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앞서 나가기보다는 내실을 다지고 미래를 준비할 시점

얼마 전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우리나라 경제와 관련된 고무적인 뉴스 하나가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경제전망을 인용한 이 보도는 향후 5년 내에 우리가 일본을 앞지를 것이라 내다봤다. 세계 경제전문가 사이에서도 일본의 경제는 정체를 넘어 침체 단계에 접어 들었다는 게 중론이다. 구매력 평가를 환산한 1인당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볼 때 싱가포르가 1993년 일본을 추월했고, 1997년 홍콩, 2010년 대만이 일본을 앞질렀다. 이에 우리 경제는 2017년쯤, 그러니까 5년 안에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인 4만 달러에 근접하거나 이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36년 간의 강제침탈을 당했던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면 이러한 경제전망은 매우 고무적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이 땅에서 일어난 동족상잔의 비극을 계기로 극적인 경제회생을 이뤄냈다. 또한 우리나라 역시 전후 경제복구 과정에서 일본을 대상으로 한 수출과 차관 도입으로 경제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두 국가 간에는 정치나 역사 못지않게 경제적으로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셈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세계 경제를 호령하던 일본은 천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수직상승하던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정체하거나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에 시달렸다. 지속되는 고물가로 인해 서민경제는 고통에 빠졌으며, 지난해 발생한 대지진으로 더욱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 30여 년에 걸쳐 우리가 이룩한 경제성과는 놀랄 만 한 수준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꼽힐 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급격한 도약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제 역사적 숙원이었던 일본을 뛰어넘기 일보직전이다.
하지만 이에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점이 있다. 일본경제가 걸어온 길을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만들어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체계는 당시 미국과 일본의 시스템에서 많이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6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식으로 많이 고쳐지고 개선되었지만, 그 골격은 여전하다는 의미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장기간 이어진 외세침탈과 동족상잔의 폐허 속에서 미국과 일본은 우리가 배워야 할 교과서이자 모범답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이제 완전히 역전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 역시 급속히 침체되고 있으며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상당부분의 경제패권 지분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시스템을 교과서처럼 여겨온 우리 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 제시한 모범답안에 따라 빠르게 성장해 왔기 때문에 또한 그들이 겪고 있는 위기를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 경제의 경우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가 아닌 일부 독점 재벌 및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낸 경제성장이기에 그 위험성이 더욱 높다고 하겠다. 대만의 경우처럼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가 발전하면 급격한 경제환경 변화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처럼 일부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의 상당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은 매우 위험할 수밖에 없다. 세계 100대 기업 리스트에 우리 기업이름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것도 좋아만 할 일이 아니다. 글로벌 경제정세가 불안한 상황에서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여건은 상당한 위험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무조건 앞서 나가는 게 중요한 시점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뤄낸 성과를 바탕으로 보다 내실을 기하고 양적 균등을 실현하는 게 절실하다. ‘한강의 기적’ 이후 ‘한강의 신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적은 단발성에 가깝지만, 신화는 장구하게 기록되는 이야기다. 우리가 만들어낸 ‘기적’을 ‘신화’로 이어갈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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