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정복의 기대주로 주목받는 ‘톡소포자충’

기생충은 사람들에게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남에게 기생하여 살아간다는 것과 흉측한 생김새, 그리고 기생충에 대한 무지(無知)가 그 원인이다. 이 시기쯤 불거져 나오는 특정 기생충에 대한 소식과 그와 관련된 루머나 오보는 기생충을 해악의 존재로서 판단하게 만든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교실의 신은희 교수는 오히려 기생충인 톡소포자충이 사람의 질병치료에 이용될 수 있음을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생충 학문을 새롭게 조명하며 기생충 특유의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감염된 사람 혹은 동물에서 면역반응을 회피하고자 하는 생존전략이 타 질환의 예방 혹은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즉, 기생충을 유용한 생물로 인식하는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박멸의 대상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환골탈태하다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은 토양매개 선충류들과 일부 장흡충류, 그리고 조충류들을 대상으로 1970년대까지 전 국민의 60~85% 정도가 충란 양성율을 보일 정도로 심각한 국민 질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기생충 학자들과 정부 보건 당국의 노력으로 인해 1990년대에는 충란양성율이 약 3%, 2004년에는 3~4% 정도로 현저히 낮아졌다. 이로 인해 이제 더 이상 기생충 질환은 우리와 먼 이야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류 및 패류를 통해 감염되는 흡충률의 감염은 아직까지도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반려동물의 사육 증가와 해외여행을 통해 감염되어 입국하는 수입 기생충병, 그리고 무엇보다 회 혹은 덜 익힌 육류 소비와 수입 육류 등에서 감염되는 기생충 질환은 여전히 감염 비율이 높다. 다행히도 장흡충류들은 치료약이 잘 개발되어 있고 감염 후 나타나는 증상도 그리 심하지 않은 면이 있으나 톡소포자충과 말라리아, 그리고 일부 다른 원충 감염은 감염 후 증상도 심하고 치료도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는 보고다.

그러나 이제 기생충을 치료하기 어렵고 무조건 없애야 하는 미생물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미생물로 보고자 하는 견해도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보건 현실에서는 진단과 치료가 너무도 잘 정립되어 있고, 오히려 사람들의 미각에서 비롯된 날것을 먹는 회, 그리고 보신용 동물 고기 및 장기를 날것으로 먹는 식습관에서 비롯된 감염은 현재에도 많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기에 기생충 감염은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나타나는 질환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교실(신은희 교수)은 기생충 감염 현실에서 톡소포자충 같이 사람과 동물에서 오랜 기간 감염되고 있고 면역이 정상인 상태에서는 특별한 증상을 발현하지 않은 상황에서 감염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이 원충의 면역 특성을 타 질환 치료에 이용하는 전략 등에 대해 활발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신은희 교수는 “다른 생물에 붙어 영양분을 빨아먹는 기생충은 모양도 혐오스럽고 인체에 나쁜 증상이나 질병을 초래하기도 해 박멸의 대상으로 취급받은 지 오래지만 인체에 이로움을 주는 기생충도 적지 않다”며 “질병 치료에 기생충을 활용하는 연구가 꾸준히 이뤄지면서 이미 몇몇의 기생충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기생충의 인생역전인 것이다. 이러한 역발상의 연구가 진행되는 기생충학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알츠하이머 병 치료 가능성 제시

한편, 신은희 교수 연구팀은 톡소포자충을 이용해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 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람 체내에 오랜 기간 기생하고 있는 톡소포자충(만성감염은 주로 뇌에 포낭을 형성하여 기생함)이 감염된 상태로 나이가 들면 어떠한 영향을 보이는지에 의문을 갖고 알츠하이머병과 연관 지어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이유는 감염 후 주로 뇌의 여러 부위에 감염되어 있는 톡소포자충이 만성화되어 기생할 때 보통은 뇌에서 염증반응을 유발하지 않은 채 포낭을 유지하기 때문에 기질적인 변화보다는 뇌기능 쪽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신은희 교수는 “모델 마우스를 이용한 연구 결과, 알츠하이머병 모델 마우스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 감소와 뇌신경 손상을 가져오는 병인인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생성되면서 기억력 손상을 초래하는 반면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마우스는 뇌신경세포사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생성도 감소되는 현상을 보였다. 이와 동시에 행동학적 기억력 실험에서도 톡소포자충 감염 마우스는 기억력 감소를 보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기전으로 연구진은 톡소포자충에 의한 항염증 조절 기전에 주목하였고 이때 IL-10과 TGF-beta와 같은 항염증 사이토킨의 증가가 관찰되었다. 동시에 신경세포사를 유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nitric oxide(산화질소)가 톡소포자충 항원 처치 시 현저히 감소함을 발견하였다.
신은희 교수는 “실험동물(마우스)에서 발견된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동물에서는 만성감염으로 진행될 경우, 항염증반응으로 유도시키는 면역조절을 통해 알츠하이머 질환 억제와 관련된 일련의 면역반응을 유도시킴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전했다.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기생충학

톡소포자충은 사람을 포함한 포유동물과 조류에서 흔히 발견되는 기생충이다. 사람에 감염되는 경로는 고양이 배설물에 있는 oocyst(난포낭)를 여러 경로(흙에 오염된 난포낭 혹은 고양이 분변 접촉에 의해 직접 사람의 입으로 전달) 혹은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소, 염소, 오리, 돼지, 양, 닭 등 가축을 날것으로 먹거나 충분히 익혀먹지 않았을 때 감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톡소포자충이 사람에 감염되면 오랜 기간 체내에 머물면서 감염 초기에는 급성 감염으로 충체에 대해 사람에서 심한 염증반응이 나타나고, 감염 후기로 갈수록 숙주의 면역반응을 회피하고자 항염증반응을 톡소포자충이 유도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신은희 교수는 최근 인수공통감염을 일으키면서 미국과 유럽, 그리고 남미 등에 만연하고 있는 톡소포자충 감염 면역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2010년에는 톡소포자충 감염 후 나타나는 면역특성을 이용한 종양억제 기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톡소포자충이 항원 단백질을 처치할 때 종양의 성장이 억제되는데 이때 신생혈관형성이 억제되어 종양의 성장이 저해 받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외에도 종양 조직 내 IL-12의 급격한 증가가 나타나고 종양 크기의 감소가 나타나는 항종양 면역반응을 유발하는데 이는 암의 억제를 가져오는 면역반응의 특성과도 동일하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 질환 억제에 대한 톡소포자충의 면역 조절 기전 연구까지 진행되고 있어 향후 의·과학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은희 교수는 “이 모든 면역조절은 톡소포자충이 감염된 후 어떠한 조직에서 자신의 생존을 지켜야 할지에 대한 기생충의 생물학적 특성을 이용한 연구로서 지금까지 기생충을 해로운 존재로만 인식하였던 틀에서 벗어나 타 질환 억제에 ‘기생충의 이용’이라는 새로운 측면의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고 밝혀 기생충 연구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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