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China’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다

(시사매거진245호=신혜영 기자) 우리가 흔히 세계적인 기업을 운운할 때 오랜 역사와 기업의 규모, 그리고 명성을 따진다. 물론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수익과 규모가 중요하겠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시 되는 게 있다. 바로 기업문화다. 기업문화는 곧 그 기업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를 중시하는 기업문화는 오늘날 하이얼그룹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1984년 설립된 하이얼은 현재 중국시장에서 3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중국 최대의 가전 업체로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를 중시하는 기업문화는 오늘날 하이얼그룹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사진출처_뉴시스)

1984년 설립된 하이얼(Haier, 海尔)은 현재 중국시장에서 3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중국 최대의 가전 업체다. 지난 2009년부터 2017년까지 9년 연속 세계 판매 1위를 기록했을 만큼 탄탄한 제품력을 갖고 있는 하이얼은 설립 15년 만에 ‘2004년 중국 기업 종합경쟁력 1위(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2004년 중국 1000대 제조업체 중 가전부문 1위(케임브리지 매뉴팩터링 리뷰), 2004년 가장 존경받는 중국 기업 1위(파이낸셜 타임스), 2005년 가장 잠재력 있는 중국 브랜드 1위(Glebors), 2004년 중국 기업으로 유일하게 세계 100대 브랜드 진입(월드브랜드랩)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하이얼 ‘가전왕국’이 되기까지

하이얼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34년 전인 1984년 중국 정부가 산둥성 칭다오에 세운 칭다오냉장고공장이 전신으로 1991년까지 냉장고만 생산하다가 1992년부터 냉동고와 공기정화기, 세탁기, 텔레비전을 생산하며 본격적인 가전제품 생산회사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현재의 하이얼로 사명을 변경했고 1993년 하이얼이라는 브랜드로 소속기업 이름을 모두 변경했다.

이후 1995년 흑색가전 시장에 진출한 하이얼은 1998년 고구마 전용 세탁기를 출시, 이는 당시 대부분 중국 농민들이 고구마를 세탁기에 씻었던 사실에 착안해 만들어 낸 것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성공에 힘입어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생산하기 시작한 하이얼은 이해에 미국 현지법인을 세웠다.

하이얼의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0년 이후 독자적인 관리방식인 OEC(Overall Every Control and Clear)를 도입하며 품질관리에 주력한 하이얼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하이얼 가전왕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어려운 곳부터 공략한 뒤 쉬운 곳으로 나간다’는 선난후이(先難後易)전략에 따라 선진국 시장에 먼저 진출해 북미나 유럽 지역에서 상당한 브랜드 인지도를 얻는데 성공을 거둔다. 하이얼은 미국 소비자들의 수요에 따라 제일 먼저 냉방, 정화 기능을 모두 갖춘 미국 창문형 에어컨(Window Air Conditioner)을 개발, 일반적인 에어컨 기능은 물론 공기 중의 각종 연기, 먼지, 부유물 등을 제거할 수 있어 미국 에어컨 청정 표준에 도달했으며 바로 미국 특허를 획득하며 기술력을 쌓아갔다.

이렇게 하이얼은 자사제품의 세계시장 진출을 목표로 ‘세계로, 현지로, 위로(走出去, 走进去, 走上去)’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국제화 전략을 실천한 결과, 저렴하고도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160개국에 수출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중국기업으로는 최초로 냉장고 생산 공장을 세웠다. 이렇게 하이얼은 1998년 이후 7년간 해외 18곳에 현지공장, 17곳에 마케팅회사, 9곳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이얼은 품질관리 등을 통해 품질 향상을 꾀하면서 지난 2004년 매출액 13조 원, 2008년 글로벌 매출은 19조 원, 2013년 매출 34조 원의 이익을 을 거뒀으며 2010년 냉장고와 세탁기의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자랑하며 하이얼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기업들의 인수합병을 시작한 하이얼은 2011년 제휴관계인 산요에게서 가전사업 부분을 인수했고, 2016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산업 부분을 6조 5000억 원에 인수하며 회사규모를 키워나갔다.


자원을 창조한 하이얼, 세계적인 명성을 얻다

해외에 공장을 건설하거나 해외공장을 M&A할 때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바로 직원 간의 문화 융합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가치관, 민족문화의 차이로 인해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온 관리자와 직원, 직원과 직원 간에 각종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하이얼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 적응을 위주로 직원 문화충돌을 해결할 온갖 방안을 강구했다.

일예로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공장을 지을 때 미국 현지인을 채용해 미국에서 인력자원의 현지화를 여실히 구현했다. 하이얼 관리자는 직원들을 점진적으로 유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미국 직원들에게 하이얼 문화를 알기 쉽게 전파함으로써 그들이 궁극적으로 하이얼 문화에 따르도록 했다.

하이얼은 문화적 차이로 국제화 경영에서 큰 도전에 직면했지만 장루이민은 2005년 12월 25일 하이얼이 글로벌 브랜드 전략단계에 진입한다고 선언했고 이는 하이얼이 8년간의 노력 끝에 다른 국가 간의 다문화 융합에 성공했음을 의미한 것이다.

하이얼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중국의 민족 브랜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는 것이었다. 하이얼의 기업정신 중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은 하이얼 브랜드 전략의 목표이고, ‘자원을 창조하는 것’은 직원들이 매일 혁신을 추진해 더 좋고 더 큰 자원을 창조, 우수한 자원으로 영예로운 자원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얼은 브랜드 구축을 ‘자주 혁신으로 세계급 자주 브랜드를 창조하는’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국제화 전략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각 나라의 시장에서 현지화 된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글로벌 브랜드 전략단계에 진입한 후 기업이념을 ‘자원을 창조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으로 조정했고 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독특한 브랜드 사고방식으로 브랜드의 문화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고객, 직원, 기업의 가치실현을 함께 실현해 이해관계자 간의 공동이익을 만들어가는 인단합일(人单合一)의 모델을 도입했다.

2000년 이후 독자적인 관리방식인 OEC(Overall Every Control and Clear)를 도입하며 품질관리에 주력한 하이얼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하이얼 가전왕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사진출처_뉴시스)


‘기업 플랫폼화’ 추진, 인터넷기업으로 구조 변화

‘브랜드 구축’, ‘다각화’, ‘국제화’, ‘글로벌 브랜드’ 4단계의 전략 단계를 거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하이얼은 인터넷시대에 플랫폼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기업 플랫폼화’라는 인터넷 전략을 추진한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인단합일(人單合一) 1.0 - 공동이익 관리모델’ 개념을 도입해 조직 혁신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21 장루이민 회장은 ‘제2회 하이얼 비즈니스모델 혁신 글로벌포럼’에서 ‘인단합일 2.0 – 공동창업과 공동이익’ 모델을 발표, 이는 하이얼이 인터넷기업으로 확실한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이얼은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 후 하이얼은 자신들이 구축한 창업 생태계 속에서 영세 창업자에게 최적의 글로벌 자원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이후 신생벤처기업 180개를 지원해 온 하이얼이 지원한 업체 16개는 기업가치가 각각 1억 위안(약 176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고 있으며 홈플랫폼, Hairongyi 등의 가치 평가는 20억 위안을 넘어섰다. 2016년 말까지 약 3,600개의 기업 인큐베이터 자원과 1,333개의 벤처 투자기관이 모였으며, 투자펀드 규모는 120여 억 원 위안에 달한다.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 사고를 지닌 ‘장루이민’

중국인의 특성을 표현하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만만디(慢慢的)’이다. 지금이야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느긋하게, 천천히’를 뜻하는 만만디는 아직도 중국인의 성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만만디 정신이 흐르면서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에서 최고의 기업가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비(非)중국적인 인물, 장루이민 회장이다.

창업 초기부터 회사를 이끌었던 장루이민 회장은 엄격한 규율의 적용과 효율적인 경영방식의 실천을 통해 하이얼을 오늘날 세계 500강 진입을 바라보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이런 장루이민을 가리켜 중국 언론은 중국의 ‘잭 웰치’, ‘중국 경제의 큰 스승’이라 일컫는다.

칭다오냉장고 공장장을 시작으로 현재 하이얼그룹의 회장까지 3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기업을 이끌어 온 장루이민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활력과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어야 기업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자신 라오싼제(老三屆. 문화대혁명 이전인 1964~1966년에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세대인 장루이민은 비합리적인 인재 선발방식에 가장 큰 불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3공(공평, 공정, 공개) 원칙에 입각한 인재 선발을 통해 현재 하이얼을 경영간부 평균연령 30세라는 세계 그 기업보다 가장 젊은 기업으로 만들어 놓았다.

장루이민의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많이 일한 사람이 많이 받고, 적게 일한 사람은 적게 받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받지 못한다(多勞多得, 少勞少得, 不勞不得)’고 강조하는 그는 평생고용을 뜻하는 철밥통을 타파하고 철저한 능력주의 인사와 목표관리경영(MBO)를 시행하고 있다.

“시장에서 기업 위치는 경사면에 놓인 공과 같다. 기업이 커질수록 뒤로 밀리는 힘도 커진다. 뒤로 밀리지 않도록 하려면 관리능력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사면 위로 공이 올라가게 해야 하는데 이 힘은 바로 창의력이다”는 이른바 ‘경사지공이론(斜坡球體論)’과 직원과 회사가 하나가 된다는 ‘인단합일(人單合一)’ 등의 장루이민의 다양한 경영 이론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연구 대상이 됐을 정도다.

1984년 직원이 수백 명 밖에 안 되던 칭다오냉장고 공장을 인수해 32년 만에 직원 5만여 명 이상을 거느리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변모시킨 장루이민. 중국의 민영기업 중 매출액이 1위이고(기간산업의 국영기업을 포함하면 전체 16위), 백색가전 분야에서는 세계 최대이며, 컴퓨터를 포함한 전체 가전 분야에서는 세계 5위로 끌어올린 장루이민의 이 독특한 경영방식과 기업문화는 세계는 중국으로 들어가고, 하이얼은 세계로 나오는 결과를 낳았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