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마음의 경계가 있다. 그러나 흥미진진한 모험은 마음의 장벽을 낮추고 타인을 돌아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복잡한 도시의 거리를 걷는 중이라고 가정해보자. 저멀리 걸어오는 행인과 나는 처음에 서로를 흘깃 쳐다보고 서로 가까워지면 시선을 피했다가 그냥 지나칠 것이다. 여기에는 잠시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상호작용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는 무언의 합의가 작용한다. 이것이 시민적 무관심이다. 공공장소에서는 대개 이 시민적 무관심을 기본 태도로 지닌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이 만날 때』에서는 이 무관심을 깨는 작은 간섭을 제안한다. 횡단보도, 공원, 기차역 등의 전이 공간(transitional space)에 잠시 머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행동으로 뜻밖의 아름다운 사건이 일어날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저자는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은 관계를 시작하는 가이드라인을 함께 제시한다. 반려견이나 아이, 공공장소의 설치물, 길거리에서 열리는 공연 등 함께 이야기 나눌 만한 매개를 소재로 삼거나 단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될 수 있다. 시선을 교환하거나 어깨를 으쓱하거나 고개를 갸웃하는 것만으로도 도시는 상호작용의 공간이 된다.

물론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길거리 유대를 오해해 지나가는 사람을 희롱하는 ‘캣콜링’으로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고의로 행인에게 불쾌한 시선을 보내거나 휘파람을 부는 행위, 큰 소리로 위협하는 행위는 친근한 관계의 시작이 아니라 또다른 종류의 폭력일 뿐이다. 저자가 말하는 교류란 타인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거리를 지키는 선에서의 교류이며, 이때 생겨나는 한 줌의 유대감이다. 낯선 이와 공간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언제 자신이 기쁨을 느끼고, 언제 당혹스러워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주는 얼굴에는 아주 섬세한 경계심의 막이 덮여 있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경계를 풀거나 붙들어맨다. 가끔은 예상치 못했던 잠깐의 접촉에 서로의 내면을 엿볼 정도로 경계가 풀리기도 한다. 이 놀랍고 순간적이며 긍정적인 찰나의 연대를 통해 사회를 좀더 개방적이고 풍요로운 공간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환대하는 흥미로운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거리에서 당신과 만나고 대화하게 된다면, 그건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행위가 아니라 한 줌의 유대감을 얻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마도 나는 스스로를 열어 보이고 당신이 드러내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작은 틈을 찾는 걸지도 모른다. 서로의 불꽃과 반짝임, 그리고 불완전함을 엿볼 그런 틈새를 말이다. 그런 희미한 빛을 발하는 순간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당신 또한 짧은 인사로 답한다. 그래도 우리는, 당신과 나는, 이곳에 함께한다고 느낀다. 우리가 여전히 낯선 사람들일지라도. _155쪽

 

이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타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순간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상상력은 더 풍부해진다

테드북스 시리즈의 열한번째 책 『낯선 사람들이 만날 때』는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네는 일상 속 작은 모험이 불러오는 놀라운 변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뉴욕 대학교 부교수인 저자 키오 스타크는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행위가 지닌 정치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를 생생한 실제 에피소드를 통해 탐구한다. 저자는 수년간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실험을 계속해왔다. 실험을 통해 저자는 찰나의 연결이 어떻게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법을 변화시키는지, 순간의 공감이 어떤 행복감을 주는지 알게 된다. 대개 사람들은 친구나 가족, 연인처럼 친밀한 사이에서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제한적인 상황에서 나누는 짧은 교류는 기존의 상호작용과는 결이 다른, 의미 있는 반향을 만들어낸다.

 

난생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내게 모험과도 같다. 또한 이는 내 유희이자 저항이며, 해방이기도 하다. 또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유가 뭘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틀에 박힌 서사로 이루어진 나의 일상에 아름답고 놀라운 개입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선 나의 관점이 바뀐다. 찰나의 의미 있는 교감도 일어난다. 이미 답을 안다고 여겼던 질문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 아닌 타인을 의심하고 경계하게 만들었던 편견들을 거부하게 이끈다. _13쪽

 

여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위협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학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현대의 삶은 광범위한 불안, 그리고 억압적 위계에 의한 모욕과 상처로 가득하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폭발한 미투(#MeToo) 해시태그 운동으로 권력관계에 의한 부당한 성폭력 피해가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성적 소수자․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져간다. 단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혹은 필요에 의한 갑을관계를 무기로 상대가 원치 않는 접근을 행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누구에게 어떤 위협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 세계를 안전하게 항해하려는 방편으로 ‘유형화’를 택한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재빨리 ‘여성’ ‘흑인’ ‘무슬림’이라고 이름 붙인 카테고리의 정보를 사용한다. 유형화는 타인을 파악하는 손쉬운 수단이다. 그러나 편견에 빠지는 길이 되기도 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법은 뇌에 저장된 카테고리에서 꺼낸 편견 섞인 정보로 반사적으로 판단하는 데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학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하고, 어떤 경우 그 위험은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들이닥친다. 우리가 누구를 신뢰해야 할지 판별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위험을 선택하기보다 낯선 것에 적대하기가 더 용이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편견이라는 섣부른 지름길을 택한다. 그러다보면 진솔한 인간관계를 맺고, 타인이 개입해 우리를 일깨울 기회를 잃은 채 일차원적 관계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홀로 살 수 없는 인간에겐 사회적 상상력이 중요하다. 낯선 사람에 대한 편견에 찬 경계를 허물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느슨하고 일상적인 연결,

길거리 유대가 허무는 편견의 장막

저자 키오 스타크는 한 가게에서 무슬림 여성과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마트 직원인 그 무슬림 여성은 빨갛게 염색한 스타크의 머리를 보고 딸들의 머리를 꾸며주고 싶다며 방법을 묻는다. 스타크는 아이들의 히잡 안에 숨겨진 머리색을 상상하며 물었다. “딸들도 히잡을 쓰나요?” 그녀는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제가 믿는 것들을 가르치지만, 무엇을 선택할지 말지는 스스로 결정해야죠. 제가 강요할 순 없어요.”

대화를 나눈 시간은 몇 분에 불과했지만, 저자는 히잡을 두른 여성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생각했던 자신이 창피해졌다고 고백한다. 무슬림이기에 딸들에게도 당연히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리라 짐작했던 것이다. 잠깐이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그녀가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이해하게 되면서 그 여성을 비로소 독립적인 한 주체로 인식하게 됐다. 길거리에서 스치듯 만나는 관계는 느슨하고 일상적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일상적인 길거리에서의 유대가 편견의 벽을 허무는 좋은 도구가 된다.

 

누군가를 한 인격체로 인식하게 되면, 인간의 정의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확장된다. 바로 그때, 우리의 작고 개인적인 변화는 더 큰 정치적 변화를 향한 하나의 속삭임이 된다. 난민과 이민 문제, 인종차별과 혐오 문제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현상황에서 누군가를 그저 한 사람의 인격체로 보는 것은 엄연한 정치적 의식에서 비롯한 행동이다. _78~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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