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된 민주주의를 바로잡는 일은 국민의 몫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닉슨 대통령을 파멸시킨 초대형 정치 스캔들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17일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 6층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5명의 남자가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다가 절도범으로 체포된 일을 말한다.

사건 초기, 경찰은 단순 절도사건으로 결론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다. 백악관은 사건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지의 폭로로 닉슨 진영이 사건의 배후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대통령의 음모로 발전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주요 등장인물은 닉슨 대통령이다. 닉슨 대통령의 주요 상대역은 존 애드가 후버(1895~1972) 美 연방수사국(FBI) 국장이었다. 닉슨이 공식 대통령이었다면 후버 FBI국장은 어둠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1924년 FBI의 전신인 수사국 국장으로 임명돼 1935년 지금의 FBI를 창설하는데 산파역을 수행했다.
초대 수사국 국장으로 취임한 후버는 점차 어둠의 권력자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그가 권력구축에 사용한 방법은 바로 사찰이었다. 그는 수사국의 경찰력을 활용해 대통령은 물론 사회 저명인사를 집중 감시했다. 이 과정에서 도청, 미행, 불법침입, 협박 등 온갖 비합법적 수단이 동원됐다. 그는 타계할 때까지 어둠의 권력으로 군림하며 어느 누구에게도 도전 받지 않는 정보세계를 구축했다.

닉슨 VS 후버의 힘겨루기

후버 국장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있기 1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 FBI 장악을 노리던 닉슨은 후버의 부고가 전해지기 무섭게 측근을 국장 대리로 앉힌데 이어 후버 국장이 확보한 사찰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FBI로선 조직의 존립이 위기에 처한 순간이었다. 이러던 차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졌다. FBI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에 맞서 닉슨은 FBI의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CIA를 동원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결국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로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배후임이 드러났다. 이 신문에 결정적인 제보를 한 이른바 ‘딥 스로트’는 당시 FBI 부국장이던 마크 펠트였다. 즉 FBI는 닉슨의 조직장악 시도에 맞서 그의 치부를 언론에 제공해 낙마시킨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드러난 권력기관 사이의 알력은 사찰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사찰을 통해 구축한 어둠의 권력은 얼마든지 제도화된 권력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 사건은 또 권력의 적법절차에 대한 문제도 제기한다. 만약 제도화된 권력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행사되었다면 어둠의 권력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화된 권력 역시 온갖 불법을 자행함으로써 사찰기술에서 한 수 위였던 어둠의 권력에게 스스로 약점을 노출하고야 말았다.
1972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2012년 대한민국에서 고스란히 재현됐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고, 여기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여론은 발칵 뒤집혔다. 더욱 충격적인 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집권한 대통령이 온갖 불법을 자행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일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에 의해 자행된 점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어둠의 권력이 제도화된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상황은 민주주의의 훼손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다. 잠시라도 노를 젓는 데 소홀히 하면 배는 표류하고 만다. 훼손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일은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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