내게 큰 것 같다. 대학 들어가 서예를 시작하며 지금까지 평생을 하고 있고, 교직 생활을 시작하며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배운 시조창을 지금도 보급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역부족이다. 다도는 고교 시절부터 절에 다니며 스님들께서 가르침을 주셨고, 어머니의 다도 교육을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웠다. 제대로 배운 것은 직무연수로 120시간을 배워 예절사 자격증을 얻은 것이 전부다. 하지만 전통차와의 인연은 참 오래되었다.

한국의 선비정신 ‘경(敬)’을 용모단정, 독서, 공경, 겸손 예절을 통해 실천하도록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을 교육하는데 적극 동참하려 한다는 최희영.

앞으로의 계획은

이제 저는 퇴계의 정신 ‘소원 선인다(所願 善人多)-착한 사람을 기르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 한 말씀을 바탕으로 한국의 선비정신 ‘경(敬)’을 용모단정, 독서, 공경, 겸손 예절을 통해 실천하도록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을 교육하는데 적극 동참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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