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대세론이 뿜어내는 열기에 국민이 땀을 흘린다

계절과 함께 우리 정치권도 달아오르고 있다.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 때문이다. 내로라는 영웅호걸들이 출사표를 던지고 ‘대권’을 향한 행보에 속속 참여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여러 모로 이상한 점이 많다. ‘대세론’이라는 풍문은 무성한데, 그 주인공들의 실체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존재들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땡볕에서 흘리는 땀과 한증막에서 흘리는 땀은 분명 다르다. 안개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대선정국에서 유권자가 흘리는 민심의 땀은 후자에 가까운 듯 보인다.

여권에서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 정몽준 의원,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등이 출마선언을 했다. 야권에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 손학규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도지사, 박영선 의원, 정동영 전 의원 등이 출마선언을 했거나, 곧 발표를 할 예정이다. 야권의 또 다른 축으로 올라선 통합진보당은 지난 총선과정에서 불거진 비례대표 경선 파동으로 인해 이렇다 할 대선행보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 출마선언을 했거나, 출마의지를 확고하게 밝힌 인사 중 지지율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인사는 새누리당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 그리고 김두관 경기도지사 정도이다. 그런데 각종 여론조사 지표를 교차해서 살펴보면 정작 상위권에 있는 두 사람은 아직까지 출마선언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이야기다.
박 전 위원장은 이미 지난 대선 직후부터 지난해 가을까지 부동의 1위로 대세론을 구가해온 인물이다. 안 원장은 지난해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정국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단숨에 대권주자로 발돋움한 바 있다. 당초 박 전 위원장이 압도적인 지지율 차이를 보이며 앞섰지만, 연말쯤 안 원장이 오차범위까지 추격했다가 총선 직전에는 박 위원장을 제치고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현재는 다시 오차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는 중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4년 동안 누려왔던 대세론을 볼 때 출마선언 시기에 관계없이 대선출마가 확정된 상태라 볼 수 있지만, 안 원장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파괴력과 영향력이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대선과 관련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를 둘러싼 각종 소문과 추측이 난무할 뿐 확실한 것은 없다. 이에 따라 여러 경우의 수가 존재할 수 있다. 직접 출마를 하되 민주통합당에 입당하는 경우, 제3세력으로 출마해 야권단일화 과정을 거치는 경우, 혹은 출마를 하지 않고 야권단일 후보를 지원하는 경우 등이다.

문제는 대선의 상수라 할 수 있는 이 두 사람이 ‘고도의 침묵과 절제의 행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이 땅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보다 유능하고 훌륭한 대통령을 뽑기 위해서는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 검증은 도덕적인 청렴성부터 각 분야 정책능력까지 복잡하고 방대하다. 그런데 이제 대선까지는 채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이미 이중삼중의 검증을 받았어도 모자랄 시기에 아직 그들은 이렇다 할 정책은커녕 출마선언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이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대단히 위험하고 불안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부족한 정보는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곧 국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대권후보로 거론되고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인사라면 마땅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서둘러 대선출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5년 동안 자신이 책임지게 될 대한민국에 대한 뚜렷하고 합리적인 방안들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적 한증막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국민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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