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 비유럽권 회장 내정…전 세계 에너지 공급의 선두주자를 향한 변화

[사진출처_뉴시스]

[시사매거진 233호 / 신혜영 기자] 조개모양의 로고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기업인 로열더치셸은 110년의 역사를 가진 에너지 기업이다. 흔히 셸(Shell)이라고 알려진 로열더치셸은 2012년 포춘 2위, 포브스 5위, 인터브랜드 74위에까지 오르며 에너지산업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섰다.

최근 사상 처음으로 미국인인 찰스 홀리데이(66) 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하며 화제를 모았다. 2005년 핀란드 출신의 요르마 올릴라 회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로열더치셸의 회장 자리는 줄곧 영국과 네덜란드 출신이 번갈아 맡았다. 올리라 회장은 올해 초로 예정된 홀리데이 회장의 취임과 동시에 물러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유럽 최대 정유사 로열더치셀은 미국의 거대 정유회사였던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컴퍼니의 석유산업 독점에 대항해 네덜란드의 로열더치(Royal Dutch)와 영국의 셸(Shell)이 1907년 설립한 합작회사다.

1890년에 장 케슬러(Jean Baptiste August Kessler)와 헨리 디터딩(Henri Deterding)은 당시 네덜란드의 왕 윌리엄 3세의 허가를 받아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유전 개발을 위한 로열더치 페트롤륨 컴퍼니를 세웠다.

셸은 1897년에 런던의 마커스와 샘 사무엘 형제가 가족사업을 확장시켜 석유 분야에 뛰어들면서 만든 운송무역회사다. 원래 원유 운송을 목적으로 여덟 개의 원유 저장탱크를 보유하고 있었던 셸은 1919년 멕시코이글정유회사를 인수해 셸-멕스(Shell-Mex)라는 계열사를 세운 뒤 영국에서 셸과 이글이라는 브랜드로 석유를 판매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로열더치셀의 조개 모양 로고와 껍데기라는 뜻의 ‘Shell’이름은 이 형제의 아버지가 조개껍데기를 파는 상점을 했던 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로열더치셀은 2004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로열더치가 60%, 셸이 40%의 지분을 나눠 갖고 영국과 네덜란드 두 나라에 세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2004년에 이르러 완전히 합병하며 네덜란드에만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두 기업이 합병을 하게 된 데에는 당시 불안정한 석유 생산과 정치적 불확실성, 그리고 미국의 사업가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오일이라는 회사로 인한 위협 때문에 출범한지 100년 만에 완전 합병을 하게 됐다.

로열더치셸은 출범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보르네오의 석유를 생산·수송·판매 분야에서 독점하고 러시아, 루마니아, 멕시코, 미국, 베네수엘라 등에서도 석유 이권을 획득하며 스탠더드오일과 대항하면서 발전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군의 연료보급을 맡았으며 1960년대에는 석유생산과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전 세계 석유 수급의 1/7을 담당할 정도로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1958년에는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해 나이지리아에서 처음으로 석유를 생산한 데 이어 카메룬, 이집트, 가봉, 가나, 리비아, 모로코, 남아프리카, 튀니지에서도 석유생산시설을 운영했다. 하지만 현지 근로자들의 파업과 저항에 부딪혀 2010년 대부분의 시설에서 철수했다. 셸은 원유, 천연가스, 화학 산업에서 벗어나 원자력, 석탄, 금속, 전기발전 등의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했지만 큰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최근 로열 더치 셸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석유업계에서 가장 큰 부채 증가 폭을 기록하며 재무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BG그룹을 인수하면서 조달한 190억 달러가 부채 총액을 크게 늘렸다.

 

1970년대 초 로열더치셸은 세계 에너지산업 분야에서 7위였으나 단숨에 2위로 올라서게 된다. 그 비결은 바로 ‘시나리오 경영’이다. 시나리오경영이란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예측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만든 다음, 각 상황에 대한 대응 전략을 수립해놓는 것을 말한다. 로열더치셸은 미국의 석유 비축량이 바닥을 보일 것이란 설정과 1967년 중동에서 벌어졌던 6일 전쟁으로 OPEC국가들이 유가 폭등을 일으킨다는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당시 로열더치셸의 이 같은 시나리오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이때만 하더라도 유가가 안정되어 있었기에 석유회사들은 몸집 키우기에 바빴다. 하지만 실제로 로열더치셸이 작성했던 시나리오대로 1973년 10월 중동전쟁이 발발했고 오일쇼크가 일어났다. 로열더치셸은 준비해놓은 전략에 따라 완만한 경영을 해나가면서 세계 2위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로열더치셸은 태양에너지, 풍력, 수소발전, 삼림 분야의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0년 9월 셸은 브라질의 사탕수수 생산업체인 코산(Cosan)과 사탕수수를 원료로 한 에탄올 및 전력 생산을 위한 합작 사업을 전개했다.

 

하지만 로열더치셸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1995년 로열더치셀은 북해 유전 원유채굴에 사용했던 시설물을 북해 한 가운데에 가라앉힌 사건으로 세계 10대 악덕 기업 1위에 뽑힐 정도로 위기를 맞은 것이다. 당시 그린피스 등의 환경단체는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고 이 운동은 인터넷을 통해 확대,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로열더치셸 해양폐기 계획을 철회해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로열더치셸은 기업이미지를 개선시키기 위해 온·오프라인상에서 다양한 노력들을 해왔다. 고객, 직원들과 소통창구를 만들고 유전이 있는 개도국의 의료시설과 경제 지원을 늘렸다. 지속적인 노력 결과 투명한 기업으로 거듭났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공급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기술 개발과 혁신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에너지를 개발하고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천연가스의 생산을 늘리고, 사탕수수에서 에탄올을 추출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로열더치셸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22년 로열더치셸은 전기가 없던 한국에 램프용 기름을 제공했다. 당시 일본 셸 그룹의 전신인 라이징선(Rising Sun)이 제공, 한국전쟁 후 로열더치셸의 이름으로 한국의 윤활유 제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 후 원유, 석유제품, 연료, 석탄, 가스, 윤활유의 공급, 화학제품의 생산 및 판매에 이르기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왔다. 최근에는 프렐루드 가스전 개발사업 등을 함께 추진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6월23일 박근혜 대통령은 벤 반 뷰어든 최고경영자를 접견해 향후 세계 에너지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전망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로열더치셸의 한국 내 사업체로는 SPE 한국 지사 외에 한국쉘석유주식회사가 있다. SPE 한국 지사는 천연가스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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