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모양(심상)이 인생이다”
팔만사천미묘관세음보살 기도성취 전법도량

예로부터 한국불교는 백두대간의 간척에서 나라를 구했다. 찬란한 문화와 역사가 말해주듯, 우리 민족은 부처님 사상을 통해 대자대비하는 마음으로 이웃 사랑, 국토 사랑을 실천하며 모두가 부처님이고 모두가 보살이었다. 한국불교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숨 쉬며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고 있는 자성사(법우림 스님)은 생활불교, 대중불교 및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회환원 사업으로 불교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더불어 이 사찰에 신기한 형상의 돌이 발견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묘관음성지(微妙觀音聖池)
충남 연기군 금남면 용담리에 위치한 자성사는 규모는 아담하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뿌리 깊은 사찰이다. 이곳에서 신기한 돌이 발견돼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법우림 스님이 불기 2546년 이 도량에 와서 불사를 이루던 중, 꿈에 흰 도포를 입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할아버지가 계룡산을 바라보고 있는 꿈을 꾼 다음날, 꿈에 본 모습과 매우 흡사한 형상을 발견하여 관음성지에 산신할아버지를 5년 동안 모셨다. 신기한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불기 2550년에 스님은 산책로를 확장하다가 우연히 한 곳에 밝은 빛이 비추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서 삼신할머니(관음보살이 할머니로 나투심)를 발견되어 관음성지에 모신 뒤 그 형상이 매우 기이하여 사진촬영을 해 보았다. 사진촬영 도중 그동안 산신으로 모셔오던 산신할아버지 형상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됨과 더불어 자비로운 관세음 보살상을 발견됐다. 보는 이들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친견하던 중 한 가지 모습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수없이 많은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우림 스님은 “중생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팔만사천이요. 고뇌 또한 팔만사천이라. 자비로운 관음보살 방편 따라 나투시니. 중생들의 번뇌 눈이 녹듯 사라지고 팔만사천 모습 또한 부처님의 형상이라. 나투시는 그 모습 너무 미묘하니. 이름하여 미묘관세음보살이라 칭하였다”고 말했다. 자성사는 이 신비로운 형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늘 함께하길 기원하고 있다. 법우림 스님은 “자성사의 면면히 내려온 선사들의 오랜 수행풍토를 잘 이어갈 수 있도록 외호하는 것이 본사주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법우림 스님의 뜻을 기리며 자성사에는 스님의 전문적인 식견을 통해 심리안정과 영원복락의 복을 축원 받고자 하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관세음보살님을 참례하고 기도를 하면 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자성사는 현재 서울과 부산지역에 포교원을 넓힐 예정으로 있으며 이 포교원을 통해 부처님의 진리를 보다 널리 설파할 계획이다.




삶의 지침서와 같은 학문
법우림 스님은 “운명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운세의 움직임을 잘 알고 이를 적절히 이용하면 한결 순조롭게 일을 풀어나갈 수 있다”라며 역학을 소개했다. 불교에서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즉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뜻이다. 어떠한 사물이던 간에 타인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역도 마찬가지로 바라보는 관점이 운명론적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준비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인 것이다. 역학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피흉취길(避凶取吉:흉한 길은 비켜 가고 길한 것은 취함)에 있다. 운이 나쁘다고 해서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맘의 자세를 봉하지 않게 고요히 하는 것이다. 다시한번 말하자면 역학은 인간의 길흉화복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에 대처하는 처세술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이렇듯 역학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떠한 상황에 복면하더라도 그 상황을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위한 학문인 것이다. 스님은 “살아가는 모든 것은 역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학은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순간 판단과 선택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변화를 수시로 느낄 수 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낮과 밤이 바뀌고 계절이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라며 역학은 단지 사람들의 재미나 호기심의 학문이 아닌 우리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나를 찾고 삶을 성찰하기에 참선만큼 좋은 게 없다고 느낀 법우림 스님은 “모르고 사는 삶을 알고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어 주는 가르침이 바로 불교이다. 즉 불교는 우리에게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주고 있다”며 “법문은 위로부터 내려오면서 먼저 무념(無念)을 세워서 종(宗)을 삼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으며 무주(無住)로써 본(本)을 삼는다. 무상(無相)이라 함은 상(相)에서 상(相)을 여읨이요, 무념이라 함은 생각에서 생각이 없음이요, 무주(無住)라 함은 모든 경계를 대함에 생각 생각에 머물지 않으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니 이 까닭에 무주(無住)가 근본이 된다”라고 말하며 불교가 그에게 준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설명했다.
특히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며 그들을 위해 활발한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법우림 스님의 숭고한 뜻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전쟁, 질병, 굶주림 등 인류 최대의 절망적 위기를 맞은 오늘의 이 현실에서 인간의 생로병사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신 삼본주의 이념이 펼쳐져 자비로서 인류 구원의 빛이 되길 희망한다.



자성사 법우림 스님 인터뷰
“내 모습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 지혜 절로 생겨지다”

사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상이고, 관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심상이다. 마음이 바뀌게 되면 관상이 바뀌고 관상이 바뀌면 사주가 바뀌게 된다. 저는 포교활동의 한 일환으로 역학을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만족감과 행복을 갖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자기 스스로의 만족을 하지 않으면 행복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역학의 힘은 마음의 중심, 마음의 행복을 잡아줌으로 인해 흐트러져 있는 마음이 바로서면서 얼굴이 바뀌게 되고 자신의 운명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듣고 내 얼굴을 생각하거나 본 사람들은 지혜로운 맘이 절로 생겨나게 하는 것이 나의 서원이다.
어떤 사람들은 욕망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욕망으로 인해 성취하는 것보다 욕망 때문에 잃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눈 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욕심은 지혜를 흐리게 한다. 이러한 장애를 없애고 참된 지혜를 발현하여 각 가정의 안녕과 함께 국가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뿐이다. 우리 자성사가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참 된 지혜를 줄 수 있는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사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단 한사람이라도 자성사를 방문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아 돌아간다면 소승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수행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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