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42호=장경동 칼럼위원) 제 딸은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얼마 전에 일 때문에 미국에 잠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어리니까 둘을 데리고 다니면 힘들까 봐 아내가 손녀들을 봐줄 테니 편히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낮 동안은 손주들이 날 놀았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마자 사단이 났습니다. 손주들이 “엄마, 엄마!”를 부르면서 눈물이 폭발했던 것이지요. 그 모습을 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잘못을 떠나서 엄마는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엄마 없는 빈 공간은 너무 큽니다. 아이에게 잘 했는지 못했는지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존재 자체가 주는 위안이 정말 소중합니다.

이런 엄마가 자식을 키우는 기간은 약 30년입니다. 그리고 장성한 자식이 누군가의 배우자로 살아가는 세월이 60여 년입니다. 둘 사이를 비교하면 배우자와 사는 기간이 더 길지만 엄마와 함께한 30년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머니와 아내라는 두 종류의 여자를 모두 겪어 본 결과 아무리 훌륭한 아내도 엄마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 특성상, 제 전화기는 끊임없이 울려 댑니다. 밤 12시에 싸우다가도 찾을 정도니까요. 싸웠으면 112를 찾든지 해야지 왜 저를 찾는지 모르겠어요. 그곳에 가서 그 모든 상황을 수습하면 새벽 3시가 됩니다. 그런데 2시간 후 새벽5시에 예배가 있습니다. 4시 30분이 도면 아내는 칼같이 저를 깨웁니다. 교인들은 제가 몇 시에 잤는지 모르지만 아내는 알잖아요? 이럴 때는 정말 피곤하고 답답한 마음이에요. 그러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죠.

“오늘은 당신이 가서 설교를 좀 해 줘요. 어차피 교회에서 사례비 받은 거 같이 쓰면서 왜 나만 힘들게 일어나야 해?”

그러면 아내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교인들이 당신 기다리지 나 기다려요?”

그러면서 굴하지 않고 저를 끝까지 깨워 교회로 보냅니다.

반면에 어머니는 다릅니다. 명절이 되면 본가에 내려가서 자고 옵니다. 그럴 때마다 새벽기도에 가기 위해 “어머니, 내일 새벽에 꼭 깨워 주세요”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들, 걱정 말고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눈 떠 보면 밖이 환합니다.

“어머니 왜 안 깨우셨어요?”라고 물어보면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오늘 하루라도 푹 자라고.”

위와 같은 경우에 이론상 제시간에 깨우는 아내의 행동이 정답입니다. 하지만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어머니가 정답입니다.

엄마가 해 주는 보약은 먹고 힘을 내면 그만입니다. 만일 보약을 먹었는데도 힘이 안 나면 한의사가 욕을 먹습니다.

“이 놈의 한의사가 녹용을 써야 되는데 녹각을 썼구먼.”

반대로 아내가 해 주는 보약을 먹고 힘을 못 쓰면 남편이 욕을 먹습니다.

“보약을 해 줘도 저 모양이야.”

그래서 아내가 해 주는 보약은 안 먹는 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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